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와 광주만 해도 박지선의 삶이 꽃피기에는 정말 호사스런 땅임이 분명하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 신지의 물하태 나루터, 볕이 따사한 선창에서 예전 어느 날 한 소녀가 물코를 흘리며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소녀는 완도의 푸르른 바다를 벗 삼아 세상을 알아가고 성장했다. 자신의 삶을 조각해주고 추억을 소중하게 담아준 완도를 떠난다는 것은 대학생이 된 소녀에게는 서운하고 마음 아픈 일이었다.

물에 익숙한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잊고 살듯이, 그 소녀 또한 고향에 너무 익숙해져 그 존재와 의미를 잊고 20년 세월을 살았다. 광주라는 낯선 환경과 맞닿으면서 항상 외로웠다. 낯설음과 외로움이 파고들어올 때면, 소녀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완도가 더욱 그리워졌다.

그럴 때면 소녀는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했다. ‘다시는 내가 머문 곳의 존재와 의미를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겠다. 지금 광주에 살면서 모든 것이 낯설고 힘들지만, 광주의 고유성을 찾아 나선다면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소녀는 이러한 다짐을 공허함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소녀는 깊은 고민 속에서 광주의 존재와 의미를 드러내는 ‘국악’과 ‘5·18’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전남대학교 국악과 2학년이 되던 해에 광주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사람들의 살아있는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목표를 분명히 하고 뛰기 시작했다. 내 자신이 경험한 문화적 체험을 무심코 흘려보내지 않고 항상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경험을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스스로 했다.

‘5.18’을 자세히 알기 위해서 ‘들불기념사업회’의 ‘들불지기 1기 양성 과정’에 참여했고, 국악 이론 전공이었지만 실기 능력이 부족함을 깨닫고 과감히 휴학을 선택한 후에 판소리, 시조창, 전통춤, 가야금 등을 현장에서 직접 배웠다. ‘5.18’을 통해서 광주를 알아가게 되었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고 느끼는 현장에서 국악이 지닌 새로운 예술미를 알게 되었다.

아무리 좁은 도랑이라도 발을 들어야 건널 수 있듯이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현실과 부딪쳐 보자!’며, 여러 친구들과 뜻을 모아 2010년 대중 속에서 함께하는 국악단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탄생시켰다. 화이부동은 소외계층을 상대로 국악 공연과 교육을 하였으며, 일반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국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차근차근 광주와 국악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때쯤 자신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2011년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5.18기념재단에 들어가 문화 사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뜻밖이지만 개인적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꼭 기억해야할 일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했던 일은 기쁨으로 기억되어 인간 주체를 구성하게 되고, 슬프고 아쉬웠던 일은 아픔으로 기억되어 반성과 성찰을 이끌어낸다.

화이부동의 삶을 살고 싶다. 2010년 국악 단체 ‘화이부동(和而不同)’을 탄생시켰다. 소외계층을 상대로 국악 공연과 교육 사업을 했다.

불꽃같은 광주의 오월을 걸으면서

5.18기념재단은 1980년 오월 광주가 지닌 나눔과 상생, 자치의 공동체 정신을 함께 나누고자 ‘청소년 문화제 5.18 RedFesta’, ‘같은 생각 다른 몸짓’이라는 주제의 ‘5.18 청소년 연극제’, 청소년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을 함양시킬 수 있는 ‘5.18 전국 고등학생 토론대회’, 오월 문학의 저변 확대를 위한 ‘5.18 문학상 공모’, 불꽃같은 광주의 오월을 걸으면서 그 날의 역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오월길 탐방’ 등 다양한 교육문화 사업을 진행 중이다.

5.18을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했지만, 오월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5.18 문화 사업에 참여하고 5.18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데 항상 감사함을 느낀다.

오월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어떠한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한지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지금 우리가 잃고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오월 문화 사업의 목적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성찰적 자세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성찰적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것,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국민들이 끊임없이 되새김질하게 도움을 주는 것이 현재 희망하는 일이다.

쓰라림을 삼키며 성장하는 현재진행형 청춘!

20대, 가진 것이 없는 자, 속한 것이 없는 자, 잃을 것이 없는 자, 인정받지 못하고 확인되지 못한 존재이기에 적극적으로 깨지고 굴러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을 세울 수 있다고 믿었고, 내 스스로가 키운 ‘확실한 나’는 많은 기회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광주에 머문 6년 동안 이게 나을까 저게 더 나을까, 가당찮은 욕심을 감당하지 못해 한동안 망설이다 끝내는 ‘에라! 마음이라도 가벼워지자’고 많은 고민과 생각을 씻어 비우고 말았던 적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나 또한 길들여졌던 시간이었다. 때론 아프기도 하고 때론 뜻대로 되지 않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쓰라린 경험을 삼키며 그래도 꿋꿋이 가자고 스스로 다독였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현재도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현재진행 중이다. 소녀는 자기가 꿈꾸고 닿고자 하는 그곳에 ‘나’라는 방점을 찍기 위해서는 늘 긴장하고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대동문화 76호 [2013 5.6월호]

박지선 5·18재단 문화사업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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