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빨리빨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은 아닐까? 스마트폰 통신사들은 하루가 다르게 속도 경쟁을 하며 이러한 시류를 부추기고 있다. 음식점에서도, 직장에서도, 고속도로에서도, 학교에서도 모든 것이 빠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성화가 빗발친다.

그렇다고 모두가 빠르게 돌아가는 세태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슬로우 시티는 정신없이 몰아쳐가는 세상에 반기를 들고 해찰하며 싸목싸목 깐닥깐닥 살고 싶은 최소한의 대안으로 조성하는 마을 형태일 것이다. 조금은 불편해도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면서 사색이 필요한 도반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슬로우 국가가 있다. 바로 미얀마이다. 2013년 가을에 렌트 차량을 이용 지방도를 따라 16일 동안 미얀마를 다녀왔다.

황금의 땅에서 결속을 염원하다

미얀마는 비옥한 땅과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황금 불탑이 지천에 있기에 황금의 땅으로 불린다. 서쪽으로 방글라데시, 인도, 동쪽으로 라오스, 태국 북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반도 중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국토의 50% 이상이 숲으로 뒤덮여 있고 한반도 보다 3배 정도 크며 남북으로 긴 가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한때는 버마로 많이 알려진 나라. 그곳에는 167개 이상의 크고 작은 민족이 살고 있다.

그 중 버마족(Burma)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나머지 160여 종족이 살고 있다. 미얀마(Myanmar)는 ‘결속’이라는 뜻으로 1989년 국호를 버마에서 미얀마 연방으로 변경하였는데 소수민족들의 소외감을 불식하고 결속을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얀마의 정치 체제에 대해 오락가락한다. 대부분 미얀마는 공산국가 아니냐고 묻는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는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버마식 사회주의(1962~1988)를 추구했으나 1988년 수개월 간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무정부 상태에 빠지자 다시 친위 쿠데타로 등장한 군사 정부가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지본주의 시장 경제를 선언한다. 2008년 5월 국민투표에 의해 채택된 신헌법에 따라 ‘U Thein Sein’ 전 수상을 임기 5년의 대통령으로 선출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이다.

아직은 미숙한 상태지만 폭발적인 잠재력을 품고 있는 나라. 정화되지 않은 강물로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고 설거지를 하지만 영혼만큼은 동서 문명의 혜택 속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욱 하얗고 순결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도시의 도로에는 오토바이 소음과 낡은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이목구비를 압박해 오지만 시골 골목에는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어머니의 포근한 손길과 해맑은 눈으로 미소를 보내며 검게 그을린 거친 손을 흔들어 주는 때 묻지 않은 야생화 향내가 진동한다. 그래서 현자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오늘도 미얀마를 찾아가고 있다.

사색 없는 여행은 건빵이다

미얀마 여행은 2명에서 4명 정도 자유 배낭 형식으로 권하고 싶다. 친구나 연인 또는 부부 아니면 직장동료들로 팀을 꾸리면 금상첨화다. 자유 여행을 권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헤찰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사가 대부분 정해진 코스에 시간이 배정되어 주마간산 격으로 가이드 설명 듣고 이동하다 보면 정신이 없다. 여행 중에 만나는 풍경 속에서 내 스스로 사색할 시간이 없다면 여행의 맛이 무미건조해진다.

미얀마의 도로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며 통행 제한과 금지 지역이 많다. 도시 간의 이동 시간이 길어 국내 항공기를 이용하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비용이 부담되면 고속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최근 고속버스는 최신 시설로 우리 우등 고속을 능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행사에서 국민 관광 코스로 틀에 짜인 여정은 인천공항 – 양곤 - 만달레이 – 낭쉐(인레 호수) - 양곤 – 인천공항을 경유하는 8박 9일 코스다. 개인의 취향이나 시간 등 조건에 따라 장, 단기 일정과 배낭이나 여행사로 선택하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이번에는 보편적인 국민 코스 배낭여행에 대하여 방문지별로 핵심만 안내하고자 한다.

양곤에 순환 열차에 몸을 싣고…

양곤은 미얀마의 옛 수도이며 최대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양곤 순환 열차 타기, 쉐다곤 파고다 방문을 여행지로 권하고 싶다. 먼저, 순환 열차를 타고 느림의 미학을 맛보기 바란다. 시속 40키로 달리는 양곤순환 열차는 양곤 시내 외곽을 2시간 정도 소요하며 순환하는 서민 열차다. 녹이 슬고 창문도 없는 열차 안에서 미얀마의 민초들을 만나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철로 주변의 풍경들은 미얀마를 이해하는 조미료가 될 것이다.

쉐다곤 파고다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직접 목격했으면 한다. 미얀마에 2주 이상 있다 보면 맨날 보는 것이 비슷한 형태의 파고다이다. 나름 조성 당시의 사연이 있고 구조와 내용들이 다르지만 쉐다곤 파고다는 반드시 탐방할 것을 권장한다.

90%가 불교를 믿는 미얀마 사람들의 불심은 일상 그 자체다.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 앞에서 보살들이 뒹굴며 잠자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는가? 미얀마의 어느 파고다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부처님 앞에서 삼삼오오 불공드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잡담을 나누고 잠도 자고 미얀마의 사원들은 중생들의 안식처요 휴식처요 일상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부처님과 중생들이 함께 어우러진 평등한 세상을 볼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구현되는 현장을 신선한 충격으로 목격하게 된다.

유네스코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바간

바간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유적지 중 하나이다. 녹색의 자연 숲과 조화를 이루면서 수많은 다양한 형태의 파고다들이 곳곳에 박혀 있는 바간에서는 마차 투어를 추천한다. 일출에서 일몰까지 계약하여 마차를 타고 숲 사이 황톳길을 달리며 다양한 형태의 파고다를 하나씩 탐방해 보자. 또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정중앙에 위치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마하 간다용 수도원, 우뻬인 다리, 마하무니 사원, 만달레이 힐을 들러야 한다. 오전 10시경에 시작되는 수 백 명에 달하는 스님들의 점심 탁발 공양 풍경은 한 끼니의 식사에 대한 예의와 기다림을 통해 밥이 만들어지기까지 노동의 과정과 숭고함을 되돌아보게 하는 참선의 장이다.

이어서 우뻬인 다리를 걸어 보고 마하무니 사원을 탐방하고 일몰 시간에 맞추어 만달레이 힐에 오르기 바란다. 만달레이 주변 탐방으로 밍군과 사가잉을 가보자.

인레 호수가 있는 낭쉐는 상쾌한 고산도시이다. 이곳에서 일출에서 일몰까지 종일 보트 투어 체험을 해볼 수 있다. 인레 호수를 터전으로 다양하게 펼쳐지는 삶의 파노라마들. 보트 의자에 앉아 파란 하늘을 가르며 부딪쳐 오는 바람 따라 호수를 달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는 생각이 절로 밀려온다.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편린들과 조우하다

각각의 방문지는 주변 탐방 포함하여 2박 3일이면 무난하다. 국민 코스 배낭여행은 넉넉하게 최소 2주의 일정을 권하고 싶다. 조금 욕심을 내서 차량을 렌트하여 고속도로를 피하고 국도나 지방도를 이용하면 미얀마의 진국을 모조리 맛볼 수 있다.

국민 코스로 방문하게 되는 도시들은 관광지화 되어 있지만 국도나 지방도를 따라가면서 중간 중간 도로 주변에 모여 사는 마을로 파고 들어가면 토속 미얀마인의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생한 일상과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다가 잃어버리고 파괴해버린 소중한 삶의 편린들이 곳곳에서 번득거리고 있다. 재개발로 사라져 버린 유년시절의 놀이터와 살아있는 골목 풍경들이 있고 이른 아침이면 동네 우물터에서 머리를 감고 밤새 일어났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가며 빨래 방망이질을 하는 아낙네를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가 있고 사람은 태어나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이웃들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상생하고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인간 사회학의 보고이다. 여기서 우리는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한다. 돈과 권력과 명예와 물질문명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것을….

대동문화 79호 [2013 11,12월호]

문월식 문화재청 헤리티지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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