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공항에서 상해 푸동공항까지는 한 시간 10분 가량 소요되었다.

내가 처음 상해에 갔던 것은 13년 전이었고, 그 첫인상은 한 마디로 불결하다는 것이었다. 음침하고 낙후된 건물들, 회색의 얼룩진 베란다에 펄럭거리던 우중충한 빨래가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그러나 다시 만난 상해는 몰라보게 깨끗하고 거대하고 그리고 높아져 있었다.

상해에 왔다 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곳부터 들러야 한다. 절망의 시대를 증언하는 유물들을 둘러보면서 오늘날 우리 민족이 살아남은 것은 당시 애국선열들의 희생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였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일원이 되어서 지나간 일을 돌아다볼 수 있게 된 것을 그분들께 감사하였다.

 

한국어가 통하는 해외여행

외탄(外灘)은 상해를 대표하는 건물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 아래로 황포강이 흘렀다. 88층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서 사람의 팔꿈치에 밀리면서 겨우 빠져나왔다.

상해에서 장가계 공항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광주에서 상해로 갈 때나 상해에서 장가계로 갈 때나 승객 100%가 한국인이었다. 장가계에서는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해도 걱정할 것 없었다. 그들이 앞질러 한국어를 배우고 한글 안내문을 써붙였으니까. 여기는 영어가 힘을 얻지 못하였다.

장가계는 원래 대용(大容)이라는 도시였는데, 후에 장씨들의 집성촌이 되어 장가계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한 고조인 유방을 도왔던 공신이요 지략가인 장자방은 유방으로부터 제거될 것을 미리 눈치 채고 피신하여 장가계 지역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장가계는 1980년대에야 개발되었다. 홍콩과 대만의 사진작가들이 장가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세계사진 대회에 출품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장가계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 넓어도 그렇지, 장가계처럼 방대한 천하의 절경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관광지로 개발하여 세계적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시작한 것이 근래라는 말일 것이다.

 

천 원! 천 원!

장가계 첫날은 안개가 자욱하였다. 동양화에서 안개가 풍경을 더 운치 있게 하듯이 오늘의 절경을 더 그윽하게 할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우산도 천 원, 비옷도 천 원’이라고 외쳤다. 군밤도 한 그릇에 천 원, 엿도 천 원이었다. 그리고 구걸하는 걸인들도 천 원을 졸랐다. 천 원이라는 한국 돈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화폐의 이름인 것 같았다.

전혀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데도 마치 위대한 예술가가 최대의 기법을 동원하여 깎고 빚고 다듬어낸 작품 같았다. 중국의 동양화가 결코 과장된 환상이 아니라 사실의 일부를 표현한 것임을 알 것 같았다. 장가계는 웅장하고 거대한 그림이었다. 혹은 직육면체의 탑, 원뿔기둥, 거대한 추, 혹은 이상한 나라 자이언트의 조상 같기도 한 산봉우리들. 봉우리들의 단면은 높이가 엄청난 시루떡을 세로로 가늘게 잘라놓은 것 같았다. 묏봉우리 꼭대기에 옆구리에 나무들은 용케 뿌리를 뻗고 아슬아슬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장가계를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고 형용해야 할까? 나는 알맞은 말을 계속 찾으면서 걸었다. 좋은 경치 앞에서 자꾸 우울해지는 기분, 그 기분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혼을 뿌리까지 뽑힌 것 같기도 하고 거대함 앞에서 주눅이 들어 어안이 벙벙한 것 같기도 하였다. 엄청난 신비와 장엄함이 나를 두렵게 하였다. 두려움은 초능력의 예술품 앞에서 절감하는 인간의 한계와 비애일까.

 

열쇠는 계곡에 던져라

보봉호(寶峯湖)는 삭계곡 자연보호구에 있는 조용한 호수였다. 석영사암 봉우리 사이에 댐을 쌓은 길이 2.5㎞, 평균 수심이 72m인 인공 호수. 거꾸로 투영된 산의 그림자가 호수를 더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안개에 덮인 보봉호는 얇은 실크 커튼을 쳐놓은 듯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커튼을 걷고 내다보듯이 앞으로 바짝 다가가서야 경치를 만나고 다시 만나고 하였다.

마치 로렐라이 언덕에서처럼, 소녀가 호숫가 정자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호수 안에는 조그마한 섬이 있고, 바깥쪽에 솟아있는 봉우리들이 물을 감싸 안고 있어서 위에서 내려다보면 산 속에 비취알이 끼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보봉호에서부터 풍경에 취한 기분이 아직 덜 깨인 상태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오기 한참만에 다시 하차하였다. 여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천자산 자연보호구의 케이블카를 탔다. 아래는 협곡, 위에는 벼랑, 케이블카는 천인단애 사이를 묘기를 부리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발밑이 보이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었다.

험준한 산봉우리에서 봉우리로 통로를 기하학적으로 계산하면서 설계했으리라.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원가계 일대를 한 시간이 넘게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비경. 내가 지금 그림 속을 헤매는 것인가?

그림 속이 아니라 내 발로 딛고 선 현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산봉우리의 키들이 거의 같았다. 그것은 그들이 한 때 서로 이어진 땅이었거나 한 개의 거대한 암반이었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하겠다.

세계의 비경이라는 바위 터널, 아치형 다리, 협곡 사이로 비행기가 지나가기도 한다는데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5m 정도의 짧은 철다리 천하제일교. 이 험준한 산곡에 어떻게 이런 다리를 놓았을까. 거기 길게 줄을 매고 열쇠를 채워 걸어둔 자물통들이 장관이었다. 연인들은 입구에서 자물통을 산 후 이곳에 와서 줄에 채워놓고 헤어지지 말자고 맹세하고는 열쇠는 깊은 계곡에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자물통이 잠겨있는 한 사랑이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 어떤 것은 엄청나게 컸고, 어떤 것은 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사랑, 행복. 이것은 우리들이 정복해야 할 영원한 표적이다.

 

우리도 배워야 한다

떠나오기 전날은 황용동굴을 구경하는 일로 시작하였다. 황용동굴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기간을 약 80만년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황용동굴은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서 상하 4층으로 되어 있고 아래 2층에는 4계절 시내가 흘러내리는 동굴이다. 수직고도는 백여 미터, 동굴길이는 15㎞, 이미 개발되어 있는 면적이 20㏊에 이른다.

동굴 내에는 저수지도 창고도 있고 시냇물도 두 갈래로 흐르고 있다. 지하폭포, 연못, 그리고 큰 대청이라고 부르는 공간도 여럿이다. 관광할 수 있는 길이 아흔 여섯 갈래나 된다고 한다. 천태만상의 수많은 종유석들 혹은 선인장 같고 고기비늘 같고 옥수수 같다. 혹은 주름치마 같고 촛농 같으며 잎사귀를 다 떼어낸 장다릿대 같기도 하다.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중국인들은 최대의 장사를 한다. 같은 장가계 영역에서도 원가계를 따로 떼어 개발하더니 이제는 양가계를 선보일 것이라고 지금부터 미리 선전하고 있다.

우리도 걸핏하면 ‘한국 방문의 해’라는 말만 떠들 것이 아니다. 세계인의 이목을 끌 상품부터 만들어야겠다. 중국의 풍경에 감탄하고 돌아오는 손마다 값이 좀 싸다고 콩보따리, 깨보따리만 생각 없이 끌고 들어올 일이 아닌 것 같다.

 

<2편 중에서 한 편 골라 편집하기>

장가계엔 다시 한 번 가야겠다

장가계에 다시 한 번 가야겠다

꿈인가 생시인가 어지럼증에

이제는 혼이 빠져 주저앉지 않아야지

골짜기를 지나 벼랑을 타고

기암괴석 기어올라 물안개를 맞으며

세상에 있는 경치란 경치

경치란 경치의 오장육보 속을

이번에는 부릅뜨고 눈에 담고 와야지

지금 내가 그림 속을 걸어가는가

그림이 내 속에서 걸어 나가는가

장가계에는 아무래도 다시 가야겠다

황석채 삭도는 아찔하여서

올라오지 말 것을 후회하였고

황룡굴 어두운 석순밭에도

파랗게 숨쉬는 어린 싹이 피었지만

안개가 발이 삐어 길은 막히고

십리화랑 오가는 길 자꾸자꾸 멈취서

오던 길 아쉬워 되돌고 싶었지만

장가계가 어떻든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또 한 번 다녀와야겠다

 

천하제일교

무릉원을 지나 원가계 초입에서

자물통부터 하나 살 걸 그랬다

하늘 제일 가까운 이쪽 봉우리에서

칼로 도려낸 저쪽 봉우리까지

천야만야 허공에서 흔들리는 다리

풍경처럼 삭아드는

어떤 벼랑 끝에서도

우리에게 이별이란 어림도 없다

열쇠는 계곡 깊이 던져 버릴 걸 그랬다

안개 속을 젖어 걷는

하늘 아래 장가계

이 풍경 속에 내가 있구나

나도 하나의 풍경이구나

장가계 속 원가계

원가계 속의

천하제일교

대동문화 2005년 신년호

이향아 호남대 명예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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