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상열 대동문화재단 대표 |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근본을 알기 때문이다. 근본(根本)은 그 사람의 뿌리로 그가 어디서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사람이 자신의 뿌리, 곧 근본을 알지 못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여겼다. 전통 사회에서는 ‘근본이 없다거나 근본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은 그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다는 매우 모욕적인 표현이었다.
뿌리가 튼튼해야 가지와 꽃이 무성한 법이다. 용비어천가에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므로 꽃도 좋고 열매도 충실히 맺고, 샘이 깊은 물은 가물어도 그치지 않으므로 냇물을 이루어 끝내 바다에 이른다.”(根深之木 風亦不扤 有灼期華 有蕡其實 源遠之水 旱亦不竭 流斯爲川 于海必達)는 말은 불후의 명문으로 오늘날도 널리 회자(膾炙) 되고 있는 글귀이다.
중국인과 한국인 등 유교문화권 사람들은 누구나 성씨와 이름을 갖게 된다. 이때 성씨 앞에 김해 김씨, 밀양 박씨, 창녕 조씨처럼 동족(同族) 집단을 상징하는 고을 이름이 붙어있다. 이를 본(本), 본관(本貫), 본향(本鄕), 관향(貫鄕)이라 한다. 본관은 성씨의 시조(始祖)가 탄생한 땅과 임금에게 하사받아 봉해진 지역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시조 이후의 후손들은 이 본관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연결성을 갖게 되므로 꿸 관(貫)을 써서 관향이라 한 것이다. 동족은 보이지 않는 한 핏줄로 이어진 관계라 해서 혈연(血緣)이라 한다.
성씨는 중국에서 처음에는 관직, 하는 업종, 출신 지역과 지명, 태어난 곳에 따라 성씨를 지었다. 무(巫)씨, 복(卜)씨, 마(馬)씨, 우(牛)씨, 류(柳)씨, 양(楊)씨, 석(石)씨, 금(金)씨, 백(白)씨, 황(黃)씨 등이 직업과 색깔 등에서 비롯한 성씨인 것이다. 성인 노자(老子)는 오얏나무 아래서 태어났다고 해서 성씨를 오얏 리(李)를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박혁거세, 김수로, 석탈해 등이 처음 성(姓)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관을 자신의 뿌리로 생각하여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성씨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가문과 족보를 중시하는 전통 속에서의 본관은 집안의 결속을 다지는 최고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증에서도 특히 유교문화권인 중국과 한국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중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꽌시(關係)’는 그들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간관계를 나타낸다. 정권과 법률이 어떻게 변하든 오직 나를 위해 신분이 높은 사람, 좋은 사람들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지연(地緣), 학연(學緣), 혈연(血緣)이라는 연줄로 엮여 있다. 이러한 연줄을 타고 크고 작은 부탁과 청탁 등 다양한 일들이 엮인다. 부탁을 안 들어주면 인정머리 없는 인간. 배은망덕한 사람, 그 자리에서 얼마나 있나 보자 등의 원망과 악담이 쏟아지곤 한다. 이 삼연(三緣) 중에 혈연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혈연 가운데서도 혼맥(婚脈)으로 엮어진 혼연(婚緣)은 보통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인연이다. 이 혼연은 서로 갈라서기 전까지는 끈끈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람을 사귀다 보면 유독 붙임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더욱 좋은 인상을 남긴다. 첫 만남의 딱딱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며 좌중을 압도하는 위트와 재치를 장점으로 가진 사람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직업적으로도 마케팅이나 세일즈 분야가 적합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인간(人間)’이란 말은 곧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의 중요성을 말해 주는 단어이다. 앞서 중국인들이 중요시하는 ‘꽌시(關係)’라는 것과 상통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관계를 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이 친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는 호칭이 큰 힘을 발휘한다. 형님, 동생은 물론, 이모, 삼촌이라고 굳이 호칭하는 경우이다. 한국 사람들은 식당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처음 본 여성에게도 이모라 하고, 골프장에서 캐디에게도 언니, 삼촌이라 호칭하며 친근감을 표한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이런 점을 다소 의아스럽게 여긴다고 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고향과 학교는 어디인지, 나이 등을 따져서 형님, 동생으로 연을 맺으며 금방 친분관계를 형성한다. 어떤 사람과 사업 관계를 맺거나 사교(社交)를 하거나 연인(戀人)을 사귀는 등 관계를 설정하는 데는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열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 보여야 한다는 것이 우선의 원칙이다. 내 카드를 숨겨두고 상대의 카드만 먼저 보려 한다면, 도둑놈 심보다. 마음을 먼저 연다는 증표가 호칭이다. 형님, 동생 하는 호칭은 시작은 어색할 수 있지만, 자칫 서먹해질 관계를 빠른 속도로 가깝게 하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금방 친해진 관계는 쉽게 틀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 문제다. 서로의 깊은 인간성을 알지 못하고, 사귐의 목표만 달성하려는 성급함이 나쁜 상처를 남기게도 한다. 물론 사람을 사귐에 있어 자로 재듯이 너무 따지고, 이해(利害)를 먼저 생각하다 보면 사귈 사람이 별로 없다.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경계와 의심으로 대하다 보면 스스로 때가 묻은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경상도의 양반문화 중에는 ‘허교(許交)’라는 절차가 있다. 만나자마자 바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그 사람의 인품과 학문, 행실을 겪어 본 후에 본격적인 ‘사귐을 허락한다’는 의미의 절차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귀어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계가 얼마나 진실하게 지속되느냐 하는 것에 방점을 둔듯하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수구초심(首丘初心). 처음의 의지나 마음을 잃지 않고 계속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인간으로서의 지켜야 할 근본과 최소한의 기본적 도리(道理)란 말이 무색해 진 우리 사회. 오늘날 급속도로 변화되어가는 사회 현상에서 심적 부담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세상이다.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목포시 관광협의회, 국립 목포대 의대유치 성명 발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