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종 국립광주박물관장

분청사기는 고려 말 14세기 후반부터 조선 16세기 전반까지 제작된 도자기로, 백토를 분장(粉粧)한 회청사기(灰靑沙器)를 뜻한다. 분청사기는 문양의 기법에 따라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 박지(剝地) · 철화(鐵畵) · 귀얄 · 덤벙(분장) 기법으로 나뉘며, 왕실부터 관청 및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한 생활 용기로서 조선 전기의 주요한 도자기였다.

분청사기의 시작은 고려 말 청자 가마의 내륙 이동과 맞닿아 있다. 공민왕과 우왕 때 격화된 왜구의 침입으로 강진(康津)과 부안(扶安) 지역 같이 서남해안의 많은 청자 가마가 파괴됨에 따라 이 일대 청자 가마들의 운영이 마비되면서 고려청자는 쇠락하게 되었다.

이에 청자 제작에 종사하던 사기장들이 내륙으로 흩어져 도자기 가마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고, 이후 조선 초부터 국가 운영을 위한 세원(稅源)으로서 공납(貢納) 도자기가 요청되면서 고려청자의 상감 ․ 인화 기법을 계승한 분청사기 가마가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이처럼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로 이어지는 도자문화가 집약된 대표적인 가마 유적이 바로 무등산 자락의 ‘광주 충효동 요지’이다.

광주 동쪽의 진산(鎭山)인 무등산(無等山) 정상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위치한 충효동에는 여러 군데 요지(窯址)가 분포하고 있는데, 그 중 발굴 유적이 위치한 금곡(金谷)은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에 자기소(磁器所) 기록과 연관된 곳이다. 무진군의 동쪽 이점(利岾, 梨岾)에 자기소 한 곳이 있다는 내용으로 언급되며, 이 점은 현재 지명으로 ‘배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충효동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말한다.

충효동 요지가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61년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임천(林泉)의 조사 보고를 통해서이다. 1963년 국립박물관의 가마 퇴적층을 발굴 조사로 이 유적과 출토 도자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사적 제 141호에 지정되었다.

무등산 가마와 조선의 도자문화광주시 충효동 요지는 조선시대 분청사기와 백자를 제작했던 곳으로, 특히 고려 말 청자에서 분청사기로 전환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이후 백자를 제작하는 단계까지 확인할 수 있는 핵심적인 유적으로, 한국 도자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 1991년에 이루어진 두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4기의 가마를 발굴하였고, 막대한 수량의 도자기 조각을 수습하였다. 그 중 2호 가마는 아궁이에서부터 굴뚝에 이르기까지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굴되어 가마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2호 가마는 총 길이가 20.6m, 폭 1.3m 내외의 터널식 가마로, 서쪽 벽에 6개의 출입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 발굴된 파편은 회청사기와 초벌구이 편을 포함한 분청사기가 1,400여 편, 백자 250편, 청자 20편, 흑유 10편, 토기 20편, 기타 190편으로 이를 통해 충효동 요지에서 생산하였던 도자기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충효동 요지에서는 상감기법․인화기법․박지기법․조화기법․귀얄기법으로 제작한 분청사기가 출토되었다. 대접과 접시는 대개 인화기법으로 장식하였고, 반상 기종 이외의 그릇은 상감이나 박지·조화 기법에서 조화 기법 위주로 변하면서 점차 그릇 바탕의 백토 흔적이 옅어졌다.

메이드 인 광주-도자기의 사회상

충효동 가마에서 생산한 분청사기와 회청사기, 백자에는 다양한 명문이 발견된다. 관사명, 지명, 사기장(沙器匠) 이름, 기타 제작한 시기나 여러 필요에 따른 명칭이나 숫자를 넣어 용도를 표기한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명문을 도자기에 새기는 것은 태종 17년(1417)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공공의 도자기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관청의 이름을 새기거나, 만든 사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제작자의 이름을 새기는 규정이 있었다. 숨기거나 깨져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폐단을 막기 위하여 만든 방안으로 보인다.

또 만든 곳과 때를 밝히기 위하여 제작한 지역이나 간지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더구나 세종 3년(1421) 공조에서 진상하는 그릇의 품질 개선과 이에 대한 책임을 위해 그릇 밑바닥에 장인의 이름을 써 넣을 것을 건의하면서 사기장의 책임이 더욱 강화되었다. 충효동 분청사기의 명문은 약 120여 가지가 있는데, 도자기의 성격이나 내력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로 명문은 대접ㆍ접시ㆍ바래기의 굽 안과 그릇 안 바닥에 명문이 집중되고 있는데, 층위에 따라 굽 안에서 그릇 안 바닥으로 위치가 변한다. 굽 안과 같이 감춰진 곳의 명문은 음각된 것이 대부분이고, 안 바닥과 같이 드러난 곳에는 도장을 찍은 명문이 주로 발견된다.

도장으로 찍은 글씨는 ‘광(光)’자가 가장 많고, 그 외에 ‘광(光)’과 여러 의미의 글자가 결합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광(光)’은 제작지인 광주(光州)를 의미한다. 이것은 광주에서 만들어져 중앙에 공납하는 도자기이거나 지방 관청에서 사용하는 도자기임을 의미한다.

또한 충효동 분청사기에는 ‘무진내섭(茂珍內贍)’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광주 옛 지명인 ‘무진(茂珍)’과 관청 이름인 ‘내섬(內贍)’을 함께 새긴 것이다. 무진은 1430년에서 1451년 사이에 사용된 옛 지명으로 제작 시기를 가늠하게 해준다. 내섬시의 경우, 태종대부터 정조대까지 경외관(京外官)이 각 궁전에 대한 공물 진상, 2품 이상의 관리에게 왕실이 내리는 음식과 기물을 맡아 보았던 조선시대 관청으로, 무등산 분청사기가 왕실에 공납하던 도자기였음을 알 수 있다.

충효동 요지에서는 귀얄을 사용하여 그릇 안쪽에 백토를 바르고 조화 기법으로 여의주를 쫓는 용의 모습을 장식한 분청사기 접시 파편이 출토되었다. 용은 왕과 왕실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할 때 장식하는 것으로, 조선 건국 무렵 다양한 종류와 장식 기법의 도자기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어존’이 새겨진 귀얄 장식의 분청사기 마상배는 도자기의 명문이 대개 한자인 점과 달리 한글로 표기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무등산 도자문화, 물산의 다양성

충효동 요지에서는 분청사기 외에 청자․회청사기․흑유 도자기․백자 등이 출토된 바 있다. 청자의 경우 회백색의 바탕흙에 실투성의 정선된 청록색 유약을 입혀 제작한 것이 확인되는데, 접시·마상배·뚜껑 등이 발굴되었다.

광주 충효동 요지에서는 왕실과 관청으로 공납되던 도자기부터 시작하여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던 일상기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사람들이 사용한 분청사기를 생산하였다. 따라서 무등산에서 제작된 조선시대 분청사기는 새로운 기법과 독창성, 책임 의식을 바탕으로 둔 광주 문화의 한 조류에 위치한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조현종 광주국립박물관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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