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문화적 코드를 들라면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독특한 음식문화를 꼽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식문화는 지역문화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에 전라도 또한 예외가 아니다.

남도 음식문화의 특징으로 주인이 상다리가 부서지게 상 가득히 차린 상차림을 들 수 있다. 이는 자연히 요식업에도 영향을 미쳐 전라도식 식당은 어디 가나 인기다. 그래서 전라도 출신이 경영하는 식당이 서울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전라도 사람이 다른 지역으로 출장가면 그 곳 주체측이 전라도에서 온 사람의 먹거리를 가장 먼저 걱정하고, 반대로 다른 지역 사람이 전라도로 여행을 오면 그곳 사람들은 자신의 지인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오라고 당부하는 것 역시 푸짐한 상차림에서 기인한다.

맛나게 먹었습니다. 잘 대접 받았습니다.

남도 음식문화의 또 다른 특징은 손님이 맛있게 먹고 멋있게 표현하는 덕담으로 귀결될 수 있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는 좀체 찾기 힘든 현상이다. 경상도에서는 지금도 식사 후 음식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일어나는 것이 예의라고 하니, 먹을 것이 넉넉하지 못하여 그저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족하였던 시절에 형성된 식사 에티켓일 것이다. 남도와는 딴판의 문화임에 분명하다.

그러면 이런 남도 음식문화의 기원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아마 풍요로운 물산과 푸짐한 인심에서 기인할 것이다.

풍부한 물산, 다양한 식재료

남도 사람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전라도가 물산이 풍부한 곳이라고 말하지만, 통계 자료가 없어 확인하기는 어렵다. 지역별 농토 규모는 15세기 조선 건국 직후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전라도는 16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농토를 보유하고 있다. 1904년 기록에 의하면, 전라남북도의 농토가 조선 8도 전체의 25%였다. 야산과 저습지 및 갯벌이 많고, 농사짓기에 유리한 자연환경 때문에 그러하였다.

전라도의 농토는 기름지기로도 유명하다. 비옥하니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전국 최고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농토 중에서 경제성이 높은 논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높은 경제성 때문에 밭을 논으로 개조하는 일이 잦았다. 그것도 천수답은 적고 대부분이 물을 풍부히 끌어 댈 수 있는 무논이었다. 그만큼 강수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저수지가 많이 축조되고 수로 시설이 발달하여 가능하였다.

전라도는 농토가 넓고 2면이 바다여서 각종 물산이 풍부하였다. 풍부한 물산은 식재료를 다양하게 해주었다. 다양한 식재료는 자연히 갖가지 음식을 탄생시켰다.

푸짐한 인심과 독특한 식문화

풍요로운 물산은 후한 인심을 낳는 법이다. 삼국 이래로 백제가 가장 사치함을 일삼았다는 조선의 <성종실록> 기사는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지만, 당시 정황을 파악하게 한다.

통일신라의 문무왕의 아우인 차득(車得)이 무진주(광주)를 잠행하던 중 주리(州吏) 안길(安吉)을 만났다. 안길이 차득을 집으로 모셔와 정성껏 접대하였다. 차득이 떠나면서 “나는 서울 사람인데 내 집은 황룡과 황성 두 절 사이에 있고 내 이름은 단오(端午)이니 주인이 만일 서울에 오시거든 내 집을 찾아주면 고맙겠습니다.”고 말하고서 서울로 돌아와 재상이 되었다.

안길이 상수리(上守吏)가 되어 경주에 와서 차득을 찾아갔다. 차득이 안길의 손을 잡고 궁으로 들어가 잔치를 열었는데, 찬이 50가지나 되었다. <삼국유사>에 나온 이야기인데, 안길이 차득을 접대할 때에 50가지 정도의 음식으로 하지 않았을까?

풍요로운 물산은 여흥을 낳는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전라도는 땅이 기름지고 서남쪽은 바다에 임해 있어서 생선, 소금, 벼, 비단, 솜, 모시, 닥, 대나무, 귤, 유자 등이 생산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습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겼다.’고 하였는데,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다.’는 말만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뒷맛이 씁쓸하다. 그러나 사치를 즐겨하였다는 말 속에는 명절⋅제사⋅접대⋅혼례 때에 음식을 호사스럽게 하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스토리와 감성, 힐링의 주제로서의 남도 음식

전통시대의 자료 속에서 음식에 대한 기록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양반들의 매일매일 일기를 보면, ‘아침을 먹었다’, ‘점심을 먹었다’ 등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이는 먹을 것이 여유롭지 못한 사회에서 먹은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인식되었다고 여기게 한다. 단지 먹었다는 사실 자체만이 중요하였을 뿐이고, 잘 먹었느냐 못 먹었느냐는 그 다음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궁중음식에 관한 기록이나 궁중회화에 나타난 모습을 보아도 상차림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전통시대의 음식문화를 논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가 뒤따른다.

그런데 그러한 전통시대에도 전라도의 음식문화에 대한 언급은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그만큼 남도 음식문화가 발달하였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그것을 토대로 전라도 음식문화의 특징을 지적하면 ‘푸짐함’에 있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논, 밭, 산, 바다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물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찾아오면 후하게 대접하고, 그것을 받은 사람은 후하게 먹었음을 꼭 말로 표현하였다. 그 점을 익히 안 이중환은 전라도 사람들을 사치스러운 사람들이나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였던 사람들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차림은 오늘날 남도 한정식으로 계승되어 상품화되고 전국적인 문화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맛있는 남도 밥상으로 힐링의 문화 만들자

문제는 양이나 질로 승부를 보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음식에 스토리를 얹혀야 한다. 근래 전라도에 ‘이순신 밥상’이니 ‘청백리 밥상’으로 불리는 상차림이 있다. 인위적인 냄새가 짙다. 진주 육회 비빔밥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유래했다는 말에 더 솔깃하다. 음식의 스토리를 찾는 데에 귀를 기울자.

또 남도음식이 현대인에게 어떤 감성의 힐링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관련 상품을 마련해보자. 살아가면서 가장 기쁨을 주는 것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건강한 삶의 질을 위해 넉넉한 밥상과 음식을 앞에 두고 ‘맛있는’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맛있고 즐거운 ‘힐링 밥상’, ‘힐링 푸드’, ‘사찰 음식’, ‘음식 관광’, ‘힐링 음식 축제’, ‘음식 탐방 동호회’가 이야기되고 있다.

여행, 음식, 서비스,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마케팅의 코드가 치유 개념을 도입한 ‘힐링’으로 이동되고 있다. 여행 및 외식업계에서도 단순한 볼거리와 음식만을 제공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위안과 치유의 3차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힐링이 되는 먹거리란 무엇인가? 생명력 넘치는 토양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 재료를 사용해 정성껏 만든 음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는 감성까지가 정답고 건강한 음식일 것이다. 공감하는 음식의 맛일 것이다. 그 맛과 향이 우리 몸과 영혼에 스며들어 몸과 마음을 다독여준다. 시들하던 몸과 마음에 웃음과 열정의 기운이 스며든다. ‘식약동원’이라는 사상에는 바로 건강한 음식으로 마음과 몸을 치유하자는 이념이 담겨 있었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e)은 소득과 행복의 관련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소득 이외에 사회 규범, 문화적 인식 등이 작용한다고 보았다. 즉,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사회마다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문화적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최근 국내에서 나타난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의 일환으로 문화적 힐링이 두드러지고 있다.

마음을 위안하며 치유하는 것을 힐링(healing)이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내세운 웰빙(well-being)이 대세였으나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지친 사람들이 치유에 더 관심을 두면서 각광받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광고, 뮤지컬, 음식, 여행업계 등에 치유를 내세운 힐링 마케팅이 부상하고 있다.

맛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남도 음식이 현대인의 행복에 기여하는 문화로 확산되고, 이것이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는 건강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대동문화 77호 [2013 7,8월호]

김덕진 광주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