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은 문화가 생산되고 형성되는 지역에 사회문화적 변화를 초래하여 도시의 창조적 환경 조성에 기여한다.

최근 도시 및 지역 개발 분야에서 전통적 생산요소 대신 지식, 창조성, 사회적 특성들을 강조하는 새로운 도시 성장 모델들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간적 측면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이 더욱 증가되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가 ‘문화 융성’의 시대를 표방하면서 국정 과제의 하나로 ‘지역 특성에 맞는 문화도시 문화 마을 조성 및 지역 문화 격차 해소’를 제시하고 있는 등 정치권에서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문화예술이 특정 도시나 지역 차원에서 성장하고 발현되는 현상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 시대에서부터 16세기 런던, 18세기와 19세기 비엔나 그리고 20세기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뉴욕, 런던, 파리와 같은 상위 계층의 세계 문화 도시뿐 아니라 스페인의 빌바오, 영국의 리버풀, 프랑스의 랑스, 독일의 에센과 같은 서구의 지방 중소도시로 확산되면서 컬쳐 노믹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런던의 소호, 뉴욕의 이스트 사이드, 플로렌스, 더블린 템블바, 북경 따산즈, 송주앙, 일본의 나오시마는 문화예술 분야 중에서도 시각예술을 중심으로 지역의 변화가 일어난 대표적 지역이다.

예술이 도시 발전의 핵폭탄이 되다

이들 사례에서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예술이 생산되는 창작 공간이 갖는 가치이다.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와 그들의 생산 공간인 창작 공간은 생산을 통한 직접적 경제 효과뿐 아니라 지역의 문화 소비 및 문화 감수성 증진으로 이어져 주민이 삶의 질 향상과 창조력 습득의 기반 조성 등 다양한 외부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미 홍대 앞, 북촌, 가로수길, 헤이리 등 창작공간을 기반으로 독특한 장소성을 형성한 지역들이 있지만 자발적으로 예술가들이 이동하여 지속적으로 집적하고 있는 대표적 지역이 양평이다.

1999년 한국미술협회 자료에 의하면 전국의 시각예술인은 12,948명이며 이중 53.3%인 6,903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시각예술인 거주지는 1999년에는 강남3구, 성남시, 종로구, 고양시, 파주 등에 집적되어 있었지만, 2011년에는 강남3구-용인시-화성시-평택시, 종로구-서울 서북권-고양시-파주시, 강동구-남양주시-광주시-양평군을 연결하는 3개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 도심과 더불어 교외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픈스튜디오 네트워크와 경기 도립 미술관의 자료를 바탕으로 시각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에 대한 입지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유사한 공간적 분포를 보이고 있어 예술가의 거주지와 창작 공간은 선호하는 지역이 비슷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각 예술이 유통되는 화랑은 서울의 강북과 강남 두 지역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는 시각예술 산업 내에서도 창작 기능과 유통 기능이 입지적 차이를 갖기 때문이다.

상업화랑은 도시의 역사성과 시대적 특성, 아트 비즈니스의 특성으로 상업적 논리에 의해 입지가 결정되지만 예술가들은 예술 작품 생산에 있어 입지 조건 무제약성(footloose)의 특성을 보이며 창작 공간에 요구되는 물리적 특성도 함께 고려되어 화랑의 입지 특성과는 다른 요소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수입이 일정치 않고 소득 수준이 낮아 도심의 임대료를 지급할 여력이 없는 경제적 한계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외곽 지역에서 도심으로 접근성이 향상되어 도심 근처로 이동하는 교외화 현상이 빠르게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예술가의 생애 주기와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예술가들의 교외 이동을 추인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연환경이다. 예술가들이 단지 접근성이나 경제적 여건만 고려하여 교외 지역에 임의로 흩어져 입지하는 것은 아니라 자연환경이 양호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적되는 경향이 있다.

자연환경은 예술가들에게 작품의 주제 자체를 자연으로 변화시킬 만큼 작품 세계에 직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생애 주기 변화와 더불어 더욱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 양평의 작가와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러한 변화들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양평에 들어오면서 작품에 확연히 자연이 들어왔어요. 시각예술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보고 느낀 것이 작품에 완전히 배제될 수 없지요. 양평에 와서 1년 동안 자연의 변화로 흥분상태를 겪었고 그 이후 자연의 경이로움이 내 작품 속에서 선의 생명력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금동원 작가 인터뷰 중에서)

양평은 창작 공간으로서의 적합한 입지와 작가들에게 자연이 주는 영감 때문에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창작 공간 집적지로 선호되고 있다. 2010년 양평 환경 미술제 자료를 기준으로 보면 양평군에 창작 공간 및 거주 공간을 갖고 있는 시각예술인의 규모는 267명으로 조사되었지만 다수의 작가들과 심층인터뷰를 통해 추가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시각예술분야만 약 400명 이상, 미술분야 외에도 사진,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약 1,000여명이 넘는 예술인들이 있다.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예술인들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인데 양평이 갖는 특징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예술 도시가 아니라 예술가들이 원하는 창작 공간의 입지적 조건이 부합되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예술가들이 모이고 그들의 창작 공간이 많아지면서 양평군에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들자 바탕골 예술관, 갤러리 아지오, 용문 갤러리, 드라이브 인 양평 극장, 양평 군립미술관 등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많이 생겨났다.

군단위로는 처음으로 2011년에 양평 미술관이 개관한 양평 군립 미술관은 관람객이 2011년 20만 명에서 2012년에는 36만 명으로 80% 가량 늘었고 2008년 개통한 수도권 광역 전철과 연계되어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양평 아트 로드-예술이 삶이 되는 곳

양평군에서도 특히 강상면 아트빌리지∼강하면 바탕골 예술관 국지도 88호선 10여km 구간에는 갤러리 와(瓦), 닥터박 갤러리, 마나스 아트센터 등 미술관이 여러 곳 있어 ‘아트 로드’로 불리는데 양평군은 남한강 아트로드와 양평대교 건너 양근천 일대를 연계해 양평 문화의 거리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양평군이 자연 환경이 양호하고 문화예술인의 거주가 많아지면서 경제적 측면에도 영향을 가져왔다. 양평군 내에서도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지역인 서종면의 경우 인구증가 및 부동산 거래가 타 지역에 비해 활발하다.

양평군 전체 인구가 최근 11년 동안 연평균 1.8%씩 증가했는데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 있는 서종면은 인구가 4.3%씩 증가하여 2000년 4,720명에서 2011년 7,449명으로 약 58%나 증가했다.

언론보도 자료와 공인중개사와 인터뷰 결과 문화예술인의 집적과 문화 기반 시설의 증가가 실질적인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지고 폐교 위기까지 갔던 용문면 조현초등학교는 자연 친화적인 창의 교육을 앞세워 5년 새 학생 수가 2.5배로 느는 등 교육 여건 변화까지 나타나고 있어 외부로부터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변화는 지방정부를 움직이게 하여 지방자치제 출범 이후 지역 여건을 감안하여 지역 개발의 방향을 생태문화 도시 육성으로 전환하고 문화를 활용한 지역 개발을 도모하고 있다. 양평군은 문화예술 인력을 지역의 중요 인적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규제가 많은 지역 현황을 감안할 때 문화예술을 통한 관광객 유입을 지역 개발의 주요 목표 중 하나로 설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각예술 창작인력 등 지역 내 작가들과 지속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고 작가들의 전시회 지원, 작품 매입, 해외 사례 방문, 공공미술 프로젝트 진행 등 문화예술인력에 대한 활동 지원과 문화 인프라 구축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문화예술인과 그들의 창작 공간 집적이 지역사회에 주는 더 의미 있는 변화는 문화 역량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지역 사회에 시각예술인과 창작 공간이 증가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정착되면서 지역 사회에 문화 역량이 강화되고 있다.

다수의 작가들이 분포하고 있는 서종면의 경우 90년대부터 정착하기 시작한 작가들의 모임에서 출발한 ‘서종 사람들’이 현재는 지역 문화 모임으로 발전하여 면사무소 별관을 고쳐 만든 문화센터를 통해 매월 정기적으로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 음악회는 12년째 이어져 현재 100회 넘게 진행되고 있는데 매회 100~500명까지 공연장을 찾으며 모스크바 소년소녀 합창단 공연이 열리는 수준으로 성장하여 후원회가 조성되고 일부 비용을 양평군에서도 지원하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문화도시가 죽는다

최근에는 기존 주민들과 새로 이주한 예술인들이 함께 지역의 마을 경관 디자인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서종 마을(경관) 디자인’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서종 마을 경관 디자인 운동의 추진 주체는 ‘서종마을 디자인 운동본부’로 서종면 주민자치위원회가 3년 전부터 시작하여 2012년 11월 군에서 추진하고 있는 마을 만들기 사업과 연계하게 되었다.

이처럼 양평군은 시각예술인과 그들의 창작 공간이 집적됨으로써 경제적, 사회·문화적 효과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나 아직은 예술가의 대한 지원이나 예술 도시로서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은 미흡하다.

양평군이나 광주시의 양동 발산마을과 같이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입지를 갖춘 지역들이 미국의 산타페나 중국의 송주앙처럼 창작공간에 기반한 예술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 및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특히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 지원이 필수적이다.

산타페는 인구 7만 명의 작은 도시지만 6,500명이 넘는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으며, 150개의 화랑과 8개의 박물관이 있는 도시로 예술 판매금액은 연간 약 2억 달러로 추산되는 뉴욕 다음으로 큰 예술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예술이다.

이를 위해 산타페 시는 경제 발전에 있어 예술과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창의 산업을 경제 발전의 최우선 동력으로 간주하고 예술과 문화 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송주앙도 예술가 2000명의 창작 공간이 집적된 중국 최대 예술가 집단촌으로 베이징 정부가 도시 개발 정책의 범주 안에서 기존의 농업 관련 시설을 개조하거나 농토를 빌려 창작실을 건설하여 예술가들에게 임대하여 조성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문화 산업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OSMU(One Source Multi Use1)이다. 이는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 판매하여 부가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마케팅 방식을 의미한다. 바로 콘텐츠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예술인과 그들의 창작 공간은 예술의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문화예술 도시를 만드는 첫걸음은 풍부한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예술가와 그들의 공간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김미옥 서울대학교 환경계획연구소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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