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어온다. 죽기 일보 직전이라면 무슨 음악을 듣고 싶냐고…. 사실 이 물음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당장 죽음에 놓여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음악이 단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얼른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 어느 잡지사에서 ‘내 인생의 노래 몇 곡’이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요청한 적이 있었다. 난 그때 며칠 동안 머리를 쥐어짜면서 고민을 했었다. 집에 있는 음반 수천 장에 담겨져 있는 노래들을 다 좋아하지만 막상 몇 곡을 추려보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곡절 끝에 헤아려 보니 즐거움보단 슬픔과 아픔을 위로해 주는 노래들이었다.

내 초딩 시절의 추억 영화 ‘벤지’(Benji)의 주제가 ‘I feel love’, 방황하던 시절의 대변자들 ‘송창식과 신중현의 음악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하게 해주는 소울 푸드인 ‘파블로 밀란네스’(Pablo Milanes)의 ‘Yolanda’(욜란다), 그리고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 등등 말이다. 이런 노래들이 내가 죽기 직전이라면 듣고 싶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피노체트 부하들에게 처형된 칠레 민중가수

거기에 덧붙일 음악 하나, 아니 이름 하나는 빅토르 하라(Victor Jara)다. 빅토르 하라는 ‘누에바 깐시온(Nueva Cancion/새로운 노래)’ 운동을 하다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의 부하들에게 처형된 칠레의 대표적인 민중가수다.

이상하게 요즘 난 빅토르 하라의 음악이 절절히 생각이 난다. 그것은 작금 70년대로 회귀하는 듯한 이 나라의 상황이 그의 음악을 연상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빅토르 하라가 장렬하게 죽어갔던 칠레의 70년대는 우리나라의 70년대와 흡사하리만치 닮았다.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1970년,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민주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당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대통령이었으며, 굶주림에 허덕이던 민중 특히 영양실조로 고통 받던 어린이들의 사회 복지 정책 실현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회주의적인 개혁 정치로 특권을 누리지 못할 것을 염려한 일부 특권 계층과 다국적 기업들의 반발과 싸워야 했다.

빅토르 하라는 70년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인민 연합의 열렬한 문화 사절로 참여한다. 그러나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73년 9월 11일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가 사망하고, 그는 9월 15일 축구경기장에서 군부에 의해 체포, 강제 구금과 혹독한 고문 끝에 기관총에 난사 당한 채 처형된다. 그의 음악은 군사 정권에 의해 모든 것을 강제 당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 조안 하라가 비밀리에 빅토르 하라의 녹음테이프를 갖고 칠레를 탈출한 이후, 복원해 비로소 그의 음악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17년 동안 이 노래는 묘지 속에 있었다

피노체트 쿠데타 일주일 동안 3만여 명의 칠레 국민이 학살됐다. 그것은 칠레의 민주주의가 역행되는 역사적 불행의 서두에 불과했다. 17년이란 기간 동안 암흑기는 계속됐다. 처형을 당하기 직전까지도 빅토르 하라는 민중연합 찬가 ‘벤세레모스(Venceremos, 단결하라)’를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빅토르 하라는 최후의 순간까지 고통 받는 칠레 민중을 위해 노래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오랜만에 그의 노래를 들어 본다. ‘민중의 바람’(Viento del Pueblo), ’아만다, 너를 기억해‘(Te recuerdo Amanda), ‘평화롭게 살기 위한 권리’(El derecho de vivir en paz) 등…. 그의 모든 노래는 정말 투박하고 솔직하다. 인류사에 이만큼 절절하고 순수한 음악을 부른 이가 있었던가. 누군가 내게 죽기 전에 꼭 들어보고 싶은 음악을 하나 얘기하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 빅토르 하라의 이름과 그의 노래들을 들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어쩌면 우리에게 그의 노래가 정말 필요한지 모르겠다.

대동문화 80호 [2014년 1,2월호]

장용석 문화 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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