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4월이 다가온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2년 동안 그랬듯이 작품을 고르고 연습 일정을 잡고 새로 나올 연극 대본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맞이해야 할 시기이다.

매년 2회 이상 연극 공연을 올린다는 게 여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년 정도의 한국 생활이 있었다. 그 동안 우리들 눈에 비춰진 한국 사회는 쏜살같이 변화되어갔다. 그런 속도와 달리 우린 정체되듯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쳐져서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고립되어 있기 일쑤였다.

그러기에 다시금 가정이라는 울타리 바깥세상으로 나온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시작하였다. 시부모, 남편, 아이들의 눈치와 혹 “니들이 그런 걸 해!” 하는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을 애써 피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8명의 필리핀 이주 여성으로 구성된 극단 ‘가람’. 가람은 지난 2012년 12월 8일 전남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 ‘바하이 쿠보’를 선보였다. ‘바하이 쿠보(bahay-kubo, 대나무로 만들어진 원두막)’라는 첫 공연을 한 후 단원들은 분장도 아직 지우지 못한 채 눈물바람으로 가족들을 찾아다니느라 객석을 뛰어다녔다.

50분이 넘는 공연을 무사히 마친 성취감도 있었지만 6개월 동안 연습 과정에서 한국어 대사가 준 스트레스, 단원들 간의 잦은 갈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장애들이 있었다. 이 장애로부터 이젠 벗어날 수 있게 된 기쁨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단원들은 한국어 대사에 대한 부담을 간직하고 있다. 연출 선생님과 연기 강사 선생님들이 직접 대사를 녹음하여 단원들에게 들려주고 대사를 외우는 연습을 반복했다.

연습을 반복한 다음 대사가 어떤 내용인지 알려주느라 또 시간이 들어가게 된다. 한국 사람들이 1~2개월이면 모두 준비하는 연극 작품을 우리는 4~5개월에 걸쳐 완성한다. 예전에 지역 사회 단체에서 교육 연극이라고 해서 즉흥적으로 만든 짧은 연극을 연기해본 경험이 있던 터라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연극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일반 전업 극단과 또 같은 형태로 운영하다보니, 매번 공연 일정이 나오면 풀어져 있던 마음부터 다잡곤 한다.

2013년 7월 워크숍 공연, 12월 정기공연 등 우리 단원들은 그동안 숨이 가쁘게 뛰어왔다. 특히 12월 정기공연은 태풍 피해로 고국의 가족을 걱정하는 필리핀 며느리 친정집 돕기 공연으로 열려서, 성금 일백만원을 모금해 전달하기도 했다. 뜻 깊은 자리였다.

새로운 도전 그리고 당당한 연극인으로 서기 위해

2014년은 우리 극단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한 해이다. 해남군과 전남문화예술재단 지원 속에 전문예술단체 등록을 준비 중이고 그동안 해남연극협회(지부장 고유경)에서 일괄 관리 운영해주던 시스템에서 자생력을 키우고 극단으로 형태를 갖추기 위해 자체 운영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단원들이 분주하다. 공연에 필요한 전문적인 인프라나 전체 윤곽은 해남연극협회가 지원하게 된다. 그리고 작품 선정부터 연습 일정 그리고 공연 홍보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이젠 같이 공유하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 이제 진짜 스스로 작품을 창조하고 극단의 운영도 우리들끼리 해나가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극단 가람 단원들은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을 매개체로 지역민들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고 무대 위에서는 당당한 주인공이 되어가고 있다. 단원들의 사회 활동을 반대하던 가족들이 이젠 가장 열성적인 팬들이 되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일과 연극 연습을 병행하는 단원들을 응원하고 최고의 팬이 되어준 가족들의 사랑은 단원들은 가장 큰 보람이 되었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역 내 우리 극단의 활동 영역 또한 다양해지리라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우린 연극배우다. 잘하든 못하든, 프로든 아마추어든 그리고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우린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연극배우다. 1시간여 무대 주인공이 되기 위해 무대 밖에서 400시간을 연습하는 직장인, 전업주부 아줌마 배우이다. 무대에서 생활 터전에서 당당히 주인공으로 살아가려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도 무대에서도 이제 주인공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차채웅(가람극단 감독)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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