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제 전관 전경

구름과 숲이 어우러진 신선들의 마을 운림동, 그곳에 아름다운 문화 공간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운림제’다. 정원에서는 생명의 숨결이 일고, 한옥건물은 격조 있고 아름답다.

무등산 자락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운림제, 그곳의 전체 면적은 9,900㎡(3,000평)이다. 관상용 분재와 야생화를 모아놓은 자연학습장 ‘아름다운 우리강산’과 민화와 춘화가 그려진 부채를 전시한 ‘전통부채 박물관’이 있다.

또 전통예절과 다문화를 체험하는 ‘다도예절 학습관’, 전통문화 체험 공간인 ‘체험 학습관’을 함께 운영한다. 공간이 무척 아름답다. 사람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는 개성 있는 경관을 창출해 2006년 아름다운 문화도시공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도문화예절관은 1910년(숭정 301년)에 지어진 기품 있는 전통한옥과 넓은 정원에 심어진 수많은 수종의 나무, 수석, 야생화가 조화를 이룬다. 운림제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의 중심은 조화다. 누운 향나무, 현무암, 철쭉, 야생화 등으로 조성한 분단 없는 한반도 모형의 ‘분경’에서는 주요 산 높이, 주요 산맥, 강발원지를 한눈에 보고 알 수 있다.

의미 있는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자연체험 학습으로 다도, 천연염색, 한지공예, 토우 공예가 운림제만의 특징적 체험프로그램이다. 부채 박물관(200평)에는 역사관, 문화관, 성인관이 있다. 700여점의 다양한 부채가 소장돼 있고 그 시대를 반영한 다양한 풍속화부채를 관람할 수 있다. 성인들의 성풍속인 누드, 춘화부채도 볼 수 있다. 또 부채에 풍속화를 색칠을 할 수 있는 가족적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동적골로 향하는 한적한 마을에 있는 ‘운림제’의 정체는 뭘까?

햇살을 머금은 봄꽃이 나무 사이사이 속살을 환희 드러내 보이듯 운림제는 하얀 봄과 닮아있다. 입구에 들어선 학습장(체험학습공간을)에는 우리나라의 지도를 축소해 놓았다.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표현해 놓고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강줄기와 산의 지명을 표시했다.

아름다운 분경과 야생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학습장이다. 가로 15m, 세로 51m 크기의 <아름다운 우리 강산>관은 현무암과 누운 향나무, 철쭉, 라일락, 여러 종류의 야생화로 조성한 우리나라 인공 조형물인 것이다.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이 솟구치고 압록강과 한강이 흐르는 여기에는 3·8선이 없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태어난 국토를 한눈에 바라보고 산과 산맥 또는 강 발원지를 알게 했습니다. 이 땅의 주인이 될 꿈나무들이 공부 못지않게 익혀야 할 중요한 과목입니다.” 운림제 대표 하쌍호 씨의 장남인 하재두 씨의 말이다.

운림제 기획실장으로 있는 하재두 씨, 누구보다 운림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크다. “모든 사업을 접고 10년이란 시간 동안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아버지의 개인적인 노력과 궂은일을 했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탄생된 장소라 하나부터 열까지 소홀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애착은 운림제의 공간과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문화적 사고로 이어진다. 그는 단지 운림제가 문화의 공간만이 아니기를 바란다. 운림제가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대표적인 지역발전형 기업으로 성장하길 바라고 있다.

“사실 소정의 입장료를 받고 있지만 운영비로 쓰기에도 버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체험학습과 평생교육을 하는 데 앞서 학습자들에게 금전적 부담을 안겨 주는 게 죄송스러워요. 실제로 운림제에 상주하던 문화예술가 분들이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떠나는 모습을 몇 차례 보고 고개를 숙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하재두 씨는 국비지원 실업자 계좌제 교육을 지난 17일부터 실행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취업을 위한 국가의 지원이지만 사실 예술교육은 일자리 창출과 큰 연관이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지원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는 아직까지 고민이 됩니다. 문화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몸으로 와 닿지 않아서 아쉬움이 큽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살아간다

운림제가 들어선 자리, 그곳은 원래 쓰레기 매립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버려진 공간이었다. 운림제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 버려진 공간을 가지런히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집 이름에 ‘집제’가 아닌 ‘가지런할제’를 사용했다.

“땅값 비싼 도시에 내 집을 새로 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죠.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집을 보러 다니다 기존 주택과 인근 부지를 여러 차례에 걸쳐 사들여 당신이 만족하는 공간으로 만들다보니 결과적으로 이렇게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긴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짧게 다듬어진 잔디가 깔린 정원 주변은 봄부터 가을까지 수많은 꽃과 나무들로 넘쳐난다. “영산홍만 7천만 원어치가 심어졌어요.” 300여종의 야생화, 향나무, 상사화, 백일홍, 금목서 등도 담장을 대신해 심어져 있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은 나무에 반해 영산재 쪽으로 고개를 내민다. 소나무도 많다. 가지가 둥글게 퍼지면서 자라는 반송을 비롯해 백송. 금송 등 50여 수종이 정원 한쪽을 채우고 있다.

“아버지는 보기 좋은 꽃들과 나무를 집 바깥에 심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조금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다보니 욕심이 생겨 예상보다 돈이 많이 들어갔어요.”

넓은 정원을 따라 걷다보면 고즈넉한 한옥을 마주하게 된다. 한옥하면 으레 수십 칸 크기로 생각하지만 하씨의 사택은 작고 아담하다. 하지만 정원 쪽으로 환하게 열려 있어 답답하지 않다. 나무 기둥과 툇마루는 반질거린다. 손에 닿는 촉감은 따뜻하고 편안하다. 툇마루에 앉으면 시선이 먼 곳으로 향한다. 녹색 정원 너머 무등산의 숲과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청마루는 다실로 리모델링했다. 테이블이 있어 담소를 나누기도 좋다. 하씨 부자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정성을 들인 만큼 욕심도 크다. 시민들이 만족할 만한 광주의 대표적 자연친화적인 공간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데가 많다는 것이다. 일단 공간이 한옥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또 전문 해설사를 배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인근 미술관과 연계한 문화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운림제는 그 자체로 전통이 빛나는 공간이다. 넓고 큰 돌 바위에 앉아 무등산을 바라본다. 떨어지는 꽃잎도 아름답다. 도심 속에서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운림제는 국제행사와 함께 우리지역 문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야외장소로 손색이 없다.

운림제는 안과 밖이 함께 열려 있다. 그곳에는 담이 없다. 담을 대신해 수많은 꽃들과 나무, 돌, 야생화가 피어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울타리 없는 공간, 그것이 운림제가 아름다운 진짜 이유다.

[대동문화 70호, 2012년 5. 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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