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석에 누워있는 엄마와 하루하루 날일로 생계를 꾸려가는 언니와 형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어린 시절, 서커스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나는 며칠째 극장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처지를 알아차렸는지 극장 입구에서 표를 받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그때 나는 겨우 9살이었다

“너 지금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여기서 뭐하니? 서커스가 보고 싶은 거로구나.” 그때 나는 벌써 3일째 학교에 가지 않고 있었다.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극장에 들어선 나는 그날 이후로 마음대로 극장을 들락거릴 수 있는 특혜를 얻게 되었다. 이후 나는 즐거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또 나는 서커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눈물 흘리는 엄마를 뒤로 하고 서커스단에 몸을 담게 되었고, 고향을 떠나왔다. 그때 내 나이 9살이었다.

아침 5시부터 매일 고된 연습은 반복되었고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있어 위안이 되었다. 단장 아버지(아버지라고 불렀다.)와 엄마, 6명의 언니, 3명의 오빠들, 그리고 동생 미령이까지 시끌벅적한 생활이 마냥 좋기만 했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야 나는 곡예사로써 인정을 받게 되었고 그러던 어느날 단장 아버지는 조용히 나를 불러 말씀을 하셨다. “선미야 너는 이제 어느 서커스에 가도 대접 받을 수 있는 곡예사가 되었다. 그러나 조금 더 고생해보지 않겠니?”

말씀인 즉은 그동안 광대 줄타기는 남자들이 해왔는데 여자가 한다면 관객으로부터 더욱더 큰 호응을 받을 것이며 내가 최초로 여자로서는 광대 줄타기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동춘 서커스 광대 줄 타는 여자

나는 곡예들을 배우면서 단장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했었고,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아버지는 내 장래를 생각해 광대 줄타기를 가르치기로 마음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또다시 피나는 광대 줄타기 연습이 시작되었고 2년이 지나고서야 무대에 서게 됐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민속 광대 줄타기를 하고 있는 박선미입니다. 만나 뵙게 돼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광대 줄 위에 올라서는 관객을 향해 처음 말을 시작한 후로 또다시 세월이 흘러 이제 내 나이 18살이 되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관객에 서커스 극장은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나는 동춘 서커스단에서 광대 줄타는 여자로 당당한 대우를 받고 입단을 하게 되었다.

24살 되던 해 5년 동안의 동춘 서커스 생활을 접고 나는 기획사 사무실을 열게 됐다. 이름하여 ‘한중 민속 기예단’이다. 전국의 행사장에 초청되어 박선미라는 이름 석 자가 널리 알려짐으로써 공연 문의는 빗발치게 되었다. 그리고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광대 줄타기가 선정됨으로 나는 더욱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줄을 탔다. 우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매일 영어 단어장을 뒤적이다 잠이 든다

추운 겨울날 시장 장터에서 줄을 탈 때 내가 애처롭게 보였던지 내 손에 천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어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2009년 문화 사절단 일원으로 일본으로 공연을 갔을 때 10,000엔짜리 지폐를 밧줄에 묶어 주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교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당원 대회가 열리던 체육관에서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밖에도 너무도 많은 사연과 추억이 있었던 공연들이었다. 내 나이 이제 29살, 지금 나는 통영에서 줄을 타고 있다.

통영시를 방문해 케이블카 타고 유람선을 타는 관광객들을 위해 벌이는 공연이다. 이제는 소문이 나서, 광대 줄 타는 것을 보기 위한 목적만으로 관광을 오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광대 줄타기가 또 힘들어진다. 엉덩이가 붓고 발등의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그때마다 나는 한 사람을 머리에 떠올린다. 불편한 다리로 내 손을 잡아 수만 번 줄 위를 오가게 하셨던 단장 아버지….

요즈음 나는 걱정이 하나 늘었다. 올해 8월 문화체육관광부 주체로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 공연하는 문화 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광대 줄타기는 공연 도중 관객들과 주고받는 대화가 필요한데 우리말로 해서 어필이 될까? 오늘도 나는 영어 단어장을 뒤적이다 잠에 든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박선미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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