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나간 자식 생각하며/ 아랫목에 밥 한 그릇 묻어 둔다// 새벽마다 아무 일 없기를/ 물 한 그릇 정성 들여 빈다// 한마디 말도 없이/ 쪽지 한줄 남김없이/ 덩그러니 빈 그 새벽부터// 어미는 아침이면/ 밥 한 그릇 가슴에 묻는다/ 덩그러니 빈.(- 김석기- <아랫목 밥 한 그릇>

아랫목이 그리운 계절이다. 장판이 검게 그을린 아랫목 말이다. 어릴 적, 골목에서 실컷 놀다가 돌아오면 엄마는 언제나 아랫목으로 들어오라고 이불을 들춰주셨다. 언 발을 아랫목에 묻으면 어느새 스르르 잠이 왔다. 밥 먹고 잠자라고 흔드시는 엄마의 손길에 눈을 뜨면 세상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요즘은 생소한 온돌방의 추억이다.

전통 구들방에는 비록 작았지만 각각의 영역이 있었다. 보통은 윗목, 아랫목으로 부른다. 온돌의 특성상 불길에 가까운 아랫목이 따뜻하고, 윗목은 차가웠다. 그래서인지 아랫목의 의미는 남달랐다. 아랫목은 항상 존중받는 어떤 장소였다. 즉 어른이거나 귀하거나 집안에서 아끼는 것들이 아랫목의 차지였다. 당연히 윗목은 상대적으로 존중을 양보한 경우다.

아랫목은 아련한 힐링의 장소

한편 인체에서도 아랫목을 차지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발이다. 허리다. 등이다. 모두가 노곤한 노동을 많이 하던 시절이다. 아랫목에 허리나 등을 지지고 나면 노동의 고단함이 풀렸었다. 그래서 아랫목은 힐링의 장소였다. 그러나 아랫목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머리였다.

윗목에 머리를 두고 아랫목에 다리를 묻고 잠자는 것. 조상들의 지혜이다. 반대로 할 수도 있었으나 조상들의 신념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건강의 지혜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두한족열(頭寒足熱)! 생활의 수칙이었다. 여기서 머리는 배꼽 위의 영역을 모두 포함한다. 즉 가슴과 목젖 및 머리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발이란 배꼽아래의 영역과 사지 말단을 포함한다. 즉 아랫배와 팔, 다리를 의미한다. 풀어보면 머리 가슴은 서늘하게 유지하고, 아랫배와 손과 발은 따뜻하게 유지해야 건강할 수 있다는 의미다.

머리가 뜨거워지는 이유는 스트레스이다. 조상들은 울화(鬱火)라 했다. 감정의 기복은 심장의 리듬에 영향을 미친다.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은 혈액의 분출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국소적인 혈류량의 저하를 보충하려면 심장의 압을 높여야 하는데 이때 심장 주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열감으로 느껴지면서 안면 부위로 치솟는 뜨거운 기운으로 느껴진다. 화끈거리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간양상항(肝陽上亢)이라 부른다. 간장의 과도한 기운이 위로 거꾸로 분출된다고 보았다.

한방에서는 침과 한약으로 상열감을 다스린다. 주로 심장과 간장을 다스리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유지해주는 한약을 처방한다. 원지, 석창포, 산조인 등의 약물도 좋다. 오지자차를 마시면 도움이 된다. 향기치료와 추나 요법도 좋다. 머리가 차가워지려면 스트레스나 화가 없어야 하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의 평정 유지해야 머리가 차가워진다

발이 차가운 것은 말초의 혈액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혈액 순환이 불완전하면 하체는 부종이나 냉증뿐만 아니라, 쥐나고 저린 증상 등을 동반하게 된다. 이런 때에는 한방에서는 침이나 한약으로 치료할 수 있다. 침은 경락의 기혈순환을 촉진한다. 현대적으로 근육의 피로도와 말초의 혈액순환을 개선시켜주고, 근력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부항도 효과적이다. 어혈을 제거해 주면서 일시적으로 국소의 말초 혈액 순환을 촉진한다. 저린 비증과 통증을 완화한다. 한약 중에는 오가피, 두충, 우슬 등의 약물로 구성되는 ‘독활기생탕’ 등의 처방이 하체와 발의 순환과 근력을 강화시켜주는 약물이다.

인체에서 대사 순환의 기초 물질은 혈액이다. 따라서 혈액 순환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생명 활동이다. 혈액 순환을 위한 최적의 요건은 ‘두한족열’해야 한다. 아쉽게도 현대에는 ‘두한족열’의 치유의 장소가 없다. 차가운 곳과 따스한 곳의 분명한 경계가 사라진 것이다. 마치 온돌이 보일러로 대체된 방처럼 말이다. 이제 ‘두한족열’의 의미를 찾아야 할 때이다.

스트레스는 적게, 혈액 순환은 활발하게! 운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가을이 저물어간다. 묵상과 치유의 계절이다. 아궁이에 불 지필 시간이다. 그리운 아랫목에서 겨울을 맞이하자. 머리는 냉정하게 손발은 온화하게, 하얀 미소가 퍼지리라.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안수기 한의학 박사 대웅한방병원 병원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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