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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2011년 문화바우처 예산소진율을 보자. 예산사용 마감이 아직 남아있지만 1월 말 현재까지 전체 54.6%를 소진하고 있다. 수혜자의 사용처 문제(대부분 영화 관람, 참고서 구입 등에 활용)를 제쳐두고, 단순히 수치만 보더라도 2011년 문화바우처 예산 347억 원(지방비 포함) 중 150억 원 이상을 쓰지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관리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탓이다.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문화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라디오연설(2010.8.23)이 있은 뒤에 정부는 예산을 67억 원에서 5배가 넘는 347억 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예산이 늘면서 관리의 중요성, 즉 “관련 추진내역을 손쉽게 실시간으로 온라인 전자방식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강조됐다.

지역주관처가 바우처를 관리하면서 부당하게 이용하는 몇몇 사례가 불거지면서 투명한 예산집행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카드제는 이를 실현시켜줄 최적의 방안처럼 보였다.

지역주관처라는 매개자 없이 수혜자와 공급자가 직접 만난다? 그럴싸해 보였다. 수요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공급자의 경쟁을 유발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서비스의 질 향상이 다시 수요자에게 돌아가는 선순환구조를 지향한다는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지역여건이 정부부처 관계자의 생각만큼 좋지 않다는데 있었다.

모 군지역은 불만이 가득하다. 없는 살림에 문화바우처 예산을 분담했지만 정작 지역주민은 바우처를 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인구 3만명이 안 되는 지역, 그것도 면 지역으로 가면 문화예술 행사는 고사하고 신한카드 단말기를 찾기도 어렵다.

도농복합도의 예산소진율이 특별․광역시의 절반에 불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문화예술 시장의 열악함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의 행정이 문화바우처 사업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나아가 지역 간 문화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농촌지역 취약계층의 문화수준과 욕구를 알 수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카드제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서울․수도권은 문화예술시장이 형성돼 있다. 광역시도 인프라가 갖춰져 있어 프로그램 운영이 다양하다. 서울․수도권, 광역시, 광역도가 완전 경쟁을 벌여서는 바우처가 지향하는 시장원리의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없다.

장르도 마찬가지다. 영화, 도서, 음반, 뮤지컬, 대중문화(콘서트) 등은 굳이 정부지원이 없더라도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이에 반해 연극, 무용, 전통예술, 전시, 음악 분야를 완전경쟁시장에 내놓을 경우 결과는 뻔하다. 장르 각 격차만 벌어진다.

장르별 이원화를 취해야 한다. 공급자가 다수인 장르(영화, 도서, 음반, 뮤지컬)나 지역(서울․수도권)은 카드제를 통한 자율적인 경쟁과 선택을 도입한다. 하지만 공급자가 많지 않거나 있더라도 수혜자가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거나 서비스의 격차가 심한 지역, 또는 경쟁력이 부족한 분야(연극, 무용, 전통예술, 전시, 음악, 문화일반)는 매개자를 활용한 제한적 선택과 경쟁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앙의 권한과 예산을 지역으로 넘겨줘야 한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어떻게 농촌지역 취약계층의 문화수준과 욕구를 알 수 있겠는가? 2010년에 실시했던 프로그램 선정위원회 형태의 체계가 부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어도 바우처를 이용할지 안할지 알 수가 없어

2010년까지 수혜자와 공급자의 매개조직으로서 지역주관처의 역할은 남달랐다. 이용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정보를 제공하거나 직접 예술가와 연결시켜줌으로써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도와줬다. 또한 예술단체 등과 협의를 통해 할인율을 적용함으로써 이용자가 두 배 이상의 혜택을 받게 하거나, 사회적․문화적 취약계층의 “정보의 비대칭” 문제를 해소하는데 일조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1년 지역주관처 역할을 대폭 축소했다. 이용자와 공급자의 매개자가 아니라 지역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벌이는 특별사업만 집행토록 했다. 예산도 전체 예산의 10% 정도(전라북도의 경우 2011년 전체 지원예산은 25억1천7백만원이며, 지역주관처 사용예산은 2억2천2백만원)만 할당했다. 문화바우처 사업의 보조자로 전락한 것이다.

변화가 초래한 결과는 컸다. 지역주관처가 담당하던 역할을 읍면동 행정조직이 담당했는데, 비전문성으로 인해 취약계층의 정보의 비대칭 현상이 뚜렷했다. 예술단체와 협의를 통해 얻어냈던 할인 및 무료티켓이 사라졌다. 이용자의 실질적 혜택이 반토막난 것이다.

예술단체 역시 매개 고리가 사라져 대도시에서 제작한 매머드급 프로그램에 바우처 예산을 빼앗겼다. 지역주관처가 있을 때는 바우처 이용자의 수요가 예측돼 작품제작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작품을 만들어도 바우처를 이용할지 안할지 알 수가 없어 아예 작품제작을 포기하기도 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이 자율경쟁을 통해 실효성을 거두기에는 역부족이다. 사회적 약자의 정보 격차가 여전하다. 지역예술단체가 자율경쟁으로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문화바우처를 통해 취약계층의 문화향유를 높이고, 더불어 지역예술단체의 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선순환구조가 되기 위해서는 민관거버넌스로서 지역주관처 역할이 다시금 강조되어야 한다. 지역주관처가 집행하는 예산과 역할을 강화해야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생활 속 문화향유가 이뤄질 수 있는 현실적 금액 조정

끝으로 통계적 이용률 제고가 아니라 실질적 혜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보다 구체화돼야 한다. 개인당 지원 금액이 상향조정될 필요가 있다. 예산을 대폭 늘려 수혜 대상자를 넓히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작은 예산을 잘게 쪼개면 실제 효과는 반감된다.

어릴 때 본 공연 한편이 인생을 바꾸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5만원은 너무 적다. 문화는 체험재로서 많이 경험할수록 효과는 커진다. 생활 속 문화향유가 이뤄질 수 있는 현실적 금액 조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원 플러스 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장애인, 노인, 아이들은 혼자 움직이기 어렵다. 보다 많은 취약계층이 예술현장으로 찾아오도록 동행자를 배려해야 한다. 농촌 및 산간벽지에 대한 지원책이 특별히 마련돼야 한다. 문화바우처, 여행바우처, 스포츠바우처를 통합해 관리하는 묶음형바우처도 고민해볼 수 있다.

[대동문화 69호, 2012년 3.4월호]

장세길(전북발전연구원 부연구위원․문화관광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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