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정동 466, 효자 정계흥 지려

“이 정려는 모암의 효자각으로 이름은 국흥이요 자는 계흥이며, 나주 정 씨이다. 공은 정조 1780년 4월 14일에 나주 관동면 효동마을에서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성품이 효에 이르러 어버이를 겨울에는 따숩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섬기고 좋은 것으로 공경하였다.

순조 1828년 겨울에 아버지의 병에 정성을 다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 한 겨울에 구하기 어려운 잉어를 몸소 얼음을 깨고 잡아 공(供) 하였다. 또 손가락을 깨물어 깨끗한 피를 입에 넣어 3일간 연명케 하였으나 상(喪)을 당하니 심히 슬픔을 참지 못하고 거적 자리에 땀과 눈물이 젖었다. 그리고 묘제 40리를 상(喪) 중에 비록 대풍, 대설이라도 집에 있지 않고 산소를 깨끗이 하였다. 또한 칠순의 어머니가 항상 중풍에 양 눈이 어두워 사지를 거두지 못하니 낮에는 업어 드리고 밤에는 슬하를 떠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30년 하니 어머니 연세 90이고, 아들 나이 70에 얼룩진 옷을 입고 어린아이들의 장난 놀이를 하여 마음을 기쁘게 함이 늙어서도 한결같았다. 금전이나 곡식을 출입함에는 반드시 웃사람에게 고한 연후에 행하고 자기 몸을 낮추었다. 또 삼년상을 치르는 중 밤에 홀연 묘 움막 앞에 흰 비둘기 한 쌍이 살며 새벽에 가니 인근에서 보고 들은 자마다 칭찬하더라. 그 해 송충이가 극성하여 원근의 산색을 해치어 푸름이 없어졌으나 공의 산소는 홀로 초록이 무성하여 푸르름을 이룩하니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 모두가 바라보며 기이하게 여기었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외로운 조카 윤언과 윤지의 돌보기를 자식같이 여겨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타이르며 혼인 시켰다” 이것은 광산구 지정동 466에 있는 효자 정계흥 지려에 있는 석비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가정에서의 효도는 임금님에게 충성하는데 까지 자연스럽게 연장되어 국왕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지배 이념으로 보아서 적극 장려되었다. 조선 시대 문화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효자를 낳았고, 그들의 지극한 효심은 학자들의 문집에 담기거나 효자비의 비문에 실려서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덕행의 표준이 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것을 포함한다. 효자의 전형적인 행위는 아마도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사경에 헤매는 부모를 구출하여 낸 효자들과 3년 상(喪) 기간 중 여막 생활을 해낸 효자들인 것 같다

호조 판서로 추증하다

효자의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를 알아보자. 조선 시대 고산 현(高山縣)의 아전이었던 유석진(兪石珍)은 아버지가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려서 날마다 한 번씩 발작을 하며 기절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를 곁에 밤낮으로 모시고 간호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하늘을 쳐다보고 울면서 사방으로 의원과 약을 구하러 다니기도 하였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그 병에는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피에 섞어 먹이면 낫는다고 한 말을 듣고 그는 곧 자신의 무명지를 잘라 그것을 피에 섞어 아버지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전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모가 사망한 뒤 삼년상(喪) 기간에 여막 생활을 하는 일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면 흔히 따랐던 관습이었다. 상복을 입은 3년 동안 부모의 무덤 옆에다 여막이라고 부리는 임시 거처로 서의 움막을 지어 생명을 부지할 만큼 최소한의 음식만을 들면서 매일 상을 올리고 곡을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전국에 수많은 효자 이야기가 있는데 위의 두 가지가 빠지지 않고 거의 들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병환 중에 있는 어버이를 봉양하는 이야기도 자주 나온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로부터 공식적인 효자로 인정받는 데는 대단히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길게는 100년이 필요했다고 전한다. 정 계흥이 어릴 때부터 효도를 했다는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부모와 조부의 효(孝)까지 연결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효(孝)는 부모나 이웃의 강요에 의해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어릴 적부터 부모의 행동을 보고 배워가며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체득되기 때문이다. 어떤 집안에 나라에서 인정할 만한 효자가 나왔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그 가문이 대를 이어 꾸준히 효를 실천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지켜보고 결정했던 것이다. 효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개인이나 가문의 명예와도 관련되어 있었다.

효도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편액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까마귀 어미가 둥지에 알을 낳고 20일 간 품어서 새끼가 부화되면 엄마, 아빠 까마귀가 산과 들,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벌레를 잡고 물어다가 새끼들을 열심히 키운다. 부모의 힘겨운 정성과 사랑 덕분에 새끼들이 다 자라게 되면 부모들은 이미 늙고 무기력하여 잘 날지도 못하고 먹이 사냥을 나갈 수 없게 된다. 그때에는 새끼들이 저희들 어렸을 때를 생각하여 엄마, 아빠 까마귀를 둥지에 앉혀 놓고 벌레를 잡아다가 부모를 부양하는 효도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효자 정계흥은 중풍에 걸린 늙은 노모를 극진히 봉양하고 그 역시 칠순의 나이에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들의 장난 놀이를 하여 노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는 기록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모든 효도 가운데 색동옷을 입은 모습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고 싶다. 잔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오랫동안 투병하는 부모를 모시는 것은 몸과 마음이 지치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효도의 정수는 늙고 무기력하여 먹이 사냥을 나갈 수 없는 부모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형제간에 우애하고, 일찍 부모를 여읜 외로운 조카들을 자식같이 여겨 돌보아 혼인까지 시켰다는 효자 정계흥을 통하여 우리는 효(孝)가 부모로부터 출발하여 형제간에 우애로 나아가고, 이어서 담을 넘어 이웃사랑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선조들은 효자가 아닌 사람은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 덕목인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 등의 높은 도덕관념을 가질 수 없다고 보았다. 효자에 관한 각종 기록을 찾아보니 전국 각지에 효자들의 이야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론은 살아 계실 때 잘 모셔야 된다는 것이었다. 부모가 잘났든 못났든 장애인이든 아니든 현재의 그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잘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나서야 얼마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뒤늦게 후회하는 잘못을 하게 된다. 정 계흥의 효도는 사후에 나라에서 호조판서라는 높은 벼슬로 추증하였다. 그의 효심이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났음을 나라에서 인정한 것이다. 백발의 칠순 노인이 색동옷을 입고 노모(老母)와 소꿉놀이하는 장면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김귀백 기자  gasun6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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