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본강을 연해 형성된 호이안 올드타운

베트남 중부에 있는 호이안은 투본강 Thu Bồn River을 끼고 내륙에 형성된 도시다. 인구 12만 명이 사는 작은 도시지만 15세기에는 바다의 실크로드를 지나는 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닷길은 멀리 중동과 동아프리카까지 이어졌는데, 아시아와 유럽 상인들이 드나들며 상업과 문화가 교류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정착해 생활하면서 베트남 고유문화에 다양한 아시아 색채가 더해졌다.

19세기 들어 인접한 다낭(베트남 중부 최대 도시) Đà Nẵng으로 상업 중심지가 이전하면서 호이안의 번영은 막을 내린다. 역사의 주인공 자리를 내주기는 했지만, 호이안은 개발이 아니라 보존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며 200년 전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와 항미 전쟁(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피해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 되고 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호이안의 올드 타운은 길 다섯 개가 전부다. 길어야 500m 정도 되는 길이 차분하게 이어진다. 호이안은 폐허가 된 유적지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마을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의 숫자를 합치면 모두 844개나 된다. 폭이 좁고 기다란 전형적인 베트남 양식의 가옥들로 대부분 2층 건물들이라 단아하다. 건물 하나하나가 주는 굵직한 선의 아름다움은 없다. 하지만 이끼 긴 담, 잔풀 무성한 기와지붕, 세월만큼이나 검게 변한 나무 기둥은 아시아에서 느낄 수 있는 목조 가옥의 매력을 한껏 풍긴다.

호이안에서 이정표 역할을 하는 곳은 내원교(來遠橋) Lai Viễn Kiều다. 호이안에 정착한 일본 상인들이 1593년에 건설한 석조 교량이다. 돌다리 위에 나무 기둥과 기와지붕을 얹어 일본풍으로 건설했다. 내원교는 일본인이 정착한 마을과 중국인이 정착한 마을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호이안이란 지명은 16세기부터 유럽에 파이포 Faifo로 알려졌다. 바닷가 마을을 뜻하는 하이포(海埔) Hải Phố가 와전된 것이다. ‘하이’는 성조를 달리하면 바다가 아니라 ‘둘’이란 뜻이 된다. 이 때문에 두 개의 마을 즉, 중국 상인 거주 지역과 일본이 상인 거주 구역으로 구분됐던 호이안의 17세기 풍경일 것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건물 하나하나가 호이안의 역사다.

호이안의 느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고가옥과 향우회관이다. 중국 상인들이 정착해 만든 건물들로 중국적인 색채가 강하다. 같은 고향 출신의 상인들이 친목을 도모하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향우회관도 건설했다. 중화회관(中華會館), 푸젠회관(福建會館), 광둥회관(廣東會館), 하이난회관(海南會館) 등 중국 남방의 지역적인 색채가 향우회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패방, 현판, 안마당, 정원, 본당으로 이루어진 향우회관은 티엔허우(天后聖母) Thiên Hậu와 관우(關羽) 동상을 함께 모셔 불교·도교 사원처럼 변모했다. 티엔허우와 관우는 먼 길을 떠나는 상인들이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소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부유한 상인들이 건설한 고가옥도 호이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주거와 상점 기능을 동시에 해결하도록 설계된 고가옥에는 여전히 가문의 후손이 대를 이어오며 생활하고 있다. 떤끼 고가(進記古家) Nhà Cổ Tấn Ký는 7대 후손이, 풍흥 고가(馮興古家) Nhà Cổ Phùng Hưng는 8대 후손이 생활하고 있는데, 외방객이 방문하면 집안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호이안의 삶의 속도는 느리다.

호이안의 매력은 ‘생물’처럼 숨 쉬고 있는 공간 그 자체다. 200년이 넘은 목조 가옥들은 기념품 상점, 공방,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으로 변신했지만, 옛 공간을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다. 음식·문화·축제까지 무형 문화재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호이안은 작고 조용하다. 호이안의 삶의 속도는 느리다. 베트남에서 상상하기 힘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없는 거리가 호이안에 존재한다. 차량 통행을 금지해 고즈넉한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길을 걷거나 시클로를 타고 풍경을 바라보기 더 없이 좋다. 오래된 가옥들은 좁은 길들과 수많은 길모퉁이에 의해 세분화되어 한 폭의 그림처럼 정적인 아름다움으로 포장된다. 가정집을 개조한 레스토랑은 그 자체로 앤틱 하다. 목조 가옥을 장식한 홍등이 불을 밝히면 낭만적인 느낌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런 모든 것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훌륭한 목조 가옥 마을이란 평가가 결코 헛되지 않아 보인다.

[대동문화 70호, 2012년 5. 6월호]

여행작가 안진헌  www.travelra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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