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정은 최초로 광주향약을 만든 김문발이 세웠다.

광주시 남구 칠석동 하칠 마을 중심에 부용정(芙蓉亭)이 있다. 이 문화재는 광주 문화재 자료(13호)이다. 그리고 유명한 광주칠석고싸움놀이(중요무형문화재 33호)도, 부용정에서 바라보이는 할머니 당산나무인 칠석동 은행나무(시 기념물 10호)도 문화재이다. 이 칠석동은 예전 대촌(大村)으로 풍요로운 땅이어서 역사가 깊고 마을 공동체가 굳건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기 위한 마을 규약도 일찍부터 강고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향약인데, 학계는 가장 오래된 동약(洞約)을 1475년 시행된 불우헌 정극인에 의해 만들어진 ‘고현동약’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광주 향약’은 광주 남구 칠석동에서 시행된 향약으로 부용정을 지은 김문발이 만든 것이다.

김문발(1359~1419)은 형조참판에까지 벼슬이 이르렀으나 일찍 관직에 물러나 칠석동에 부용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김문발은 동료들과 도의지교를 나누며 ‘남전향약’과 ‘백록동 규약’ 등을 시행하여 풍속을 교화했다. ‘광주향약’이 바로 그것이고, 이 향약이 펼쳐지던 현장이 ‘부용정’이었다. ‘광주향약’이 적어도 1419년 이전에 시행됐으니, 고현동약보다 두 세대 정도는 이른 것이다.

그래서 최근 연구자들은 김문발의 칠석동 ‘광주 향약’을 조선 향약의 시초로 삼고, 이 향약이 풍속을 교화하는 정도에 이르지 못하자, 이웃 마을인 이장동의 이선재(1399~1484)가 향사들과 함께 양과동 향약을 시행했다고 보고 있다. 양과동계 문서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향약의 정신은 7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광주향약’에 대해서는 인조 17년(1639년)에 최초의 광주향교지로 발간된 <광주읍지>에 ‘황해감사를 지낸 부용(芙蓉) 김문발이 광주에서 최초로 향약을 시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 외에 남겨진 증거는 전하지 않고 있다.

朝來雨意欲絲絲 아침에 가는 비 내리더니

向晩晴光蕩綠池 저물 무렵 맑은 빛이 푸른 연못에 비쳐 일렁이네

佳會豈非天所借 아름다운 이 모임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런가

使君行色自應遲 임금의 명을 받든 사람 행색 자연 늦어지리라

지금 현판에 남겨진 송천 양응정(1519~1581) 선생의 시문에서 ‘아름다운 이 모임이 하늘의 뜻’이라는 구절이 시사하는 바가 바로 향약일 것이다.

부용정은 송나라의 주돈이의 ‘애련설’을 본 따 붙인 것이다. 선비의 고결한 기품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군자들이 연꽃 같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모인 정자라는 뜻이다. 그 마음은 곧 공동체 정신의 실현이었다.

송천 양응정 선생의 시에서처럼 부용정 곁에 연당(蓮塘)이 있었다고 한다. 제봉 고경명, 동악 이안눌 등의 누정제영이 걸려있다. 호남 가단(歌壇)의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 가꾸기의 시행처가 바로 이곳이었다.

내남없이 한뜻으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던 대촌 사람들의 마을 공동체 정심. 이것이 ‘광주 정신’, 인본과 평화와 민주의 정신의 뿌리가 아니겠는가?

대동문화 76호 [2013 5.6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