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절망의산,
대가리를밀어버
린, 민둥산, 벌거숭이산
분노의산, 사랑의산, 침묵의
산, 함성의산, 증인의산, 죽음의산
부활의산, 영생하는산, 생의산, 회생의
산, 숨가쁜산, 치밀어 오르는산, 갈망하는
산, 꿈꾸는산, 꿈의산, 그러나 현실의산, 피의산,
피투성이산, 종교적이난, 아아너무나너무나 폭발적인
산, 힘든산, 힘센산, 일어나는산, 눈뜬산, 눈뜨는산, 새벽
의산, 희망의산, 모두모두절정을이루는평등의산, 평등한산, 대
지의산, 우리를감싸주는, 격하게, 넉넉하게, 우리를감싸주는어머니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1987)-

역사 공간 무등산과 무등을 통해 바라보는 밝은 미래

시의 형태가 독특하다. 문장을 삼각형으로 배열해 독특한 시각적 효과를 줬다. 그러나 삼각형의 독특한 형태는 형태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제목 ‘무등’과 첫 행의 ‘山’이라는 시어를 통해 의미를 파생시킨다. 단순히 산의 아름다움이나 그것의 철학적 의미로서의 무등산이 아니다. 현대사 속에서 쟁점이 되었던 역사적 공간으로서의 무등산을 이야기한다. 시는 우리의 현재적 삶과 관련된 역사적 공간으로서 무등산의 다양한 의미를 특이한 행의 배열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행의 점층적 확장과 함께 무등산의 이미지가 앞부분에서는 역사적 질곡으로 인한 절망적인 내용(절망의 산, 민둥산, 벌거숭이 산, 분노의 산)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가면서 산은 변한다. 민중의 역사적 힘과 희망에 가득 찬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내용(폭발적인 산, 힘센 산, 일어나는 산, 눈 뜨는 산, 희망의 산, 평등의 산)으로 발전한다. 이 시는 상투화된 서정시의 오랜 경직성에 대해 혁명적인 도전을 감행했던 황지우의 실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이다.

그래서일까? 아직까지도 그가 바라는 광주에 대한 갈망은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끝이 없다.

유년의 광주, “사물들의 진열장”

황지우에게 광주는 공간의 의미가 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광주는 그의 유년을 품은 땅이었고, 생각의 거처로 작용한 도시였다. 그가 태어난 곳은 해남이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다. 네 살 때 광주로 이사를 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농 1세대다. 가난한 살림 탓에 곧바로 시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주 변두리를 돌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황지우는 아직 유년의 광주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산수동에 상당히 오래 살았는데, 풍향동이나 지산동 등 외곽으로만 이사를 몇 십 번쯤 다녔다. 돌이켜 보면 나의 원초적 감성이나 지향, 경향 같은 것들이 광주에서 형성됐다. 중앙국민학교를 다녔는데 먼 통학 거리를 걸어서 오갔다. 계림극장은 내게 박물관이었고, 미술관이었다. 2주마다 영화가 바뀔 때마다 간판을 넋을 놓고 쳐다봤다. 작은 철공소의 쇠 깎는 소리가 좋아서 주저앉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점점 달라지는 근대 광주의 변화가 황지우에겐 사물들의 진열장이었다. 광주는 그에게 내면화됐고, 황지우의 생각을 이루는 모든 바탕은 그때 형성됐다.

“광주에서 살았던 과정들이 나를 만들었다. 내가 예술작품을 평가하거나 남의 생각을 읽거나 바라보거나 판단할 때 근간은 이루는 바탕은 전부 그때 다 형성된 거다. 광주의 근대 진열장이 나의 모든 교양을 완성시켰다.”

그는 오늘도 광주 혹은 오월을 담고 있다

황지우, 그는 개인이 아니었다. 폭압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언어로 일으켜 세운 시대의 코드였다. 그는 지금 문화전당 민주평화교류원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전당이 생기는 원인이 오월이다. 전당의 5개원(민주평화교류원·예술극장·창조원·아시아문화정보원·어린이 문화원)이 공간의 배치부터 콘텐츠의 발상까지 오월로부터 풀어가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그려낸 민주평화교류원은 어떤 모습일까? 전시 콘텐츠는 폭력을 극복한 ‘초극의 인간’, ‘계급과 계층’, ‘주먹밥과 피의 나눔’ 등이 문화로 승화돼 세계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특히 오월 가치를 보편적 가치로 승화하기 위해 방문객과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하는 감성의 울림터, 문화예술로 승화되는 방식을 강조했다. 문화를 통해 80년 오월 광주를 감정의 울림판으로 구성한 것이다.

특히 80년 오월 당시 10일 동안의 대표적 사건들을 서늘하게 배열했다. 17일 계엄령, 18일 민주화 횃불 성회·전남대 시위, 19일 잔혹 진압·시민 봉기, 20일 차량 시위, 21일 집단 발포·공수부대 퇴각, 22일 해방 광주, 26일 죽음의 광주, 27일 최후의 도청·계엄군 진압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황지우는 말한다. “일단은 서사에 초점을 뒀다. 총기 조준선 위에서 태극기를 들고 차량 시위를 하는 사람, 시위대에게 바가지로 물 떠다 주는 아주머니, 여성과 아이를 도청에서 나가게 한 뒤 항쟁 마지막 날 새벽까지 도청을 지킨 사람 등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도처에 있다. 인권관(도청 본관)의 ‘마지막 가두 방송’은 서사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다만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게 전시의 원칙이다. 사실적인 재현은 오히려 콘텐츠를 제한시킨다는 것이 황지우의 생각이다. 은유와 상징의 기법을 통해 그 공간에서 방문자가 몰입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도록 했다. 황지우답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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