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거친 세월의 풍상만큼 어머니들의 모습들도 변했다. 가정에서 누구보다도 더 씩씩한 가장이었고, 거리에선 위풍당당한 투사였던 어머니들이 세월의 무게에 겨워 아프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있지만 또 다른 삶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아침부터 ‘오월 어머니집’에서 구령이 들려온다. 단순한 구령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리듬으로 이어진 곡이다. 문을 연 순간 훈훈한 온기가 몸 속 깊이 스며들었다. 오월 어머니 회원들과 요가를 하고 있는 이명자. 그는 늘 그랬듯이 다른 어머니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을 좋아한다.

민주주의를 위해 고초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 민주어머니들의 쉼터가 바로 ‘오월 어머니집’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민주화의 제단에 바치거나 스스로 민주화 투쟁대열에 섰던 어머니들의 쉼터로 자리 잡은 지 어느새 7년이다. 이제는 어느새 노령으로 접어든 어머니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서로 보살피는 장소가 됐다. 무엇보다 오월정신을 부단히 오늘의 현재 안에 되새기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5월이 되면 사람들이 왕래가 많아진다.

모든 일에 다른 오월 어머니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을 좋아하는 이명자씨

평범한 주부, 투사가 되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마침표를 찍을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명자, 그는 항상 먹먹함 속에서 살았다.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숨’은 돌돌 말려들어갔다.

80년 5월 17일 그의 남편은 예비 검거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시 남편이 나타났을 때 모든 게 변해 있었다. 온갖 고문으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5개월이 지나서야 남편은 눈앞에 나타났다.

“눈물만 흘렸습니다. 심한 고문으로 자살까지 시도했다는 남편을 본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습니다. 남편은 1심에서 3심까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어요.”

그 당시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의 죄가 무슨 죄인지도 몰랐다. 말로만 듣던 사형수가 본인의 남편이 되었던 순간 여렸던 모든 걸 내려놓고 오직 남편을 석방시키겠노라 다짐했다.

“5월 17일 밤 예비 검속된 사람이 무슨 죄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편의 사형을 면하게 만들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서명작업도 하고 김수환 추기경님 집무실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머리채가 잡히고 곤봉과 방패에 맞아가면서도 구속자 석방에 대한 일념으로 무서운 것 없이 덤벼들고 싸웠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는 그 시절 광주에서 제일 사나운 여자, 독한여자, 무서운 여자로 불리었다. 그 힘은 커다란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3년 만에 구속자들은 모두 석방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구속된 수많은 청년과 학생들을 위해 최루탄을 마셔가며 또 싸웠다. 지칠 줄 모르고 싸운 내력은 많은 수감자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다. 모두가 오월 어머니와 광주시민들이 함께한 시간에서 나온 것이었다.

역사적 5월을 알리는 결정체

그가 택하지는 않았지만 되돌아보는 삶과 되돌아 볼 수 있는 삶을 동시에 살아 갈 수 있게 해준 그 길이 5 ·18 이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고,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인생에서 최고의 배움이었다. 그래서 늘 감사하며 살아간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돌보지 못한 상황 속에서 두 아들은 잘 자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여성이 아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이끌어 주신 분들이 지금 이 자리까지 나를 지켜 주신 거라 생각해요.”

많은 도움으로 95년 전라남도 의회의원(비례대표),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목포지역 의원들과 연대하고 도청 앞 5·18알림탑을 세우기도 했다. 여성단체 연합 (8개 단체) 대표를 맡으며 지역 여성들과 소외된 여성, 장애인 여성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느낀 게 많아요. 혼자 살아가는 삶보다 뒤돌아보며 어렵고 힘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어서 오늘까지 이렇게 삽니다.”

모두 떠나고 결국 5월 가족들만 뭉치게 되었을 때도 있었다. 서로 대화도 통하고, 어루만져주는 따스한 정이 깊었던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후회 없었다. ‘오월 어머니 집’은 그 힘으로 그 시절 역사적인 사실들을 알리고, 모두 공감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결정체가 됐다.

대동문화 76호 [2013 5.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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