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바즈 루어만 감독이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다시 해석해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서 잠시, 바즈 루어만이 어떤 감독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에서 만들어진 <댄싱 히어로>는 제목만큼이나 화려한 춤사위를 관객들에게 선사하며 바즈 루어만을 각인시켰다. 이에 할리우드는 바즈 루어만의 재능을 곧바로 직수입했고, 이로 인해 탄생한 영화가 <로미오와 줄리엣>(1996)이다. 셰익스피어의 16세기 희곡을 현대로 옮겨 온 이 당돌한 영화는, 젊은 감각으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2001년에 퓨전 뮤지컬인 <물랑루즈>를 내놓았는데, 이 영화역시 비주얼이 압도적이었다. 이어서 찍은 <오스트레일리아>(2008)는 자신의 조국인 호주를 시각적 풍성함으로 담아냈다.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바즈 루어만의 손을 거쳐 간 작품들은 ‘영화적 시각화’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여 주는 특징을 갖는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건 남자의 이야기

20세기 영문 소설 중 으뜸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1922)를 꼽는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1925)는 그 다음이다. <율리시스>가 영국 작가의 작품이고 보면, <위대한 개츠비>는 현대 미국 소설 중에서 최고인 셈이다. 실제로도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의 학생들에게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읽히고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1930년대 미국의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1939)를 읽어야 하듯이, 1920년대 미국인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위대한 개츠비>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소설이 한 세기가 다 되어가도록 미국은 물론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마다 수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다양한 의견 중에서도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건 남자의 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위대한 개츠비>는 개츠비가 데이지의 사랑을 다시 얻고자 위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매력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는 콘텐츠

이 원작은, 1974년에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가 개츠비와 데이지로 출연해 선을 보였고, 2001년에도 영화화되며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는 콘텐츠임이 입증됐다. 바즈 루어만의 이러한 장기는, <위대한 개츠비>가 어떤 모양새로 탈바꿈할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그리고 역시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파티 장면이다. 이 연출에 있어서 바즈 루어만은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이루어지는 축제를 원작의 느낌보다 과하다 싶을 만큼 현란하게 연출했다. 아마도 바즈 루어만이 원작을 영화로 옮기고자 했던 이유도 연회 장면을 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파티 신을 포함해서 영화 전반부는 눈부심으로 관객들을 압도시키고 있고, 후반부는 인물들 간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드라마에 집중한다.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가난 때문에 사랑하는 연인인 데이지(캐리 멀리건)를 톰(조엘 에저트)에게 떠나보내야 했다. 개츠비는 그토록 갈망하던 부(富)를 악덕과의 야합을 통해 축적하게 된다. 타락한 도덕이 지배하던 시대에 개츠비도 그 탐욕 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한데, 개츠비는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나머지 인물들이 오직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심에만 집착한 것과는 별개로, 개츠비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개츠비는 오직 옛 연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고, 그토록 화려한 페스티발을 준비했던 것이다.

바즈 루어만은 원작의 포인트를 한 여자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을 가진 사내의 위대한 계획으로 파악했고, 그 점을 부각시키고자 개츠비가 데이지를 위해 마련한 거대한 선물을 관객들에게도 전시했던 것이다. 문제는, 바즈 루어만이 개츠비의 옛 연인 사수 프로젝트에 집중한 나머지 원작이 담보하고 있는 풍성한 속살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사랑만을 위해 바쳐진 영화

우선, 대공황 이전의 1920년대 미국의 시대 분위기에 대한 감독의 깊은 고민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라리 감독은 고증에 충실하기 보다는 비주얼에 집중하며 ‘화려한 시절’의 그때 그 모습을 철저히 그려낸다. 여기에다 원작에서의 각 인물들이 물신주의에 찌들어서 타락하고, 이기주의의 극단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애써 담아내고 있지 않는 것도 차별점이라면 차별점이다. 그러니까 바즈 루어만은 원작의 내용을 수용하고 있긴 하지만, 소설에서 맛볼 수 있는 풍요 속의 빈곤을 살아낸 인간들의 내면 풍경에 대해서는 그닥 신경 쓰지 않았다는 말이다. 20세기의 원작을 21세기에 해석했다기보다는, 과거로 되돌아가려다가 파멸한 한 인물의 초상만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이다.

영화의 마무리에서, 닉(토비 맥과이어)이 개츠비에 대한 연대기를 마무리 짓고 ‘Gatsby’라고 타이핑된 제목 위에 펜으로 ‘THE GREAT’라고 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제시된 ‘위대한’ 이라는 형용사는 원작에 없는 것으로 바즈 루어만의 재치가 돋보이는 설정이다.

아쉬운 것은, ‘위대한’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원작은 폭넓게 내장하고 있는 반면, 바즈 루어만은 사랑을 위해 위대했던 남자의 이야기로만 집중했다는 점일 것이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조대영 광주독립영화협회 대표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