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집을 짓고 주말에 들려 나무를 가꾸게 된 계기는 두 번 있었다. 장기 교육을 마치고 몇 개월 간 대기할 때이다. 직장 생활을 한 후 처음 갖는 긴 휴가였다. 평소 찾고 싶던 고향에도 자주 갔으나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부친이 일찍 작고하시다 보니 넓던 종갓집 생가도 진즉 없어졌던 것이다. 평일 낮 시간에 서울의 아파트에서 빈둥거리다 보니 감옥이 따로 없었다. 뭔가 고향에 근거를 마련해볼까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그 후 영국에서의 파견 근무 시절 때였다. 선진국 사람들의 삶은 과연 어떨까에 대한 해답이 우선 그네들이 사는 집에서부터 나왔다. 우리와 같은 아파트 천지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정원을 낀 주택들이 도시 외곽의 전원에 그림처럼 깔려 있었다.

세입자라도 개라지(garage, 차고)에 가득 찬 공구로 집안 나무와 꽃들을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었고, 깎은 풀들은 지정된 곳으로 운반해 버려야 했다. 아파트에선 꼼짝도 않던 내게 적지 않은 가내 노역이 생긴 셈이다.

귀국하면서 보니 즐비하게 늘어선 아파트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양인의 눈에, 우리의 주거 공간인 아파트는 개화기 사진 속의 퇴락한 초가집들처럼, 뭔가 이상하게 보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파트 그 숨막히는 공간에서 한옥으로

그리고 광주에서 근무하게 되자 고향 인근을 뒤져 현재의 순천시 주암면 오산마을에 집터를 마련하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은퇴를 대비한 세컨드 하우스 정도였다. 집도 한옥으로 조촐하게 짓고 약간의 텃밭 공간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한 마을 주변 밭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래 묵힌 땅을 포클레인을 동원해 거의 개간 차원의 정지 작업을 했다.

처음에는 관리가 쉬운 조경수를 심었다. 그러나 계통을 알아갈수록 판매 문제가 아마추어에게 버거운 것이었다. 고민하던 중 주변의 권유로 헛개나무로 교체했고, 결국 이것이 주력 작물이 되었다. 작년 추석부터 잔가지를 잘라 건조하고 또 직화옹기로 중탕액을 달여 명절 선물로 썼다.

이러다보니 집터 빈 공간에 작업장, 저온창고, 비닐하우스 등을 증축하게 됐고, 트럭, 경운기 로터리, 관리기, 고추건조기, 잔가지 파쇄기 등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집은 벌써 휴식처가 아니라 농가가 됐고, 아내는 제발 쉬어가면서 일하라고 오히려 타박했다. 그러나 주말이 다가올 때면 머릿속은 항상 바쁘다.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사서 무얼 만들고, 어떻게 꾸며나갈까…?

귀농 귀촌이 시대의 트렌드로 다가온 이유

이런 귀농 귀촌이 요즘 트렌드라고 말해진다. 확실히 주변에 이미 실행하거나 고려중인 사람들이 꽤 있다. 베이비부머들이 대거 직장을 떠나는 시대 속에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일 것이나, 이에 대한 평가는 기대와 우려로 엇갈린다.

그런데도 긍정적인 쪽으로 퍼져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고령화이다. 정년 후 10년은 그럭저럭 놀고 보내지만, 20년 내지 30년이 남았다면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공감을 얻고 있다.

둘째, 더 절박한 이유로는 노후 준비가 안 된 은퇴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부모 봉양하고 자식 결혼 비용까지 댄 세대들에게 남은 유일한 재산은 대도시 아파트이다. 이를 팔아서 일부는 시골집을 마련하는 데 쓰고, 나머지를 노후 자금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실정이 그들의 관심을 농촌으로 쏠리게 했다.

원인이야 어쩠든 귀농 귀촌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개인으로서는 노후에 쉬기만 하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한 생산적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봤던 서양과 달리 동양철학에서의 자연은 인간이 세속에서 할 일을 다 하면 귀의해야 할 근원이었다. 은일(隱逸)과 청담(淸談)을 통해 향수하는 미적 대상이었기에 예술과 교육 활동 나아가 종교적 사유의 바탕이 되었다. 과거에 유행한 이런 고상한 정신적 가치의 차원까지는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자연 속의 생명체를 키움으로써 이 세상 만물 속에서 아직 플러스하는 존재라고 자위할 수는 있다.

귀농 귀촌 농산어촌을 살리는 복합 시책

또 사회적으로는 농촌의 과소화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 대안이다. 경제성을 무시한 농촌 공업화 시책들이 번번이 실패한 후 농촌을 살릴 뾰쪽한 수단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복지·관광 사업과 함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추진할 수 있는 복합 시책이다.

더구나 귀농인들이 소규모로 생산한 농산물은 웰빙 시대에 선호도가 높은 국내산 친환경 식품으로 소비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약초·생약 산업도 이들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볼 수 있는 블루오션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정한 자연이 보존되고 지가가 저렴한 호남이야말로 귀농 귀촌의 적지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귀향을 통해 인구 감소로 위축됐던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이 솟을 것을 기대해볼 만하다.

호남이야말로 귀농 귀촌의 적지

그러나 필요성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별장은 사는 다음 날부터 후회하게 된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벌써 파다하게 퍼져 있다. 살다가 아니다 싶어 팔려고 내놓은 전원주택들이 이미 상당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원인으로는 첫째 농촌 생활의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 외롭다.

평소의 인연과 의례로부터 어느 정도의 단절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비상시 의료 문제는 현재로서는 가장 난제이다. 자가용으로 1시간 거리라고 생각하면 간단하지만 도시에 비해 의료 복지 문제의 사각 지대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난방비는 예상을 훨씬 초월한다. 심야전기 등 정부가 지원한 시책들이 대부분 한시적으로 끝나, 난방은 정말 심각히 고심해야 할 문제로 다가온다. 그리고 해충과 농약, 농기계 사고에 대해 특별히 주의해야 하고, 무릎 구부리고 햇볕 속에서 하는 작업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노후 건강에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둘째 원인으론 수익성 높은 작목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조경이나 과실, 채소 모두 재배보다는 판매가 더 관건이다. 특용작물 중엔 초기 시설 투자가 과다히 소요되는 것이 많다. 이럴 경우 한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새와 산돼지, 청설모, 농작물 도둑 등 도시 생활에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들이 나타나 수확을 갉아먹는다.

주민과 소통하고 동화돼야 성공 방정식

그러므로 해법은 먼저 개인적으로, 너무 큰 기대를 말고 시행착오를 감내할 각오로 점진적으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전히 도시를 떠나 이주하는 것은 사실 위험하다. 그리고 농업을 겸하지 않으면 귀촌의 의미가 갈수록 퇴색한다.

현지 주민과도 소통하지 못하면 귀양을 온 것처럼 돼버리기 십상이다. 농사를 지어야 주민들과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선물도 하고 애경사도 챙기는 등 정성을 쏟아야 한다.

처음부터 수익을 너무 기대하지 말고 가족 친지에게 철따라 건강식품을 제공하고, 명절시 선물을 직접 재배한 작물로 대체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수익성이 확인되고 판매에 자신 있으면 그때 확대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또한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고 농기계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예초기 정도를 도저히 못 다루겠다면 귀농은 일찍 포기하는 게 좋다.

다음에 사회적으로는 수요에 알맞은 다양한 지원 유도 정책이 필요하다. 그 중점은 가장 일반적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귀농 귀촌 유형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양새는 요란할지 모르나 다른 농촌 시책들과 같이 실패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다. 모처럼 형성된 트렌드가 정책에서 문화로 정착되기 전에 그 의지가 꺾여 버리는 것이다.

은퇴 도시 조성이나 한옥 단지 지원 시책의 경우 무엇보다 기반 조성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기존 마을에 몇 집씩 들어가는 형태면 충분할 것이고, 한옥도 살아보니 계속 손봐야 하고 난방에 취약했다. 이런 시책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최소화하고, 재정 여력을 보다 일반적인 유형에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규모로 농업을 시작하는 은퇴자 그리고 관리가 간편한 주택 정도가 가장 많은 수요이지 않을까. 이들에게 농촌생활에 필수적인 태양광 시설, 소규모 비닐하우스, 저온창고와 건조기, 그리고 몇 종류의 농기계 구입·설치비를 세트로 하여 일부 보조·알선하는 것이 대규모 단지를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인 유도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동문화 81호 [2014 3,4월호]

최종만 광주상의 상근부회장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