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문화재단 사무처장 백승현

[문화산책] 이제 절기로는 우수.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솔솔 봄기운이 돈다. 마스크를 쓰고 나서 우리는 입과 코와 볼을 잃어버렸는데 그것은 우리 오감의 5분의 3이다. 매화의 멍울이 터지기 직전 봄바람이 볼에 닿고, 매화 향기도 달다. 이제 곧 봄나물이 향긋할 것이다. 어디든지 나가 산책하고 봄을 맞아 놀 수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동네 어귀에서 친구네 집 담장 너머로 외치던 시절이 있었다. “얘들아 노~올자!” 이렇게 외치면 친구들은 금세 기다렸다는 듯이 골목 어귀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광경을 바랄 수조차 없다. 코로나19가 혹심한데, 놀자고 친구들을 부르는 눈치 없는 녀석이 있다니! 집안에서 아이들에게 나가지 말라고 눈치 구박을 주며 친구의 어머니는 혀를 끌끌 찰 것이다. 아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들은 친구 자체를 잃어버렸다. 그러니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한다.

“이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해.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바깥세상에서 불평등과 차별에 시달려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 이길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대사 중 하나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의 세상은 게임을 주최하는 유산계급,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권력을 가진 관리자, 게임을 수행하는 무산계급이 등장하고, 이들의 사회적 관계는 절대 공평하지 않다.

벼랑 끝 삶을 살다가 게임에 참여한 456명은 인생 역전의 희망을 품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갈림길에서 승부하다 차례차례 죽음을 맞을 뿐이다. 이 게임 속에서는 최후의 승자도 더이상 행복하거나 희망을 꿈꿀 수 없다. 극중 인물 중 하나는 이렇게 외친다. “여기가 더 지옥이야!”

불공정한 현실의 지옥에서 탈출하려고 공정한 룰이 있는 게임 속으로 진입했는데, 거기가 더 지옥인 현실을 오징어게임은 그리고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오로지 승자독식의 게임 규칙만 있고 이 게임에서 패배한 자는 공평하게(?) 죽음이 주어질 뿐이라는 참혹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왜 오징어게임은 딱지치기나 술래잡기 등과 같은 전통놀이를 영화의 소재로 소환했는가? 민속놀이는 참여자가 놀이의 규칙을 따라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 서바이벌 규칙이 적용되는 놀이다. 모든 참여자가 놀이의 규칙에 따라 공정하게 할 수 있으니 누구나 평등하게 이길 자격이 있고 똑같은 승률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또 놀이를 하다가 죽은 사람은 다음 게임이 시작되면 다시 살아난다. 죽지만 다시 살아나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상황이 놀이에 재미와 흥미를 더해 준다.

하지만 오징어게임의 규칙은 다르다. 오징어게임은 자본주의 불공정한 사회규범을 상징한다. 민속놀이에서는 죽어도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지만, 오징어게임에서는 한번 죽으면 절대 되돌아올 수 없다. 그것은 가진 자만이 승리할 수 있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게 설계된 계급 자본주의의 논리에 다름없다.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융화된 놀이는 상대와의 경쟁성, 또 다른 세상에 대한 모험성, 흥을 뜻하는 유희성, 즐김을 나타내는 오락성,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성, 사회인이 되기 위한 교육성, 지역의 언어와 문화 예술을 반영한 향토성을 지닌 활동이다.

우리는 잘 놀고 있는가? TV, 스마트폰, 게임 없이 놀 수 있는 한 시간을 주면 우리는 어떻게 지낼까? 우리는 지금 단 10분도 마음껏 놀 줄 모른다. 그렇다. 우리의 문제는 놀 줄 모른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인격 장애, 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화병, 공황, 사회불안 장애, 학교 부적응, 분노 조절 장애 등의 정신증이 아동기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성인기까지 점차 확대 심화되고 고질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적 사건들은 이런 정서 장애가 누적된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OECD 회원국 중에서 행복지수가 꼴찌인 나라의 국민이다.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 놀아야 한다. 밥을 먹듯 놀아야 하고, 놀이는 모든 문제의 답이다. 행복지수는 놀이 시간과 비례한다. 놀이는 판단력, 추진력, 해결력을 기른다. 성취감을 얻고, 집중력과 사고력이 향상된다. 협동심과 사회성 발달에 도움을 준다. 정서적 능력을 증진하고 놀이를 통해 창조적 인식을 기른다. 놀이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밥이다.

놀이는 상징화되기 이전의 본능적인 느낌과 정서, 직관, 쾌락을 선사한다. 예술가들은 이 쾌락을 내면화해서 창조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놀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이것으로 새로운 예술이 가능해진다. 놀이는 예술가들의 창조의 원천이다.

요한 호이징가는 1938년에 출간한 ‘호모루덴스’에서 인간은 놀고 즐기는 존재로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은 놀이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은 탁월한 호모루덴스다. 놀이와 신명과 풍류로 문화적인 인성과 감성을 길러온 민족이다. 남도의 문화예술은 풍류를 핵심으로 하는 놀이문화다. 남도 사람들의 DNA에 깃든 것은 바로 놀이문화에서 온 예술적 문화적 창조성이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치유와 관계의 회복, 환경과 사회의 조화가 놀이와 체험교육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우리 놀이를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우리의 미래 문화자원으로 재창조하는 일이 팬데믹 시대 우리가 준비하는 문화 콘텐츠의 미래다.

비대면의 외톨이 시대. 통합의 공동체가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다시 놀이로 희망한다. 새봄 친구네 집 담장 너머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친구야 우리 함께 노~올자! 우리 봄처럼 새로워지자. 어서 나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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