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광대놀음이 필요한 곳 어디에서나 판을 펼치던 선대 광대들을 흠모하여 ‘광대’라고 일렀다. 넓을 ‘광(廣)’에 큰 ‘대(大)’, ‘넓고 큰 사람’을 일러 ‘광대’라 했다. 그러나 그 뜻은 심오하건만 요즘 시대에서는 스스로 그 말을 버리고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은 품격(?)으로 예술인, 연출가 따위로 지칭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나는야 광대, 언제나 길 떠난다네

대학 시절 동아리 ‘민속문화연구회(탈반)’ 활동을 통해 만난 탈춤과 마당극이 이제 나의 직업이 되어버렸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내가 ‘교사’가 되기를 기대하던 부모님의 소망을 무참히 꺾으며 ‘딴따라’가 되었다. 그나마 극장에서 폼 나게 연극을 하는 ‘배우’가 된 것이 아니라 ‘몸뻬’나 입고 ‘장터’나 ‘시위 현장’을 떠도는 ‘마당극 배우’를 한다고 나섰으니 부모님이 얼마나 실망스럽게 생각하셨을까? 그렇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마당극을 만들고 공연하며,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길 위의 인생’을 살고 있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극장 공연을 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야외공연을 많이 하는 탓에 극장 공연을 중심으로 하는 일반 극단과는 공연 준비부터가 조금 다르다.

먼저, 각종 무대 장치와 소품과 의상 그리고 음향 장비를 차에서 내리고 공연장 세팅을 한다. 바닥천을 깔고, 대기실용 천막을 치고, 무대막 장치를 설치한다. 그러고 나면 배우들은 분장을 하고 진행팀은 음향 셋업을 한다. 배우들의 핀마이크와 음향 체크가 끝나면 공연 준비가 끝난다. 이제 관객 입장만 끝나면 공연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난장에 설치한 대기실이라 더위와 추위는 고스란히 배우들의 몫이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흔들거리는 무대막과 천막을 고정하느라 정신이 없고 폭우라도 쏟아질 양이면 어쩔 수 없이 공연은 취소된다. 그러면 또 짐을 싸서 길을 나선다.

인자는 세월도 금방 가지네잉?

가끔 나도 후배들과 함께 연기를 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주로 연출을 맡고 있으며 순회공연 시에는 현장 스텝이 되어 공연을 돕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공연 준비를 하고 있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새롭게 각인되어 보이곤 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후다닥 공연장을 만드는 모습, 공연이 끝나고 분장을 지우며 깔깔대는 모습, 어느덧 짐을 다 싣고 다시 길 위에 나서는 모습 등이 때로는 대견하게 때로는 애틋하게….

그 귀퉁이에 함께 있는 나를 투영하며…. 저 길의 종착점은 어디이기에 저렇게 부산히 짐을 싸고 풀고 또 싸고 풀고를 계속하는 것일까? 지금 가는 길의 다음 지점은 어디이고 무엇이 있을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올해 정기 공연 작품으로 올렸던 ‘꽃같은 시절’(공선옥 원작)에 다음과 같은 할머니들의 대화가 나온다.

마동댁 : 아따, 인자는 세월도 금방 가지네잉.

시앙골 : 근게. 이라고 덥다가도 나무에 다 단풍 들겄제.

마동댁 : 단풍들어 떨어지믄 인자 바람 불겄제.

쌍암댁 : 바람 불믄 인자 눈 오겄제.

마동떡 : 눈 온가 싶으믄 또 꽃 피고 잉.

길 위에 나선 지 삼십여 년…. 그 세월이 후딱 가버렸다. 삶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고 했던가? 시간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꽃피고 단풍 들고 바람 불고 눈이 내리는 그 길 위에 나는 여전히 서있다. 가끔 길가 그늘에 주저앉아 막걸리 한잔 마셔가며…

관객들의 웃음과 눈물을 뒤로하고, 함께 하는 이들 어깨 토닥이며, 골목길 돌고 돌아 지구별 어느 길 위에 서있는 나는 아직 청춘이다. ‘발바닥이 욕하겄다’는 어머니의 가벼운 핀잔을 들으며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나선다.

대동문화 78호 [2013 9,10월호]

박강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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