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남도의 맛과 멋>, <풍류 맛기행>을 연재하면서 서해안의 꽃게 밭인 충청도에 가서 취재한 기록으로는, 뻘밭을 기는 것도 그러거니와 모로 기는 비틀걸음에다 속창아리(창자)도 쓸개도 없이 눈을 치뜨고 거품을 품는 게를 두고 ‘승한 상것’이란 표현을 쓴 충청도 양반이 있었다.

홍어 없는 잔치는 형편없는 것

내가 어디서 본 기록으로는 율곡이 쇠고기를 먹지 않았듯이 송시열 가문이라고도 했지만 실은 이 맛을 잊지 못하여 미식가들은 무장공자(無臟公子), 횡횡거사(橫橫居士), 내황후(內皇后), 천상목(天上目), 서호판관(西湖判官)이라고도 했다. 사팔뜨기 천상개비라도 모로 기어 서울만 가면 되지 않던가. 이 무젓(꽃게무침) 대신 남도 일판을 치는 것은 시에 나온 것처럼 흑산 홍어를 들 수 있다. 소를 잡아놓아도 홍어 삼합이 없으면 잔치는 형편없는 것이 된다.

소소한 대숲바람이 불고 풀잎 끝에 이슬이 차다. 이른바 이것이 가을 전어철이다. 고소하고 달기가 일품인 전어회나 구이는 그만이다. ‘집 나간 며느리 전어 굽는 냄새에 다시 돌아온다.’거나 ‘가을 전어회를 못 먹으면 한겨울내 가슴 시린다.’는 말, 또 ‘겨울 숭어 앉았다가 나간 자리 뻘만 훔쳐 먹어도 달다.’, ‘열무김치 들어간다 아가리 딱딱 벌려라.’는 식담은 ‘눈 온 대구 비 온 청어’라는 경상남도 식담과는 달리 다 남도 식탁에서 흘러나온 푸짐한 말가락이기도 하다.

남도 음식에서는 나주 ‘어팔진미’ ‘소팔진미’가 그 대표적인 음식이 될 것이다. 우리 음식은 흔히 디자인과 색채가 빈약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대지>의 작가 펄벅여사가 1958년 한국에 왔을 때 록 플라워(꽃열쇠)를 얹은 구절판을 선물했는데 두껑을 열고 5방색의 주조에 간색까지 뜨는 것을 보고 ‘이 음식은 너무 아름다워 먹을 수가 없다’고 그대로 비행기에 싣고 떠났다는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남도 식탁, 한국적 우주관의 절정

또 신인공식(神人供食)의 ‘표준식탁’이라고 할 수 있는 제사상의 진설 중 과실 차례만 하더라도 홍동백서(紅東白西)로 진설된다. 이는 금기식과 유감주술(類感呪術)에서 온 것인데 동아시아의 5방색 색채관이나 우주관이 우리 식탁에 와서 절정의 꽃을 피웠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인은 유독 쇠고기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한데 우리는 그 쇠고기 부위를 120여 부위로 각을 뜨는 민족이다. 소 혓바닥살인 ‘이보구니’까지 긁어내어 맛을 보는 희한한 민족이다. 그러니 9천여 개의 미각 세포가 조용할 날이 없다. 영국이 25부위, 보디족이 40여 부위까지 각을 뜬다고 한다.

로컬 푸드로 이름난 백제 때부터 전승된 마로화적(馬老火炙)인 ‘광양 숯불구이’만 해도 백운산의 참나무숯과 더불어 ‘암소 왼쪽 갈비’또는 ‘어린 송아지 구이’였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다. 물맛도 유네스코에 등재된 <동의보감>에는 33가지로 분류해 놓고 있다.

남도 음식 맛의 비밀 발효 음식

이중에서도 한국인의 혓바닥에만 있는 발효 음식의 지각미는 남도 음식의 맛의 비밀이기도 한다. 간장도 1년은 햇간장, 2년은 진간장, 5년은 수간장, 10년 묵히면 씨간장이 되어 ‘개미’가 나온다. ‘개미가 쏠쏠하다’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그 개미는 또 ‘그늘’로도 쓴다.

필자는 <남도의 맛과 멋>을 쓰면서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와야 ‘남도 한정식’이 시세가 날 것이라고 썼는데, 그때가 오면 아마 양보다 질인 맛과 멋의 시대가 올 것이다.

모든 음식이 깡통 속으로 들어가면서 맛이 없어지는데 민족 음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전주 ‘비빔밥’이 물만밥의 찬밥 신세가 아니라 따순 김이 나는 항공기 내식의 꽃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전주비빔밥이야말로 민족의 식탁이 3차 혁명을 거치면서(고추의 등장) 피워낸 최절정에 있는 음식이다.

광양의 마로화적이나 전주비빔밥 외에도 백성의 고기라 불러온 ‘민어(民魚) 1천 냥 부레 9백 냥’이라는 식담처럼 민어의 부레를 이용한 ‘감화보금’이나 밥도둑이라 일러온 전어 ‘밤젓’, 여러 번 진국을 끓여 붓는 고흥의 ‘진굴젓’, 노래보다 기생보다 낫다는 ‘승가기탕(勝歌妓湯)’, 순채나물 등 슬로푸드(Slow-Food)는 우리 식탁에서 되살아나야 할 음식들이다. 동시에 OECD에서 규정한 과다 염분 사용이나 대장암을 일으키는 독성이 있는 향신료 사용도 조절되어 ‘국민 식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남도 음식의 보완점이다. 남도 김치나 젓갈류, 장떡 등도 이에 해당된다. 또한 헝가리 식탁처럼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 소재들에 대해서는 과세함도 옳다. 우리 식탁은 ‘발효 문화의 꽃’이라고 할 김치가 있어 비만의 영양소들을 잘 삭히고 제어한다. 밥상을 관리하는 구조 조정관이라 할 것이다.

발효 문화의 꽃, 남도 식탁

매 끼니마다 5감을 만족시키는 김치야말로 ‘발효미 자각 영역’이라는 혓바닥 감각을 발전시켜왔고 이는 서양인의 미각에는 없는 영역이다. 이것을 우리는 김치의 유턴 현상이라고 부른다. 김치에도 남북 현상이 따로 있어 그 맛이 구별된다. 남도 식탁에 힘이 실리는 것은 영산강 물목이 있어 가능하다.

나는 이 물목을 ‘자산어보(玆山魚譜)의 물목’이라고 부르자고 수산학자들에게 제안한 바 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의 물목’은 흑산도에서 천년 고도 나주목까지의 물목이다. 영광 굴비를 제외하고는 전품목이 우리 밥상을 길러왔다. 남도 노인네는 ‘괴튼다’라는 말을 하는데, 밥상머리에서 입맛에 맞는 찬이 오르지 않으면 저붐(젓가락)으로 상머리를 찍는다. 남도 기생은 서울 기생과는 달리 치맛말의 ‘괴’를 내도 왼쪽으로 틀고 씨름도 왼씨름이었다.

‘사불여(四不如)’란 말은 ‘서울서 내려온 벼슬아치보다 구실아치(아전)가 낫고, 구실아치보다 기생이 낫고, 기생보다 음식 맛이 으뜸이다.’라는 뜻이다. 풍류도 밥상에서 나온다. 풍류에도 청기와 탁기가 있다. 이 청기(淸氣)를 가르켜 ‘검약과 절제의 선풍’이라고 부른다.

함(含), 포(哺), 고(敲), 복(腹)이란 말은 먹고 즐거워 배를 두드린다는 음식의 구강성과 즉흥성에서 온 이 시대의 가장 위험천만한 말이다. 식탁이 온갖 질병과 재앙을 불러 오기 때문이다. 악마의 세기로 진단되는 19세기 제국주의 광풍 시대에는 군대가 한 나라의 정부를 무너뜨렸지만 오늘의 ‘합리적인 미치광이들’이 사는 환상방황(環狀彷徨)을 꿈꾸는 노마드(nomad) 시대는 군대가 아니라, 다국적 퓨전 음식이 한꺼번에 식탁을 뒤엎고 그 다음 한 국가의 정부가 무너지는 시대다.

손암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그토록 강조한 서문에 쓴 ‘수윤(修潤)’이란 말을 다시금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송수권 한국 풍류문화 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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