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다사다난했고 피로한 한 해였다.

이런 얘기가 생각난다. 하루살이와 메뚜기가 친구가 되어 열심히 놀았다. 놀다보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메뚜기가 하루살이에게 말한다. ‘하루살이야, 벌써 저녁이 되었으니 내일 만나자’ 그러자 하루살이가 메뚜기에게 묻는다. ‘내일이 뭔데?’

하루살이는 하루만 살기 때문에 ‘내일’을 모른다. 내일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하루살이가 죽고 나니 메뚜기가 외로웠다. 그래서 만난 친구가 다람쥐였다.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하루는 다람쥐가 메뚜기에게 말한다. ‘내년 새봄에 만나서 놀자’ 그러자 메뚜기가 개구리에게 말한다. ‘내년이 뭐야?’ 메뚜기는 ‘내년’을 모른다. 내년이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자 아무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는 것만큼 살다가 죽기도 하고 아는 것만큼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 지구촌에서 하루에 약 30만 명이 죽는다고 한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한 자도 없다.

지난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권세자도 부자도 죽음 앞에 모두가 항복하고 만다.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다. 수천 년 전의 죽음이나 최첨단 과학과 의학이 발달한 오늘이나 죽음의 모습은 똑 같다. 공평하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삶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죽음은 오직 한길, 죽음의 모습은 똑같다.

그러나 이 죽음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있다 하더라도, 이 지구상의 어떤 사람도 자식이 자신을 살인할 거라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자식의 생명은 부모가 준 것이므로 그 생명을 잉태케 한 이를 죽일 거라 의심하면서 사는 부모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천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끔찍한 패륜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부모의 재산을 노리거나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부모나 가족을 살해하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반인륜 범죄가 줄을 잇고 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 천륜

얼마 전에 친구와 공모해 아버지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인면수심’의 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일정한 직업이 없는 아들 이모(22) 씨는 고교 동창 홍모(21) 씨 등 3명과 함께 자신의 아버지(55)를 무참하게 살해했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게 살해 이유다.

한 달 넘게 미궁에 빠졌던 이른바 ‘인천 모자(母子) 실종 사건’ 역시 패륜범죄로 드러났다. 경찰은 어머니와 형을 살해하고 시신을 내다 버린 차남 정모(29) 씨를 존속 살해 및 사체 유기 등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존속 살해는 2008년 45건, 2009년 58건, 2010년 66건, 2011년 68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모두 10만 2,948명이 부모나 친족을 대상으로 패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실제 일어난 패륜 범죄는 공식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라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식의 허물을 감싸주려는 부모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신고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폐륜 범죄는 비이성적 두뇌 구조를 가진 특정 개인의 일탈된 행동이 아니라, 물질 만능주의에서 비롯된 사회구조적 병리 현상이 되었다. 도덕성의 상실과 물질 만능주의, 정신세계를 비우는 인터넷 게임 문화의 폐해, 가족에의 결여, 윤리 의식의 결여, 돈이면 다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천륜을 망가뜨리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은인에게 칼을 들이대는 폐륜 범죄를 낳는다.

4대악 범죄, 오늘도 무사히!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그르칠 때 패륜(悖倫)이라는 말을 쓴다. 법 이전에 인간의 탈을 쓰고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절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게 패륜이다. 예부터 ‘저런 패륜아 같으니’ 라는 말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더 심한 욕설로 쓰였다.

벌써 가을 낙엽이 물들고 있다. 가을 낙엽처럼 나를 낳아준 부모도 언젠가 저 세상 사람이 된다. 그러나 부모가 폐륜아에 의해 억울하게 저 세상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부는 성 폭력·가정 폭력·조직 폭력·불량 식품을 4대악으로 규정하고 4대악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동 학대, 가정 폭력, 청소년 자살, 가출, OECD 이혼율 1위, 버림 받은 노인, 폐륜 범죄 등 가정을 위협하는 범죄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보다 강력한 법적 제재와 폐륜 범죄 예방 대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4대악 척결’ 공약은 지켜지기 어려울 것 같다.

학교 현장에서 선생님들은 ‘제발 오늘만 무사히!’라고 기도하고, 부모가 자식의 ‘SOS 신호’를 미리 알아채지 못하며, 자식이 부모의 목숨을 돈과 바꾸는 사회는 정상 사회가 아니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주필·이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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