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서구에 위치한 풍암호수공원

춘천에는 소양호가 있고, 전주에는 덕진호가 있으며, 경주에는 보문호가 있다. 이들 모두가 인공호수면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 잡았다. 광주에도 이런 큰 호수가 있었다. 1960년대 광주에 살았다면 누구나 경양방죽을 기억한다. 이 방죽은 계림동 일대 6만5000여 평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양방죽은 일제강점기부터 여러 번 매립위기를 겪었다. 1930년대 말엽 일제는 도시개발을 한다며 방죽을 메워 택지로 만들려고 했다. 다행히 뜻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합심해 그 계획을 막았다. 비록 광주고 뒷산을 깎아 방죽의 일부를 메우기는 했으나 그 때까지도 방죽의 면모는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이 방죽을 땅에 묻은 것은 우리 스스로였다. 광복 후 1960년대 중반 도시확장을 위해 지금의 광주역 일대의 태봉산을 헐어 확보된 흙으로 나머지 방죽을 매립했던 것이다. 일부 반대가 있었음에도 계획은 강행됐고 방죽과 함께 많은 시(詩)와 역사와 추억이 함께 파묻혔다. 만약 그 방죽이 지금까지 남아 있었다면 아름다운 도시의 경관은 물론 숨 막히는 아파트 천국인 광주시가지의 녹지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반복되는 아픔을 스스로 자처하고 나서는 것은 아닌지 당시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 광주 서구 풍암호수공원은 광주에 남은 몇 안 되는 호수 중 하나다. 하지만 오랜 기간 수질문제에 시달려왔다. 유입되는 물이 거의 없다시피 한 까닭에 물순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악취와 녹조현상 등 주민 불편이 심화됨에 따라 서구청은 관계자와 전문가들로 이뤄진 '풍암호수 수질개선 T/F팀'을 운영하여 해결책 마련에 고심해왔다.

그 결과 구청 공원녹지과는 T/F팀과 논의 결과, '풍암호수 메우기'라는 방안을 도출해 시에 관련 공문을 지난 21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최고 6m에 이르는 풍암호수의 수심을 매립하여 약 2m까지 줄인다는 내용이다. 이 방법이 시행되면 호수의 넓이는 유지하면서도 보다 적은 유입수로 수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수질 정화시설을 설치할 경우 매년 약 9억 원의 유지관리비를 확보하기 어려워 예산절감 차원에서라도 호수 수량을 줄이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 담수량만 줄인다고 수질이 개선될지도 의문이고 만약 수질개선에 실패를 했을 경우 다시 준설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메워야하는 선택이 따르게 된다. 경양방죽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영선 서구의원은 “중요한 것은 시간이 좀 들더라도 풍암호수를 훼손하지 않고 살리는 방법을 찾는 것인데,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지자체에서 9억 원 이상의 유지관리 비용을 들여 도심 호수의 수질을 개선하고 있다”며 “광주시와 서구청은 깨끗한 호수공원을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풍암저수지의 수심을 줄인다는 것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안이며 앞으로 전문가, 시민 등의 의견을 살펴 다양한 안을 검토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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