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革新)이란 말의 사전적 정의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 정도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뭔가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하고 적용했을 때, 혹은 그런 것들을 발견했을 때 ‘혁신적’이라고 종종 얘기한다.

하지만 가장 혁신적인 것들이 시도되는 분야는 예술의 영역일 것이다. 음악은 특히 그렇다. 같은 곡일지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연주자와, 어떤 장소에서 하는 것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이라는 분야다.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음반 한 장은 ‘혁신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큰 감동을 주었다. 사실 난 한동안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음악다운 음악을 듣지 않았다. 음악다운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최근 몇 년은 최악이었다.

그런 어느 날 친구가 선물한 몇 장의 음반, 그 중의 하나는 ‘나윤선’이었고, 또 하나는 ‘Misa andina'였다. 제목 그대로 음반 겉면을 보곤 ’안데스의 미사’를 담은 가톨릭 색채가 넘치는 종교 음악이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음악을 듣는 순간 ‘Misa Adina'는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뛰어넘어 뒤통수를 후려 갈겼다. 종교 음악이 이렇게 박진감 있고 리듬감이 있는 줄이야.

박진감 넘치는 리듬감 일품인 종교 음악

‘Misa Andina'는, 30년이 넘는 동안 전 세계 수천 개의 교회를 찾아 다녔다는 노르웨이 최고의 스크럭(Skruk) 합창단이 안데스에서 발견한 인디오(Indio) 미사 음악과의 협연으로 만들어진 음반이다. 칠레의 인디오 음악 그룹 ’Altiplano'는 그들만의 악기와 화음으로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인디오 피리(quena), 팬피리(siku), 팬플푸트(antara), 큰북(tinya), 북(caja) 등은 서양의 음계와 편곡 속에서도 결코 홀로 공명하지 않고, 서양인의 합창(Coro)를 보다 더 빛내주고 윤기를 더해준다. 그것은 자연과 하늘에 대해 순응하면서 살았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어서 그런지 모른다.

박진감 넘치는 리듬감 일품인 종교 음악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zaro)가 1538년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 페루)를 함락시켰을 때, 이미 라틴아메리카는 영혼을 빼앗긴 대륙이 되었다. 이후 50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는 백인들에게 의해 유럽의 문화가 이식되었고, 라틴아메리카의 근·현대사는 백인의 역사이자 혹은 혼혈(Mezcla)이 낳은 변종의 대륙으로 진행돼 왔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 Uruguay)의 <수탈된 대지(Las Venas Abiertas de América Latina>에서 나오는 얘기대로, 가톨릭은 라틴아메리카를 가혹하게 정복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전한 종교였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그 안에서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지를 보고 가톨릭을 받아 들였다. 그것은 순수한, 혹은 신실한 그들의 신앙에 대한 태도였고 'Misa Andina'는 그것의 결과물 중 하나였다.

낮은 사람들이 낮은 곳에서 전하는 신의 음악

음반은 장엄한 미사의 원형을 유지하면서도 아주 완성도 있는 ‘음악’으로서의 진정성을 간직하고 있다. 이 음반의 실제적인 매력이다. 겉으로 보기에 신앙인들이 성당(교회)에서 미사를 드릴 때 일반적으로 찬미하는 찬송(讚頌)의 형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데,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핍박과 수탈을 통해 들어왔던 이방인의 구세주를 그들의 구세주로 받아들여 그들보다 더 신실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찬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사람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귀한 소리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쩌면 그들과 같은 피, 같은 피부를 지녔을지도 모를 우리의 오래 전의 과거가, 그들의 음악을 통해서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른다.

해서 종교적이긴 하나 결코 낯설거나 이국적인 운율로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이 음반을 들을 때 마다 작금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기쁜 일인지 깨닫게 된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한 장의 음반에서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삶을 발견한다는 것이. Gracias a la Vida!(내 삶에 감사드리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장용석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프로듀서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