한참 된 이야기다. 핀란드에서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때문에 대학교가 학기말 시험을 연기했다. 이유인즉 대학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한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프로에 빠져 온 나라 행정 시스템이 작동이 잘 안될 정도였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를 알고 나서 어이가 없었다. 몇날 며칠 동안 계속해서 한 여성이 뜨개질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였다. 아무리 복지국가, 사민주의 국가로 이름을 떨치는 나라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도 밍밍하게 살 수도 있다는 말인가.

이런 프로가 대인기를 끌자 다른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파도치는 바다를 보여주는 영상이 나오기도 했다던가. 나는 이 핀란드 사람들 때문에 여러 날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그렇게도 심심하니 살 수가 있을까. 그리고 답을 생각해냈다.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지만 실은 그 비슷한 경험을 댈 수 있다.

국내의 한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낚시하는 장면을 몇 시간 내리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렇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평화로웠다. 그냥 한 낚시꾼이 파도치는 바다에 낚싯줄을 던져 놓고 물고기가 무는 어신이 손에 전달되어 오면 낚싯줄을 잡아채고, 계속 그렇게 반복하는 모습, 그것 말고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는 프로라고 할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프로가 뜻밖에도 ‘매우 좋음’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핀란드 사람들은 내가 낚시 장면에서 느끼는 듯한 마음의 평화를 느꼈는지 모른다. 매양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도 안되는 수작들을 벌이며 수다를 떠는 프로를 날마다 보면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시청자들에게 나는 동정을 금할 수가 없다.

낚시는 아주 싱거운, 수다도 없고, 갈등도 없는 그저 자연의 한 풍경이라고 할 그런 것이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는, 자연과 인간이 서로 외로움을 안아주는 것 같은 그 프로가 그렇게도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핀란드처럼 어느 텔레비전에서든 한번 누가 하루 종일 산을 타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계속 비추어준다면 필시 인기를 끌지 않을까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금 심한 불안과 좌절감에 빠져 있다. 청년실업, 불황, 자살, 남북긴장 등등.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앞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이럴 땐 텔레비전에서 맨날 나라가 곧 망할 것 같은 부정적인 뉴스나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는 그 무슨 먹방인가 하는 프로,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이 패널로 나와서 들으나마나한 수다를 떠는 장면 같은 것은 질색이다.

그런 이유 말고도 텔레비전을 자주 보면 어지러운 영상이 뇌리에 남아 머리가 헝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그 말소리들은 높고 빠르고 어찌 그리 시끄러운지!

나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아니, 아예 텔레비전을 없애버려서 볼래야 볼 수도 없다. 다만 병원 같은 데 갈 때면 대기 시간에 잠깐 텔레비전을 스쳐 볼 따름이다. 누구는 텔레비전을 안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른다며 나를 이상스레 여기기도 하지만 핀란드식 프로그램을 틀어준다면 보고 싶기도 하다.

사실 텔레비전에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안 봐도 그만인 시시껄렁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생은 짧다는데 왜 그런 허접한 텔레비전 프로에 빠져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단 말인가.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처음엔 텔레비전을 치우면 금단 현상 같은 것이 생기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정말이다.

대체 날마다 교통사고, 화재, 정치인들의 이러쿵저러쿵… 그 시끌사끌한 뉴스 , 억지 웃음 프로 같은 것은 안보는 것이 도리어 정신건강에 좋다고 믿는다.

며칠 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나왔다. 깨알 같은 내역서 글자들을 더듬어 보니 그 안에 텔레비전 시청료 2500원이 들어 있었다. 텔레비전이 없는데도 벌써 여러 달째 나도 모르게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에 이의제기를 해서 이후론 시청료를 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텔레비전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텔레비전 시청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태양의 후예'를 보면서 팍팍한 인생살이의 시름을 잠시 잊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또, 트럼프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스런 뉴스도 보며 미국을 다시 생각해보는 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안 보면서 살아가는 이득에 비할 때 안봐도 그만인 프로들을 시청하느라 앗기는 시간 손실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인생에는 다른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틈 시인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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