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전쟁의 폐허에서 산업화를 이룩한 한국인들의 집단적 자신감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나이키의 광고 카피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Just do it!)”는 우리에게 격려의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임직원들을 부정적인 의견을 질책하며 썼다는 “해봤어?”라는 반문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었던 시절, 마치 죽비와도 같이 무기력과 자기폄하에 일격을 가하며 자신감을 일깨웠습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만들겠다는 거창하고 담대한 계획은 우리나라가 2차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을 거둔 아시아 유일의 신흥국가라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으로 과거 격조 높은 문화적 성취를 이루었으며 민주화 과정의 희생과 헌신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 광주가 선정되었습니다.

매력으로 형성되는 중심

그러나 “여기가 중심”이라고 부르짖어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 행정, 경제의 중심은 정책적 결정만으로 가능하고 여러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 중심, 특히 미국의 라스베가스 같은 하위문화의 중심이 아니라 문학에서 공연예술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모든 부면과 층위를 망라하는 진정한 문화 중심은 정책적 결정으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문화의 중심은 주변의 다양하고 이질적인 문화를 끌어당겨 조화롭게 통합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중심이 주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이 중심을 형성합니다. 그 통합의 힘은 교통이나 주거환경 같은 물리적 인프라나 경제적 풍요만으로는 불완전합니다. 충분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매력이 필요합니다. 뭔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끌림의 힘은 참으로 기르기도 보여주기도 쉽지 않습니다.

매력을 인간관계에서 생각해 보지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중심 없이 갈피를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매력을 형성하는 요소도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조악하고 부박해도 매력이 없고 너무 세련되고 진지해도 매력을 느껴지지 않습니다. 남루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어렵고 허영과 과시에서 매력을 느끼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한 사람이 매력을 발산하기도 이토록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공간이 매력을 발산하는 일은 쉽지 않으며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아시아 문화전당의 완공이 임박한 지금도 “중심이 될까?”하는 의구심을 말끔히 거둘 수 없습니다. 자신감이 지나치다보면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와 무모함으로 이어져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자기폄하도 문제지만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더 큰 문제입니다.

전당 개관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웹사이트에 들어가 봤습니다. ‘아시아의 문화를 품고 세계로 나아갑니다.’ 이런 캐치프레이즈가 표제로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출발점을 광주로 잡은 배경이 간략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하여 1시간 이내에 아시아 주요 도시들과 교류가 가능한 도시 광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로드맵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는 2023년에 완성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9년 남았습니다. 그 동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광주에서 아시아 주요 도시들과 한 시간 이내에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은 좀 과장되게 들립니다. 그리고 ‘민주 인권의 도시, 맛의 도시, 문화예술인의 도시’라는 것을 문화 중심의 될 수 있는 배경으로 부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을 붙이기까지 사연과 곡절이 있겠지만 그냥 문화중심도시라고 하지 않고 굳이 아시아라는 한정사를 붙인 것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인식 체계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시아의 문화 중심인지 아시아 문화의 중심인지 모호합니다. 단순히 지리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지 아시아 여러 나라 문화의 어떤 친연성을 전제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시아의 문화를 품고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면 결국 세계의 문화중심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이미 세계적인 문화 중심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뉴욕, 파리, 런던 같은 곳은 어떻습니까? 처음부터 중심이라고 내걸고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망명이나 이민 같은 역사적인 계기를 통해 주변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중심이 형성된 것이죠.

그동안 전당 건설을 둘러싼 갈등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금년 말 완공을 목표로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단언컨대 전당의 완공은 문화 중심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중심을 표시하는 깃대를 세우는 데 불과합니다. 이제는 생소하고 이질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다름에 대한 관용

뉴욕에서는 이방인이나 여행객들도 현지 주민들과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지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고 포용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다문화라는 별도의 이름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뉴욕적인 것이자 동시에 세계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도래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장르, 다양한 양식들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며 뉴욕이라는 문화 중심을 형성합니다.

“내가 중심”이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만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문화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나만의 가치와 기준을 강요하는 곳, 나의 틀로만 세상을 내다보는 곳에 사람들은 모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간 외톨이가 되어 홀로 빈집을 지킬 수밖에 없습니다.

군복무 시절, “안되면 되게 하라.”는 구호를 많이 듣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는 밀어붙인다고 일이 되지 않습니다. 문화 중심은 강제와 억지로 결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또 문화 중심을 문화외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게 되면 문화는 없고 중심만 남게 될 것입니다.

광주가 자랑하는 민주, 인권, 평화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당위적이며 보편적인 가치입니다. 여기에 자유, 개방, 관용이라는 가치가 더해지면 광주는 조금씩 하나의 중심으로 형성돼 나갈 것입니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서경주 광주MBC 사장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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