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Apollon)은 태양의 신 즉, 빛의 신이다. 태양의 신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차가운 이성의 신이다.

디오니소스(DIonysos)는 포도주 즉, 술의 신이요, 연극의 신이다. 그러니까 뜨거운 신이다.

아폴론은 무수한 신들 중에서, 가장 잘생기고, 만능의 재주를 가진 신이다. 아폴론은 활의 명수다. 목표물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시킨다. 예언의 신이요 의술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염복이 많은 신은 아니었다. 그는 합리적인 이성의 신인데, 사랑은 차가운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아폴론이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심통이 나서, 한 여인을 비극으로 몰아간 일화도 있다.

아폴론의 이성, 디오니소스의 도취

디오니소스는 태아일 때 10개월의 절반은 어머니 세멜레의 뱃속에 있었고, 절반은 아버지 제우스의 허벅다리 속에서 자랐다. 제우스는 이 아기를 힌두스(인도) 땅 있는 뉘사산의 요정에게 보내어 기르게 했다.

성장한 그는 사람들에게,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전수하고, 자신의 신앙을 전파하면서, 그리스 본토로 귀환했다. 그는 나그네였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도취와 해방감에 빠지게 한다. 술의 기능은 취하게 하는 것이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 신도들은 모든 금기에 도전했다. 그래서 이성의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야수성을 드러내기도 했고, 현실의 고통과 번뇌를 벗어나려고 광란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러나 오니소스가 뜻하는 바는, 단지 도취에 빠지고 동물적 본능이나 분출시키는 것으로 끝내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참된 의미는 창조성에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준 술과 술자리는 쾌락이 아니라, 한 자루의 칼이다. 너희들은 자루를 잡겠느냐 날을 잡겠느냐? 내가 너희들에게 준 술은 무수한 생명이 뒤섞여 있는 카오스의 웅덩이다. 너희들은 빠져있겠느냐 헤어나오겠느냐?”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예술의 극치인 비극을 탄생시킨 신이다. 해마다 열리는 축제에서,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기 위해, 연극을 상연했다. 이날은 국경일 이었으며, 모든 시민들이 축제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었다. 관객들은 자기 마음 깊은 곳에 울려 퍼지는 비극의 소리에 반응해 연극과 하나가 되어갔다. 디오니소스가 인류 문화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그의 신화와 축제에서 유럽의 드라마가 생겨나갔다는 점일 것이다.

너는 낮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신이다. 아폴론은 낮의 신이요 디오니소는 밤의 신이다. 아폴론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파동은 과도하지 않다. 그것은 항상 절제와 균형 감각을 유지한다.

디오니소스는 폭발적이다. 파괴적이기도 하고 창조적이기도 하다. 아폴론은 귀족풍이다. 세련되고 깔끔하고 고고하다. 디오니소스는 민중류다. 거칠고 끈끈하고 역동적이다. 아폴론의 이성은 일정한 형식과 틀을 형성한다. 디오니소스는 그 형식과 틀을 깨트린다.

니체는 그의 <비극의 탄생>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다오니소스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이루어진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가장 잘 융합되어 나타난 것이 그리스 비극이다. 비극적 신화적인 사건의 디오니소스적 체험이 아폴론적 형식으로 구체화된다. 그리하여 비극은 탄생하는 것이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이 두 충동이 다투는 듯 화합하는 듯하면서 형성해가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라고 해석했다.

부부에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부부간에는 갈등도 있고 말다툼도 있다. 낮에는 싸우다가 깊은 밤에는 화해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그래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서 탄생시키는 바로 이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리는 남도 사람들의 얼굴은?

남도 사람들은 아폴론적인가 디오니소스적인가?

내 어렸을 적, 시골에서 걸궁이라고 하는 농악을 하는데, 악기를 두들기면서 춤추며 뛰는 그 모습이 엑스터시의 경지에 오른 그 광경을 목도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판소리나 육자배기를 들으면…. 정의 민주, 인권의 가치에 대한 간절함으로,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고자 줄기차게 함성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역사적으로 저항 정신의 표상으로 살아온 기록을 살피면….

극장에서 공연자들에게 보내는 환호와 박수, 그 붉게 달아오른 열정적인 얼굴빛을 보면…. 나주 출신의 천재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를 생각하면….

이 고장에서 유독 시인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남도 사람들은, 디오니소스 쪽인 것 같다. 디오니소스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면 복 받은 일이다. 이 원천이며 답답한 가슴에 산소 같은 바람을 불어넣어 준다.

그런데 열정의 과잉은 곤란하다. 격정은 강렬하고 갑작스러워 누르기 힘든 감정이다. 너무 큰 소리나 지나치게 밝은 빛은 감당하기 어렵다. 아폴론적인 것을 끌어들여야 할 이유다. 지나치게 뜨거워졌을 때 아폴론적인 찬물이 필요하게 된다. 아폴론을 속으로 품은 디오니소스, 아폴론을 넘어선 디오니소스, 내가 그리는 남도 사람들의 얼굴이다.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김포천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