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중에 인상적인 영화가 있었다. ‘그때의 생명 고독사’라는 영화였다.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급속히 분열되면서, 또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일본은 새로운 사회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이미 심각해진 독거노인의 ‘고독사’였다.

영화는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유품을 정리해주는 회사를 중심으로 일본 사회가 처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들어냄으로써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것은 나만의 문제도 당신만의 문제도 아니며 우리 모두가 곧 당면할 문제라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가족을 귀찮아하고 고인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지지 않으려는 행태가 어떤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 깔려 있는 극도의 개인주의가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화 한 통화만으로 모든 사후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간미나 슬픔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물론 개중에는 격식을 차려 장례를 치르고 슬픔에 잠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개는 유품 정리 회사에 의뢰하여 간단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에게 인륜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독사 문제에 접근하는 섬뜩한 시선

최근에 나는 가까운 친척의 죽음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영화에서나 보고 말로만 듣던 진짜 ‘고독사’였다. S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에 박사까지 마친 최고의 엘리트였다. 어느 날 간단하게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그는 잠적해 버렸다. 그를 찾기 위해 많은 힘을 썼으나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이 10년이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는 죽은 지 두 달이 넘었다는 주검의 소식이었다. 일본에서 말하는 ‘히키코모리’, ‘외톨이로 살아가는 은둔자’였다는 것이다. 재직했던 지방대학 가까이에서 학원 강사로 생계를 벌며 부모와 형제, 친척까지 인연을 끊으며 혼자 숨어 살았던 것이다.

처음엔 자살인가 했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기도가 막힌 질식사였다. 냉장고에는 음식이 가득했고 생수는 박스로 들여놓았으며 컴퓨터에는 논문을 쓰던 중이었으며 책상에는 풀다만 수학 문제 노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얼마나 고독했을까? 분노 이전에 연민의 마음까지 합쳐져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오십을 넘은 나이에 독신으로 살면서 그는 행복했을까? 한순간이나마 가족들을 떠올려본 적은 있었을까? 누구도 답해줄 수 없다는 것은 비극이었다.

유품회사에 정리를 맡겼다고 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이런 회사들이 한국에도 곧 상륙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이미 그런 회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장례에서 유품정리까지, 그리고 다른 복잡한 문제까지도 깨끗하게 해결해주는 회사가 있다는 것은 기이하면서도 참 낯선 느낌이었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주는 유품정리 회사

유품정리 회사를 차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도와주는 사람들은 현재 일본에서 성업 중이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일본 최초의 유품정리 전문회사 ‘Keepers’의 대표이사다. “죽음을 맞을 때 옆에서 지켜줄 이 하나 없는 사람들, 뜻하지 않게 세상을 등지게 되는 사람들을 위하여” 2002년부터 유품 정리 사업을 시작했다. 블로그를 이용하여 이제까지 “음지에서만 거론되던 고독사의 쓸쓸한 현실을 일본 사회의 양지로 이끌어내 공론화 시키는 데 성공”했다.

죽음에도 여러 형태가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았다. 자살에서부터 살인, 히키코모리로 살다가 죽은 사람, 자연사에 고독사, 미리 유품 정리를 부탁하는 예비 고독자의 사후 부탁 등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람을 전율하게 한다. 죽은 지 몇 개월이 지나 발견되는 시신들의 형체는 차마 지면으로 옮기기도 버겁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밤에는 삼가고 낮 동안에만 읽었다. 차마 현몽할까 두려웠다.

새로운 시작, 죽음을 준비하라

혹자는 죽음을 위해 준비하라고 하고 혹은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지만, 죽음이 멀리 있다고 느꼈던 젊은 날의 환상처럼 미화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가까이 다가온 내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부러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 무섭다고 늘 말해왔지만, 죽음이야말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절대 영역이라고 애써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런 ‘고독사’가 예외는 아닌 사회로 진입했다. 고독사는 물론이요 요양병원에서 죽을 확률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집에서 자연사하는 시대는 이미 물 건너간 느낌이 없지 않다. 사람들은 존엄사를 부르짖지만 공해 시대에 나쁜 질병으로 죽을 위험은 높아만 가고 간병인의 도움으로 요양원에서 죽을 날을 기다릴 날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도래할 것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우리 시대 사람들이 맞이할 죽음의 마당은 추억이 서린 내 집이 아니다. 옛사람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객사 죽음, 병원 아니면 요양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존엄사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한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문향선 수필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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