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계절이 있을까? 종종 어리석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지만 이 질문은 언제나 내겐 새롭고도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음악엔 사랑이 있고 인간의 희로애락과 삶이 담겨 있다고들 하니, 계절이 담겨져 있지 않을 리가 만무하다.

유추해보면 우리들은 그동안 음악에서 계절을 찾아왔다. 음악에서 찾는 그 계절은 사시사철의 그것이 아니라 위안과 위무 혹은 기쁨과 희열의 얼굴로 우리들을 반겨주었을 것이다. 음악이 우리에게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보사노바(Bossa Nova, ‘새로운 물결’이란 뜻의 포르투갈어, 브라질 음악의 한 형식)는 인류의 수많은 음악 중 가장 여름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삼바(Samba, 브라질 흑인계 주민의 춤으로 4분의 1박자로 빠르고 정열적이다)도 그렇다. 연상되는 게 브라질 리우(Rio de Janeiro)의 해변과 카니발이 모두 여름의 모습이며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이다.

삼바는 원형(原型)인 쇼류(Choro)에서 나왔고, 보사노바는 삼바와 재즈의 결합으로 탄생한 인류의 이종교배 음악장르의 걸작이다. 해서 보사노바와 삼바는 어떻게 연주하든 여름을 얘기한다. 아니 여름 그 자체를 찬미한다. 가장 여름스러운 음악, 그게 바로 보사노바와 삼바이다.

시원한 그늘집에 앉아 하늬바람 얼굴에 맞으며

이제 갓 27살인 나희경이란 아티스트는 보사노바와 삼바를 연주하는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첫 사랑을 고백하는 떨림의 순간을 기록하는 카메라와 같다. 그녀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때론 무한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거나 혹은 망각의 계곡을 걷고 있거나, 아니면 여름의 한복판에서 시원한 그늘집에 앉아 하늬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과 같다.

나희경이란 아티스트는 내게 이렇게 다가왔다. 2010년 광주 청소년 음악 페스티벌 참가를 시점으로 전업 아티스트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보싸다방’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해 본격적인 보사노바 뮤지션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가수 윤상으로부터 보사노바의 기운을 이식 받은 후부터 그녀에게 보사노바는 삶의 목표 그 자체였다. 하여 보사노바의 본향 브라질로 홀연히 떠난다. 그곳에서 보사노바 1세대 아티스트 호베르토 메네스칼(Roberto Menescal)을 비롯한 현지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두 장의 음반을 녹음하고, 보사노바 전문 공연장 ‘Vinicius bar’에서의 단독 공연을 필두로 브라질 각 도시를 투어하며 현지에서 주목받는 국내 유일의 아티스트가 되었다. 최근 그녀는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광주에서도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관객을 만났다.

브라질 음악씬의 예명인 ‘HEENA’로 데뷔 앨범을 발표한 그녀의 앨범엔 보사노바의 아버지라 칭송 받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대표곡 ‘How Insensitive’, ‘Desafinado’, ‘Girl From Ipanema’, ‘Wave’ 등과 루이스 본파(Luis Bonfa)의 명곡 ‘Manha de Carnaval’[영화 ‘흑인 오르페(Orfeu Negro)’의 주제가] 등이 나희경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연주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이지만 나희경만의 보컬로 전혀 다른 브라질 음악을 표현해낸다. 또한 밴드 롤러코스터 이상순이 피처링을 맡은 ’프렐류드의 삼바’(Samba em Preludio)는 달콤하면서도 유니크하다.

야만의 시대의 들려오는 힐링의 보사노바

이 음반을 처음 접했을때 한국 아티스트가 만든 앨범이란 생각을 못했었다. 보사노바를 ‘보사노바’처럼 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보사노바처럼 편곡한, 보사노바 풍의 음악은 가요에서도 종종 들어왔다. 하지만 나희경의 음악은 보사노바 그 자체를 완벽하게 연주한다. 브라질 사람보다 더 브라질스럽게 말이다. 브라질의 최고 프로듀서인 세사르 마차도(Cesar Machado)가 이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것은 사족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은 마치 아직 덜 익은 콩을 먹고 있는 듯 풋풋하기만 하다. 완벽함에도 불구하고 2% 부족한 느낌이 오는 것은 무엇일까? 단지 그녀가 젊다는 이유로 그녀의 노작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의 음악엔, 그녀의 ‘Bossa Nova’엔 브라질의 ‘Bossa Nova’가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지난한 역사, 신산한 브라질 대중들의 삶의 흔적들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 안타까운 것이다.

분명 보사노바가 사랑의 음악이며 낭만과 노스탤지어의, 그리고 여름의 음악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깐죽거림에도 불구하고 나희경의 음악엔 제대로 된 ‘보사노바’가 있고, 미치도록 쿨한 여름이 있다는 것을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깨닫게 된다. 이 야만의 시대에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반드시 당신에게 힐링의 시간이 될 것이다. 그만큼 그녀의 음악은 달콤하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장용석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프로듀서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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