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합수 지점으로 산과 물이 어우러진 고장이다. 북한강은 금강산에서 발원하여 철원의 금성천, 춘천의 소양강, 가평의 홍천강을 지나서 양평 양수리에 이른다.

한편 남한강은 강원도 삼척의 대덕산(大德山)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영월의 동강과 평창에서 흘러온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후 충북 단양 팔경과 충주호를 지나 경기도 양평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류한다. 여주 땅을 휘감아 적시고 양평 땅 두물머리에서 북한강을 만나 큰 가람,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서해 바다로 들어간다.

아름다운 서정시와 웅장한 서사시를 쓰는 고장

물의 고장으로 불리는 남한강 물줄기 양평 땅은 용문산을 위시하여 수많은 강과 명산들이 병풍처럼 휘돌아 천하절경을 이루면서 예부터 유람객들과 시인묵객들의 발길을 붙들어왔다. 그 물줄기에는 아름다운 풍경의 서정시와 웅장한 역사의 서사시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산수는 인물을 낳는 법. 신석정의 시 「산수도(山水圖)」에도 ‘푸른 산 푸른 산이 천년만 가리/강물이 흘러흘러 만년만 가리…’라는 시 구절을 남겼다.

1895년 양근현과 지평현에서 한자씩 따서 양평이 된 이 고을에는 역사적인 인물과 전통문화 자원이 수없이 많다. 양평의 진산 용문산에는 천년 고찰 용문사와 한국 땅에서 가장 오래된 명품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산은 고려 때는 미지산(彌智山)이라 했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왕위에 오른 후 용이 드나드는 산이라는 뜻으로 용문산(龍門山)이라고 했다. 용문사 볼거리는 은행나무로 그 자태가 사천왕처럼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천왕목(天王木)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생명의 숭고함과 경외감을 갖게 한다.

조선 세종 때는 당상직첩(堂上職牒) 벼슬을 하사 받은 용문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나이는 대략 1,100살 정도로 추정되고 둘레 14미터, 높이는 62미터에 이른다. 최고령 나무답게 이야기도 많다.

신라의 원효대사가 용문사를 창건하면서 심었다는 설, 의상대사의 지팡이를 꼽아놓은 것이 자랐다는 설,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풀길 없어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세속을 잊고자 지팡이마저 버린 것이 자랐다는 설을 비롯해 전설과 영험담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양평에는 조선의 명재상 이준경과 한음 이덕형, 조선의 올곧은 선비 화서 이항로 등의 유적이 있으며 항일 의병의 땅이기도 하다. 양평군 양서면에는 이덕형의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이덕형은 절친 오성 이항복과 일화가 많아 ‘오성과 한음’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과 유성룡 다음으로 활약한 인물로 삼리(三李)를 꼽는데, 오리정승 이원익, 오성 대감 이항복, 한음 이덕형을 말한다. 광해군 때 영의정에 올랐고 남인과 북인의 중간노선을 걸으면서 화합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고려 말의 고승 보우국사는 공민왕 때 국사가 되어 선· 교 일체론을 주장했고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한 인물로 양평 옥천면에서 태어나 용문산 상원암에서 고행했다.

의병과 의로운 투혼이 서린 역사의 땅 양평

양평군 서종면 노문리에 태어난 화서 이항로는 조선의 마지막 유학자로 성리학에 달통했던 선비였다. 꼬장꼬장한 성미는 불의와 타협을 싫어했고 과거와 출사를 거절한 채 양평으로 내려와 학문 연마와 후진 교육에 매진했고,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생을 살았다. 전남 장성의 노사 기정진, 영남의 이진상과 함께 주리철학(主理哲學)을 재건한 조선 말기의 3대 주리철학자로 불렸다.

위정척사의 중심인물 면암 최익현과 13도 의병대장 유인석, 병인양요 때 강화도에서 프랑스군을 섬멸한 양헌수 등이 면암의 문하생으로 이항로의 강학실은 우국충절의 인물 교육장이었다. 또 해방 전후 한 독립 유공자 몽양 여운형도 양서면 신원리 출신이다.

양평은 이렇게 한말 대표적인 의병의 땅이자 한국 전쟁의 넋이 서린 숭고한 의향이기도 하다. 19세기 후반 한국 사회는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기이자 사회 변동기였다. 한말 위정척사 운동과 일본 침탈에 거센 저항을 보여준 인물들이 양평에서 적지 않게 배출된 것은 이항로의 영향이었다.

특히 양평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지리적 여건으로 중앙의 소식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의병의 봉기는 양평 지역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1894년 안승우가 지평면에서 모병 활동을 전개한 것이 양평 지역 을미의병의 효시로 개항 이후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 운동 중 최초의 기록이다. 양평 지역의 화서학파 유림들은 1895년 10월의 을미사변과 11월의 단발령 공포에 대한 반발로, 1896년 초에는 안승우와 이춘영이 지평에서 거병을 결의하여, 이필희를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지평의진(紙平義陳)을 결성했고, 1896년 1월 충북 제천에 입성하여 28일에는 유인석을 총대장으로 추대하고 제천의진(提川義陳)을 결성, 4월까지 그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을 계기로 의병이 다시 일어나서 1907년 초까지 의병 항쟁이 계속되었다.

당시 우리나라에 와서 의병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국인 맥켄지(F.A.Mckenzie)가 양평 지방에서 만난 의병장에게 보초를 왜 세우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의병장은 “보초를 세울 필요가 없다. 모든 한국인들이 다 우리의 보초이다.”고 했을 만큼 모든 주민이 의병에 직간접으로 동참해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한말 의병 정신 한국전쟁 지평리 전투까지 이어져

양평 지평면 지평리는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몇 해 전 남도 여행을 온 김성수 변호사로부터 책 한권을 선물 받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을 지킨 자유의 전사–나의 아버지 몽클라르 장군->이란 책으로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이하 지평사모)’이란 단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지평리 전투와 프랑스의 몽클라르 장군을 소개하기 위해 펴냈다고 한다.

원본은 장군의 외동딸 파비안 몽클라르가 불어로 <MONCLAR>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지만 장군의 전기(傳記)는 프랑스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지평사모’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간 벌어진 지평리 전투를 기리는 모임이다.

지평리 전투는 유엔군이 중공군에 첫 승리를 거둔 전투로 당시 몽클라르 장군과 프랑스 대대 5백 명, 미국 23연대 5천5백 명이 중공군 3만 여명을 맞아 대승을 거둔 현장이다. 아군 52명, 중공군 5천 명이 전사했고 이 전투를 계기로 유엔군이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 몽클라르 장군은 1·2차 대전에 참전한 중장 계급의 백전노장이었다.

프랑스군 500명은 대대급으로 중령이 지휘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장군은 스스로 계급을 강등하여 중령으로 한국전에 참전 지휘했는데, “자유를 위해 피 흘리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며 자원했다고 한다. 3성 장군인 중장 대신 중령으로 자원 강등하여 한국전에 참전한 자유를 사랑하는 참 군인 몽클라르. 그를 생각하면 최고 지도자의 덕목, 곧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양평은 한말 대표적인 의병의 땅으로 투철한 정신이 한국전쟁에 까지 면면히 이어졌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예술촌 형성, 인구 관광객 유치 핵심 비결

특집을 기획하면서 취재진과 함께 1박 2일 동안 양평을 답사하고 많은 작가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고 답사를 하면서 왜 오늘날 양평인가를 알 것 같았다. 양평군은 경기도에서 땅 덩어리가 가장 넓은 곳이지만 산지가 대부분 차지한 탓에 사는 사람이 그리 많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예술인들이 하나둘씩 몰려들면서 요즘에는 갈수록 인구가 증가 추세에 있다. 요즘은 땅 가격도 많이 오르고 북적대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교통지옥을 맛보고 있는 서울 근교의 명소로 바뀌었다.

이렇게 남한강 줄기 따라 양평 일대에 예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한국 예술촌을 이루고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서울서 한 시간 내 근거리로 저렴한 땅값, 한적한 시골의 아름다운 산수 등이 예술인들의 구미를 당겼을 것이다. 또 한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이 한국의 혼이 담긴 작품 생산지로 매우 적합한 것도 한 몫한 것으로 생각된다.

문화중심 도시 광주, 예향 남도에서도 양평의 사례를 모델 삼아 담양, 화순, 나주 장성 등 광주 주변에 문화 예술촌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웅덩이를 파두면 개구리가 뛰어 들어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남도는 경기 강원도 못지않게 한적하고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또한 섬과 해안이 어우러져 있고 먹거리가 풍부해 예술인들을 흡인하기에는 최적의 요소를 갖고 있다.

인구 집중의 서울에 비해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예술 작업하기에는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하다. 양평 지역처럼 자연적으로 형성을 기대하기는 보다는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에서 적극적인 투자 유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예향 남도의 색깔에 걸맞고 입구 유입과 관광객 증가에도 큰 효과를 낼 것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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