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광주에 그럴듯한 전문 음악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공공의 영역에 몸담아 ‘광주청소년음악페스티벌’,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를 만든 적이 있다.

과거형으로 얘기하는 것은 하나는 그 존재 자체가 없어졌기 때문이고, 최근에 몸담았던 일에서 벗어나 자유스런 신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화 백수가 되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요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워낙 이런 생활에 이골이 난지라 두려운 것은 별로 없지만 가족에겐 정말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한다고 하면서 음악 분야는 정책적으로, 산업으로서의 육성이 전무하다.”는 말이다. 그게 지역 뮤지션들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볼멘소리를 하는 것임과 동시에 지자체나 정부 추진 기관에 하는 말이기도 하다.

기실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의 기획 취지도 축제를 통해 광주의 음악 예술과 더불어 음악 산업을 육성하고 콘텐츠 마케팅을 통해 지역의 GDP를 제고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프로그램은 현재진행형이지만, 지역의 대중음악 예술가들 입장에선 그만큼 피부로 느낄 만한 구체적인 정책이 없었던 바 이런 볼멘소리는 뮤지션들로부터 충분히 나올 법한 얘길 것이다.

광주는 문화 콘텐츠의 속성을 모른다

음악 축제 몇 개 한다고 음악 산업으로 승화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공적 영역에서 일을 해왔고, 민간의 영역에서도 일해 온 경험에서 느낀 바를 얘기하자면, 아직도 우리 지역에선 문화 콘텐츠의 속성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건방진 얘기일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실은 내 말보다 더 비루하다.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출몰하는 요즘, 기획은 넘쳐나는데 콘텐츠라는 이름에 걸맞은 프로그램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다. 실제적인 마케팅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획을 할 때부터 콘텐츠로서의 프레임을 그리지 못하거니와, 대부분 공공재가 만들어주는 소극적인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기획자들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발현되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또한 정책과 행정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문화예술 현장과의 사고의 괴리가 너무 크다는 것도, 그리고 그 간극을 좁혀 연결시켜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는 것도 더욱 슬픈 일이다. 더군다나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으니 지속가능성도 확보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음악 산업 정책이랄 만한 것도, 의지도 거의 없었으니 이런 자아비판도 분에 넘칠지 모르겠다. 광주광역시가 5대 문화 콘텐츠 육성 정책을 표방한 지 벌써 10년이 다 돼 가는데 전문 음악창작센터 하나 제대로 없으니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정부는 광주를 문화 콘텐츠 집중 육성 도시로 선정했다.

도시 공공장소에서 사운드를 디자인하자?

오래 전부터 아시아문화전당의 Soundscape(音風景, 도시 공공장소에서의 사운드 디자인)가 제대로 구현돼야 한다고 홀로 주창해왔는데, 이것에 대해 내부적으로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왜 이런 얘기를 꺼내느냐면, 아시아문화전당의 건축학적, 공간적 브랜드로서의 가치는, 보여지는 것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미세하고도 최고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음향, 조명, 사운드 디자인, 건축음향, 관람자들을 배려한 동선, 고객 서비스 등등의 이런 항목들이 방문자에게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바로 이런 것들에 의해 판가름 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다시 살펴보건대 그동안 간과했던 요소들 때문에 치르지 않아도 될 큰 시행착오를 할 수 있을 가능성이 꽤 높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에 대해 신랄하게 얘기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이런 요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음악가다

도시 공공 영역에서의 음풍경이라 해서 그것이 꼭 기술적인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도시 공공 영역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의 음풍경에 가장 걸맞은 음악 중 하나는 가객(歌客) 한보리의 음악, 그의 포엠(Poem, 詩)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어느 잡지에 그의 음악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수많은 그의 음악 속에서 우리의 일상과 욕망 사이에 조화로운 타협을 찾는 천 개의 눈을 발견한다. 그의 음악은 천 개의 눈을 가졌다.”지금 돌이켜보니 아주 적확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이상을 음악과 함께 살아온 가객에 대해 몇 자의 글로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건방진 일인지 잘 알지만, 어쨌거나 그의 음악에 대해 대중에게 얘길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된 지면과 미디어뿐이니 어찌하랴. 그의 음악, 아니 그의 음악과 시(가사)는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을 한 것 말고는 평생 음악만 해온 그의 삶 속에서 솟아난다.

그의 노래엔 유유자적한 인생이, 느리고 고즈넉한 삶의 속도가 투영돼 있다. 해서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른바 힐링(Healing)이 자연스레 된다. 아니 그의 음악을 듣는 행위 그 자체가 휴식이다. “무엇보다 시를 읽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 처음엔 왜 이래? 이거 뭐야? 하면서 반복해서 읽고 또 읽다 보면 나중에는 호흡을 알게 되고 좋아진다. 그때 시인의 리듬, 세계관, 미학이 들어왔을 때, 곡을 쓸 수 있다. 콘서트를 준비하는 동안은 그 시인과 연애를 하는 것이다.”

시인과 음악가와 매일 연애를 하는 청자와…

그의 말처럼 시인과 매일 연애를 하듯이 나 또한 그의 음악과 때때로 연애를 한다. 솔직히 그의 음악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그가 수많은 세월 동안 순수하게 음악 활동만 줄기차게 해왔다고 해서 좋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음악을 알고 나서 소박함이 주는 건강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단순한 것이 가장 매력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그의 음악은 중독성이 강하다.

상상해본다. 그의 음악이, 그의 노래가 얼마 후에 완공될 아시아문화전당의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날을 말이다. 굳이 광주의 음악 산업 정책 운운하지 않아도 좋다. 광주는, 광주 사람들은 가객 한보리가 살고 있는 것이, 그가 음악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눈물겨운 것인지 감사하고 알아야만 할 것이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장용석 문화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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