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24일 오전 5시 30분. 일행을 태운 여행자 버스는 러시아 이르쿠츠크 ‘코트야드 메리어트 호텔’을 빠져나와 바이칼호 알혼섬을 향했다.

차량에 달린 온도계는 밖의 온도가 영하 15도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황소바람 소리를 내며 눈이 쌓인 길을 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로 미끄러지면서 달렸다. 사휴르타 선착장에서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놓치면 그날 일정을 끝장이었다. 차는 혹독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엔진이 터질 듯이 내달렸다.

이르쿠츠크는 중앙 시베리아 고원 남동쪽에 위치한 도시로 바이칼 호수에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할 곳이다. 인구는 250만으로 러시아계가 90%, 브리야트인 3%, 기타 민족이 7%의 구성비이다.

이르쿠츠크라는 이름은 사얀 산맥에서 발원하여 이르쿠츠크 시내로 흐르는 이르쿠트강에서 유래되었다. 이 강은 바이칼 호수에서 발원하여 시내를 관통하는 앙가라강과 합류한다. 두 강이 합류하는 선상지에 시베리아 개척단인 ‘카자크 원정대’가 겨울 야영지를 세우면서 도시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됐는데, 이것이 1661년이었다. 앙가라강이 시내를 적시고, 풍성한 타이가숲[자작나무, 소나무, 전나무 등의 북방수림]과 아름다운 건축 문화유산 도시로 ‘시베리아의 요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세르게’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전망 좋은 언덕에 신목(神木)을 세우고 오색 천을 감아 놓은 성소(聖所)인데 우리의 성황당 당산나무나 장승목, 또는 벅수 같은 것이었다. 이런 세르게와 들판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방목소가 잠깐잠깐 눈에 띄는 것 외에는 끝 간 데 없는 언덕과 길의 연속이었다.

알혼 지역을 총괄하는 행정 도시인 엘란츠 시에서 다음날 있을 시장님과의 면담을 요청해놓고 다시 일행은 길을 나섰다. 시라고 해봐야 모두 5개의 관할 구역에 인구 3만 명 정도의 도시였다. 엘란츠 시를 지나서 앙가라강을 건너 고개를 넘으면 따제란스카야 스탭 지대가 펼쳐진다. 이곳부터 항구 마을까지는 비포장도로여서 더 위험했다.

아! ‘바이칼 블루’와 해변의 이빨

드디어 일행들은 7시간에 걸쳐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바이칼’ 호수를 만났다. 이곳 항구마을 우리는 ‘바이칼 블루’라고 하는 색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목격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날카로운 바람과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그리고 단층 절벽들이 이빨처럼 병풍처럼 이어진 호수 경계선을 따라 작은 곶들이 하늘과 이어져 있어진 경계 안에서, 바이칼 호수는 그렇게 시린 듯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그 시린 물빛 때문에 눈이 베인 것처럼 시렸다.

바이칼(Baikal)호는 유라시아 동북쪽 시베리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기다란 초승달 모양의 호수. ‘성스러운 바다’,‘세계의 민물 창고’, ‘시베리아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 등으로 불리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오지에 묻혀 있고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로 남아 있다.

호수의 최대 깊이는 1,621m로 세계에서 가장 깊으며, 주변은 2,000m급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 호수에는 전 세계 민물의 1/5이 담수되어 있다고 한다. 바이칼 호의 표면적은 북아메리카 5대호의 13%밖에 안 되지만 물의 양은 5대호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더 많기 때문에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호수라는 명성에 걸맞다.

바이칼호에는 약 365개의 강에서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지만, 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오직 앙가라(Angara)강뿐이다. 이 물은 시베리아의 예니세이강으로 합류되어 북극해로 흘러든다.

바이칼호 주변에는 여러 소수 민족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부리야트(Buryat)족은 인구 40만의 소수 민족으로서 자치 공화국을 이루어 살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설화를 갖고 있으며, 그들이 간직한 샤머니즘의 원형은 우리 민속과 원류에서 가깝다.

바이칼 호의 바닥은 바다의 표면보다 약 1,295m 낮으며, 이는 주변 산정으로부터 약 3,750m 낮은 위치에 호수의 밑바닥이 있는 셈이다. 호수의 길이는 636㎞, 평균 너비는 48㎞로, 면적이 남한의 1/3이나 된다. 호수의 최대 투명도는 42m로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이지만 바이칼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1,637m이다.

바이칼 호에는 2,500여 종의 동식물이 사는데 이 중 상당수가 이 호수에만 사는 고유종이다. 세계 유일의 민물 물개[네르파]를 비롯해 철갑상어, 오물, 하리우스 등의 이곳에서만 사는 어종이 서식한다. 이처럼 생물 다양성이 높은 것은 바이칼호가 생성된 지 오래됐고, 일반적인 호수와는 달리 수심 깊은 곳까지 산소가 공급되고 자체 정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브리야트, 몽골, 야쿠트 민족뿐만 아니라 한민족 등 동북아시아 민족들의 시원지로 바이칼 호수는 다시 한번 조명되어야할 필요성이 있다. 모든 몽골리안들의 고향이며 마음의 안식처인 것이다.

모든 몽골리안들의 마음의 안식처

이 바이칼호 안에는 27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섬이 바로 알혼 섬이다. ‘바이칼호’가 ‘지구의 푸른 눈’이라면 알혼 섬은 ‘바이칼 호수의 푸른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길이가 71.7㎞이고 최대 폭이 15㎞로 마치 배의 몸체를 닮았다.

브리야트어로 ‘햇볕이 잘 드는 땅, 해가 충만한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 ‘알혼’섬은 바이칼 호수와 어우러진 절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알혼은 브리야트 주민이 대부분으로 슬라브족들도 소비에트 시절 수산물 가공공장이나 수용소가 들어서면서 들어와 거주하고 있다.

일행은 브리야트어로는‘사휴르타’라는 선착장에서 바지선인 ‘다로쥐니크’를 타고 20분 정도 알혼 해협을 건너 알혼섬으로 들어갔다. 알혼섬은 언덕과 언덕, 해안과 해안의 긴 연결선 외에는 시계에 잡히는 것이 없는 곳이었다. 섬길을 따라 하르고이 언덕과 쿠리칸의 성, 한호이 호수, 샤라 누르 등을 거쳐 후지르 마을에 도착한다.

후지르 마을은 섬 한가운데 있는 가장 큰 마을로 알혼 섬 대부분이 이곳에 산다. 어업과 목축업, 관광업이 보태지면서 우리의 70년대 농촌 풍경과도 같았던 마을도 지금은 많이 변하고 있다고 했다. 꼭 명절에 고향마을에 온 것처럼, 마음이 더없이 편해지는 것은 한국과 수만 리 떨어진 이국에서 느껴보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훈훈한 인심 간직한 알혼 사람들과 샤머니즘

후지르 마을 사람들은 함께 싱싱한 오물을 잡으면 나누어 먹고, 허드렛일도 함께한다. 가난하지만, 문명이 아직 집어삼키지 않은 훈훈한 인심으로 함께 오붓한 마을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후지르 마을은 바이칼 마을의 아름다움을 집약시켜 놓은 곳이었다. 그도노브 그레고리 빅토르비치 시장과 지역 유지들은 점심과 저녁 만찬에 한국의 광주광역시에서 온 문화사절단을 초대했다. 바이칼에서만 잡히는 오물 요리와 바이칼 모습이 그려진 보드카, 이곳만의 목욕 문화인 ‘바냐(통나무로 불을 때 물을 끓여 사우나를 하고 자작나무로 몸을 두들겨 마사지를 하는 욕실)’ 시설이 갖추어진 숙소까지 무료로 준비해두었다.

민속 공연단이 찾아와 그날 있은 알혼섬 지역시-광주광역시 사이의 문화교류 MOU 체결을 축하하는 공연을 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을 결코 홀대하지 않는 우리네 농촌 인심과 비교해 결코 그 훈훈함이 적지 않아서 일행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후지르 마을의 인구는 1,500여명. 이곳에 러시아인들이 들어온 것은 1643년, 러시아 제국의 시베리아 정복 과정에서였다. 알혼 섬의 전진 기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마을에는 민속박물관, 갤러리, 카페, 식료품점, 기념품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세상의 배꼽에 서있는 부르한 바위

알혼섬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는 바로 이 후지르 마을 북쪽에 있는 ‘부르한 바위’이다. 바이칼호에 내민 작은 곶이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바위는 새의 형상이다 싶은데, 산의 형상이기도 하고, 백조의 날개 같기도 하다. 이곳은 아시아 대륙의 9개 성소 중의 하나로 샤먼들이 ‘부르한 바위’라고 부른다. ‘밝은 칸’, ‘세상을 밝히는 하늘의 천신’이라는 뜻이다. 브리야트인의 조상이 탄생한 곳으로 믿고 신성하게 여기고 있다. 지구의 영적인 기가 집약된 배꼽에 해당되는 장소에 바이칼을 내려다보며 ‘부르한 바위’는 그렇게 서 있었다.

귀를 찢을 듯이 불어오는 시베리아의 칼바람을 가슴에 안으며 광주광역시에서 온 문화사절단들은 바이칼의 가장 성스러운 곳을 참례했다는 감격을 안고 잠시 멍한 눈으로 ‘바이칼 블루’의 호수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바치는 기둥과 같이 아시아의 중심에 서있는 세르게에 묶어놓은 오색천들이 미친 듯이 바이칼호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일행들은 하룻밤을 자고 알혼섬을 빠져나왔는데, 이곳 부르한 바위가 탄생된 설화인 ‘호리도이와 백조’이야기를 한국의 ‘나뭇꾼과 선녀’이야기와 어떻게 연계해 문화적인 교류를 전개할 것인지 이야기하느라 알혼섬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인 ‘사라이스키와 하란츼’, ‘사간-후슌과 삼형제 바위’, ‘하보이 언덕’, ‘사라이 언덕’, ‘우주릐만’까지는 가보지 못했다. 다음엔 꼭 같이 와서 바이칼에서 목욕을 하면 10년이 젊어진다는 신비한 예언을 과연 그런지 실천해보기로 약속했다.

일행은 광주 국제 문화도시 교류 사업으로 러시아 하바로브스키와 이르추크츠를 방문한 김영술 전남대 디아스포라학과 교수, 김유미 광주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최석현 갤러리 늘 공방 대표 등 4명이었다. 알혼섬을 건너올 때 일행들의 마음속엔 이미 ‘바이칼 블루’가 그리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동문화 80호 [2014 1,2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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