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 대동문화 출판‧미디어본부장

<공간 혁명>이라는 책을 권한 사람은 전남 강진대구중의 강정희 선생님이다. 40여 년 동안 전남의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해 왔고 올해 정년퇴임을 앞둔 국어 선생님이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불러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작은 자취방에서 아이들은 담요 한 장에 발을 넣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가족들이 돈 때문에 얼마나 지치고 힘든지, 해체된 가족 환경에 얼마나 외로운지, 집에 가기 싫은지 하는 내용이었다.

아침에 등교하고 싶은 학교, 돌아가 쉴 수 있는 집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줄 수 없을까를 고민했다. 외롭고 마음이 힘겨운 아이들을 선생님의 눈높이에서 감싸고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소파와 텐트가 있는 교실’을 구상했다.

학교는 단체생활을 하는 곳이기에 혼자만의 장소가 없고, 편안하게 쉴 곳도 부족하고, 더구나 미적으로 배려한 공간은 전무하다. 그래서 변화를 시도해보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실 공간을 다시 디자인해 보았다. 앉아서 수업을 하는 개인 책상, 긴 책상 3개를 마주 붙여서 함께 모둠 활동을 하는 자리, 안락의자와 원탁, 그리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은 텐트를 배치했다. 적은 비용으로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시작해볼 수 있는 환경 다듬기였다.

면과 린넨 레이스 등의 천으로 교실 공간들을 덮어주기, 벽에 복제명화 걸기, 창가에 식물 키우기, 계절에 어울리는 소품으로 교실 꾸미기 등으로 따뜻한 느낌으로 교실을 다듬었다.

학교 화장실에 화분, 화병, 그림, 액자 등을 가져다 놓으면, 학생들은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집 화장실 같다고 하면서 정성 들여 청소를 했다. 카페 같고, 미술관 같고, 북카페나 독립서점 같은 학교 공간에서 학생들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을 모아 선생님은 <다정한 교실에서 20000시간>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 책의 핵심은 ‘당신이 사는 장소가 바로 당신이다.’쯤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공간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 글을 읽고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즐겁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도시의 과밀학급에서는 도저히 꿈을 꿀 수도 없는 ‘작은 공간 혁명’이었다.

광주북초등학교 김준영 교장 선생님은 학교에 특별한 공간이 있는데 바로 학교 안의 ‘논’이라고 말한다. 2019년부터 시작한 ‘꼬마농부 프로젝트’는 이 논에서 전교생이 농사를 지어보고 수확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볍씨를 심고, 정성 들여 작물을 키우고, 수확한 작물을 이웃 주민과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 바로 공동체 정신을 배우는 교육이다. 학생과 학부모와 교직원, 마음 주민들이 합심해 추수를 하는 ‘가을 추수 한마당’을 개최하면서 교육공동체가 함께했다.

교사가 낡아 2016년에 학교 증개축위원회를 결성했다. 2018년에는 학교건축 전문가 그룹과 협약을 체결했다. 학교가 어떻게 증개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방침을 정했다. ‘광주북초의 교육공동체가 함께 설계하고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모두 함께 경청하고 공유하고 토론하고 결정한다.’

이렇게 해서 2020년 12월에 학교가 완공됐다. 중개축으로 과거를 추억하는 공간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공간이 공존하는 독특한 형태의 건축물이 태어났다. 학교 공간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학교가 아이들한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한 결과였다.

<공간 혁명> 책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예술적 감동은 우리 삶에 실제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런 영향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예술과의 관계를 맺을 때만, 그리고 어쩌다 가끔 짧은 시간 동안만 일어난다.

반면 건축 환경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기분과 정서, 신체감각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며 만들어 내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삶의 모습을 규정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광주시는 최근 건축물 최고 높이 규제 폐지, 창의적인 도시건축 디자인 향상제도 추진을 통해 디자인 도시로서의 품격을 높이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의 변신을 위한 건축 정책이다.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무언가를 건축하는 작업은 상당한 자원 즉 디자인, 설계, 재정 확보, 허가 취득 과정, 사회적 공감대 등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보다 더 오래도록 건축은 존재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건축 환경을 디자인할 때 단기적이고 편협한 이익에 몰두해서는 안 된다. 무관심, 본능적인 반감, 부패나 탐욕 같은 요소에 의해 도시가 부적절하게 디자인되면 안 된다.

우리는 지역민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디자인적인 고민 없이 만들어진 건축물이 어떻게 우리 미래를 파괴할지를 알고 있다. 공동체의 관심과 당대와 미래 세대가 행복한 삶을 열어갈 도시의 공간 창조가 바로 우리의 행복 창조라는 것을….

백승현 대동문화 출판‧미디어본부장  qodqod83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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