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에 위치한 암자인 천자암의 쌍향수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보조국사와 담당국사의 지팡이

전남 순천의 조계산 자락, 아늑한 절집은 불보사찰인 통도사, 법보사찰인 해인사와 더불어 승보사찰에 해당되는 송광사다. 승보사찰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가운데 훌륭한 승려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이곳 산내암자인 천자암에는 송광사의 3대 보물 중 하나인 쌍향수(곱향나무)가 그 웅장한 모습을 뽐내며 서 있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꺾꽂이를 한 나뭇가지에서 어떻게 뿌리가 나올까’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볼만 하다. 잘려진 나무에서 뿌리가 나오려면 나뭇가지 스스로 본 줄기로부터 떨어져 나온 상황을 알아야 한다.

나무는 뿌리로부터 수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말라 죽는다는 위기감을 갖는다. 그래야만 뿌리를 만들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여 온몸의 영양을 그쪽으로 보내 뿌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정말 식물도 생각을 하는 것일까? 피터 톰킨스(Peter Tompkins)가 쓴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에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서도 식물의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인 클레베 백스터(Cleve Bakster)는 세계 각지에서 온 경찰과 보안담당자에게 거짓말 탐지기 교육과정에서 이러한 현상을 경험했다.

어느 날 거짓말 탐지기의 전극을 ‘드러시너(Dracaena)’ 잎에 연결해 잎을 태우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조사하려 했다. 그런데 검류계의 바늘이 급작스럽게 움직이며 그래프의 도표가 위로 쭉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식물이 사람의 생각을 알아챈 것이라고 판단한 백스터는 깜짝 놀랐다.

양파, 상추 등 25가지가 넘는 식물을 조사한 결과 모두 같은 현상이었다. 그 후 많은 과학자들은 식물이 생각을 하고 놀라고, 질투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송광사의 우화각(羽化閣) 앞에 키가 6.7m인 말라죽은 나무가 있다. 고려 명종 30년(1200) 송광사를 창건한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스님이 “너하고 나하고 생사를 같이 하자. 내가 떠날 때 너 또한 마찬가지…”라는 시를 지어놓고 입적하니 이 향나무도 말라 죽었다. 현재까지 썩지 않고 남아있어 고향수(枯香樹)라고 부른다.

조선 영조 27년(1751) 이중환이 쓴 <택리지>에도 “보조국사와 함께 죽은 나무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식물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한다고 입증이 되었다지만 “함께 죽자”고 한다 해서 같이 죽을 수 있을까?

천자암 가는 길은 낭만과 역사의 길

광주에서 출발하여 화순을 경유, 주암호를 따라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며 드라이브를 만끽하다 보면 화순과 보성의 경계가 나온다.

보성 대원사로 들어가는 교량을 지나기 전 좌측으로 3km쯤 들어가면 일일레져타운이 있다. 이 시설은 개인이 한 것으로 돌을 이용하여 담을 쌓아 집을 짓고 통나무를 이용하여 방갈로를 지어 낭만을 즐기도록 했다. 아담한 호수가운데 섬을 만들고 정자를 지어 백일홍과 각종 꽃을 심어 운치를 더했다.

거기에다 공사현장에서 디딤 발판으로 사용하는 철판을 이용하여 출렁다리까지 놓아 섬을 왕래하도록 했다. 건너편에는 그네를 설치하여 찾는 이들로 하여금 옛 추억까지 흠뻑 느낄 수 있다.

그곳을 돌아 나와 서재필 박사 기념관에서 좌회전하여 우측으로 들어가면 보성군 전통 공예공방 갤러리 ‘re'가 나온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이용하여 공방갤러리를 열었는데 각종 공예품이 전통적인 것이어서 특히 인기가 좋다.

갤러리를 나와 좌측으로 들어가면 덕봉이라는 마을이 있다. 연산군 2년에 형성된 마을로 주암호 수몰지역 이주민들이 상당수 이주해왔다.

마을 앞에는 B가든이라는 식당이 있다. 그 식당은 촌닭을 전문으로 한다. 한적한 마을에 있는 식당치곤 음식 맛이 꽤 괜찮은 곳으로 소문이 나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식당 앞에 있는 노거수를 조립식 건물이 감싸고 지은 것이다.

노거수는 느티나무로서 전라남도에서 지정한 보호수이다. 46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이 보호수는 마을에 해가 많이 들어 해가림의 용도로 심어졌다는 설이 있다.

보호를 받아야 할 나무인데도 버젓이 조립식에 둘러싸여 식당 영업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문화재 지킴이 활동이 확산되는 추세에 반해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거수 앞에는 안내판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다. 한 나무를 두고 각기 다른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한다. 나무의 수령을 두고 하나는 460년인 반면 하나는 380년으로 무려 80년이나 차이가 난다. 나무의 높이와 둘레 등도 각각 달리 표기되어 있다.

그곳을 나와 천자암을 향하여 송광사 방면으로 가다 보면 고인돌 공원이 나온다. 공원 못미쳐 좌측으로 제법 운치 있는 정자 빙월정(氷月亭)이 있다. 조선중기의 의병장이며 성리학자인 은봉 안방준이 주인이다.

안방준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때 의병을 이끌고 청나라 군사와 맞서 싸운 인물이다. 주암호로 수몰되기 전 이 마을에 정착한 남도의 훌륭한 선비의 얼을 느끼면서 정자를 지난다.

송광면 소재지 직전, 삼거리가 곡천(曲川)이다. 승보사찰 송광사와는 지척에 있다. 곡천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하다. 청정한 지역에서 잡히는 메기와 쏘가리가 그것이다.

꼭두내라 불리는 곡천은 한천이라 하여 차가운 물이 많이 나던 지역이었다. 은어를 비롯하여 매기, 쏘가리, 가물치, 붕어, 미꾸라지 등 많은 민물어종이 사는 곳이다.

절 고랑을 가다보면 어디든지 산채 비빔밥과 도토리묵은 말할 것도 없고 더덕구이, 파전 등 산채 음식들이 즐비하다. 거기에 놔먹인 닭 집이 유난히 많은데 자연적인 음식의 조화라고나 할까?

조계산 정상 남쪽 8부 능선 ‘천자암’

곡천에서 송광사 반대방향인 벌교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송광면 소재지다.

소재지에서 벌교방면 주암호 상류로 유입되는 하천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들어가면 송광면 이읍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마을회관에서 경사로를 따라 약 2km를 가면 조계산 정상 서남쪽 8부 능선에 천자암이 자리한다.

4륜 구동의 차가 아니고서야 일반 자동차로는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경사다. 오르는 길에 급경사 때문에 물건을 실어 암자까지 날라주는 곤도라가 설치되어 있다. 곤도라는 일반 자동차가 더 이상 오르지 못할 위치에서 시작하여 암자까지 3백여 미터정도 된다.

지금은 차편을 이용하여 물건을 나르므로 곤도라가 필요 없다고 한다. 곤도라를 보니 윤선도가 보길도 동천석실에 올라 산 아래 있는 관계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요청하여 받았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급경사에 설치된 산속의 곤도라, 왠지 낭만적이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경사를 따라 등산객 차림으로 천천히 암자를 향해 오르는 것은 어떨까?

법사나 도사의 흉내를 내 보는 것도 여유로운 마음일 듯하다. 20여분 정도 오르다보면 산 중턱에 위치한 천자암이 나온다. 암자이면서 산신각, 나한전, 종각 등이 갖추어져 있다. 나한전 왼편으로 언덕 위에 나란히 쌍향수가 그 웅장함을 뽐내며 서 있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사이

천자암에 우뚝 서있는 쌍향수 중 하나는 중국 금(金)나라 왕자인 담당국사가 꽂아놓았다고 전해진다. 담당국사는 금나라 왕자 신분으로 보조국사의 제자가 되었다.

자신의 어머니인 장종(章宗) 왕비의 불치병을 치료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보조국사를 스승으로 삼고 그를 따라 고려로 들어왔다. 그 때 짚고 온 지팡이를 보조국사가 꽂아둔 지팡이 곁에 나란히 꽂아둔 것이 자란 것이라고 전해진다.

나무의 모습에서 한 나무가 다른 나무에 절을 하고 있는 듯하여 예의바른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한다.

한 사람이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상관없이 움직이며 나무에 손을 대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 나무의 높이는 12.5m이고 수령은 800년이며 천연기념물 제 88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타락한 고려불교를 바로잡기 위하여 정혜결사(定慧結社)를 결의한 스님이다. ‘참선만이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다’는 선종과 ‘배움이 우선이다’는 교종의 갈등에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명언으로 결론을 낸다.

스님은 정혜결사를 위한 넓은 도량으로 송광사를 세우고 훌륭한 제자를 양성한다. 스님은 입적할 때도 큰 스님다운 면모를 보인다. 떠난다고 예고한 날 제자들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한 후 법상에 앉아 조용히 열반에 들었다.

이후 송광사는 조계종의 중심도량으로 자리 잡아 16명의 국사를 배출했다.

산 중턱의 가파른 암자에 자리한 노거수, 두 그루 곱향나무는 그 신비하고도 꿋꿋하며 웅장한 자태에서 약하게만 살아가는 현대의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크다.

[2016년 3, 4월호 대동문화 93호]

이동호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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