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전라남도 문화재위원

지난 8월 북제주군 주최의 '삼별초 세미나'에 지정 토론자로 참석했다. 삼별초에 관련한 3개 군인 강화, 진도, 북제주군이 자매결연을 갖은 뒤 네 번째 갖는 세미나였다. 그동안 삼별초 관련 논문을 10여 편 쓰고 단행본까지 낸 공주대 윤용혁 교수가 「삼별초 문화」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그동안 삼별초의 항몽은 왕조사(王朝史) 관점과 민족사(民族史) 관점에서 주로 논의해 왔으나 국제사 시각과 문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역사적 용기란 무엇인가

국제사적 관점이란 삼별초의 항몽이 일본 침략의 저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일본측 관심을 반영한 셈이다. 문화적 관점은 3개 군 유적과 유물 및 일본 다게시마 지역 유물이 이 시대 절대연대 편년의 기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옵서버로 참석한 일본학자 오가와(大川 淸)교수는 오끼나와우라조에(浦添) 성(城) 유적에서 나타나는 고려 기와가 삼별초군의 유입에 의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상기 교수에 의해 삼별초의 민족항전론이 제기된 뒤 많은 학자가 동조해 왔으나 주로 전남 지방의 김모 교수나 이씨는 무인정권의 과실을 지적하거나 반역사적 정치행위로 보는 부정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북한사학계에서는 인민들에 의한 대몽항쟁으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보았다.

최충헌 무인정권이 1258년 4대만에 무너진 뒤 김준, 임연, 임유무 등에 의한 무인정치가 계속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경 환도를 결정하던 1270년의 상항도 같은 시각에서 볼 것인가는 문제가 없지 않다. 물론 비록 강화도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정치 중심에 있던 문인들이 문신 중심의 관료층을 따라 대몽항쟁을 포기하는 것은 자멸을 자초하는 것이 될 것이므로 결사항쟁의 길밖에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인들이 자신의 안위만 생각했다면 홍다구처럼 몽고의 앞장이가 될 수도 있었다고 상정할 때, 대세가 불리한 입장에서도 결사항쟁을 결정했던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더구나 노비나 지방농민 등 소외 계층의 지지를 받은 역사사실을 생각할 때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볼 수 없는 일이다. 이 같은 용기들이 한반도 민족을 지켜준 뿌리였다고 할 일이다.

오늘날 한국의 사정을 당시 상항과 견주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미국이나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주의적인 자주 노선을 택할 것인가 세계정세에 순응해 안정을 유지할 것인가 고민해야하는 현실도 역사의 반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민족의 뿌리정신 보여줘

삼별초의 대몽투쟁은 몽고가 일본 원정을 위해 고려의 힘을 빌리려 한 점, 삼별초에 지방 출신이나 노비 등 소외계층이 합세한 점, 정치적 변동기에 개혁종교 세력이 가세한 점 등은 변혁기를 맞은 한국 현실에서 재조명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시세를 읽지 못하고 삼별초 저항이 한반도에 어떤 역작용을 했던가? 기회주의적인 친몽 정책이 옳았던가, 그것이 사회 정의인가 인간의 삶의 모습인가는 평가자에 따라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특히 삼별초군의 괴멸은 한반도사에서 기억해둘 비극적인 역사였다. 백제나 고려 정권은 해상세력을 기반으로 했던 나라이다. 신라가 융성했던 때도 장보고와 같은 해상세력이 기반이었다. 이 때문에 라이샤워 같은 이는 장보고의 해상세력을 ‘동방의 바이킹’이라고 묘사했다.

신라는 장보고 해상세력을 박해한 뒤 멸망의 길을 걸었고 해상세력을 규합한 왕건은 고려 왕조를 세운 뒤 남송과 교역을 활발하게 하면서 융성했었다. 그 세력들이 잔존해 후기 삼별초군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전 세계를 휩쓸던 몽고에 대항했던 것인데 삼별초가 토평되고 후기 고려는 멸망의 길을 걸었다. 몽고의 쇠멸이란 국제정세 하에 새 왕조를 이뤘던 조선왕조마저 해양세력을 기르지 못하고 쇄국하다가 종래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이다. 바다를 바탕삼아 살아가야 할 숙명의 지리이다. 이 같은 숙명적인 지리가 주는 이점과 약점을 간과한 정권은 망했음을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선이 그어지고 남한은 인위적으로 섬이 되었던 탓으로 연안에 제철소를 만들고 조선소를 세워 배를 타고 바다로 진출해 오늘의 성장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해상왕 장보고는 최인호 씨에 의해 <해신(海神)>이란 소설로 재조명된 뒤 완도에서 TV 촬영이 시작되었다. 최충헌의 <무인시대> TV 드라마가 삼별초의 최후까지 연결되었더라면 5․16군사 혁명 후 무인시대를 거쳐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이르는 현대사와 유사한 역사사실을 재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터인데 아쉬움이 많다.

삼별초 왕국의 진도 건설과 제주 항쟁은 지역사 입장에서 볼 때 더욱 엄청난 충격이었다. 제주는 삼별초가 망한 뒤 몽고 목장으로 쓰인 역사가 오늘날 제주 문화의 뿌리를 이뤘다. 진도는 재래견과 몽고군의 교잡종 진도개를 만들었다. 고려 말 일본 해적들이 남해안을 노략질할 때 중앙정부가 진도 사람들을 영암 시종으로 옮긴 것도 해적과의 동조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정책적 측면도 있다.

삼별초는 이처럼 제주와 진도 지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지만 왕궁이 있던 진도 유적들은 제주 유적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 황제로 일컫던 온왕(溫王)은 무덤이 구전되고 있으나 찾는 이도 별로 없다. 필자는 온왕이 얼마나 한스러워했을까 싶어 지난 5월 15일 묘제를 지냈다. 내년에는 한풀이 씻김굿을 할 작정이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는 시위를 보면서 고려 때의 친몽 고려정권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란 생각에 잠겨본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김정호 (전라남도 문화재위원․진도문화원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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