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 먹먹한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나고 화가 치민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던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라고 영국의 시인 토머스 엘리어트는 ‘황무지’(The Waste Land)라는 시에 쓰고 있다.

이 시의 ‘황무지’는 정신적 메마름,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그리고 재생(再生)이 거부된 죽음을 뜻한다. 시인은 이 시에서 전후(戰後) 서구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하고 있다.

2014년 4월. 한국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되고 말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있을 수 없는 비극이 한국 땅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좌불안석 먹먹할 뿐 일손은 잡히지 않고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다. 온 나라가 충격과 분노로 망연자실해서 할 말을 잃는 등 집단 우울증과 심리적 병을 앓고 있다.

요즘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시냐?”고 인사를 여쭙기도, 한 줄의 글을 쓰는 것도 조심스럽고 민망스럽다. IT 강국이라는 한국 사회의 무능에 한없는 자괴감을 느낀다. 눈물과 분노로 심장이 멎는 것만 같다. 한국 역사의 수레바퀴는 퇴행적으로 구르는 것일까.

금년 초 교수신문도 올해의 사자성어 1위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도행역시(倒行逆施)’를 뽑았었다. 지난해 연말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열풍이 한국 사회를 강타했다. 다시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지금 과연 한국은 21세기 선진문명의 나라입니까?’ 하고 묻고 싶다.

선진국이란 경제 제일주의가 아닌 문화적 수준이 높은 나라를 일컫는다. 문화적 수준은 국민들의 국민성이 필수 이다. 개인의 이기(利己)보다는 공적인 이타(利他)를 곧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대의적 자세,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성숙된 삶의 국민성이 선진국의 척도이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내 자식 같은 어린 새싹들의 피를 토하는 절규를 뿌리치고 자신들만 탈출한 선원들,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그들이 제일 먼저 탈출한 것은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파렴치한 만행에 경악하고 분노했다.

3백여 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선실 유리창을 두드리면서 살려달라고 사투를 벌이던 그 순간을 속수무책 지켜만 본 채 죽음으로 몰아간 우리의 현실이 진정 21세기 선진 문명의 현실인 것인지 황망하기만 하다. 생명의 줄을 기다리던 그들의 절규, 한 맺힌 원혼을 살아 있는 이 땅의 부모들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리디어린 못다 핀 꽃 한 송이, 이 땅은 한 송이 꽃도 피우지 못할 통한의 땅이란 말인가.

그대들을 지켜 주지 못한 채 이 땅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속죄하면서 또 다른 아픔이 재발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심정이다. 그들의 외침이 귓전을 울릴 때마다 괴로움으로 몸부림이 쳐진다. 아직도 차가운 칠흑 같은 심해(深海)를 헤매면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과 그 유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바람꽃이 되어 훨훨 좋은 세상으로 가소서

행복해야할 가정의 달 5월은 참으로 우울한 달이다. 부모와 스승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줄 자녀도 학생도 없는 그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우울하기만 하다.

때문에 4월을 ‘잔인한 달’ 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요, 산 자의 몸부림일 것이다. 동요 중에 ‘플라타너스의 잎사귀은 작은 손바닥’이라고 하는 노래가 있다. 엘리어트의 시를 읽고 이 노래를 들으면 나뭇잎 하나하나가 생존을 향한 처절한 절규인 양 느껴진다. 5월은 맞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맹자>에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는 말이 있다. 홀아비(鰥)와 과부(寡婦), 고아(孤兒), 늙어서 자식 없는 사람(獨)을 일컫는 말이다. 또 신(神)이 단어를 만들 때 아내를 잃은 남편은 홀아비라 했고, 남편이 죽고 홀로 된 부인을 미망인, 부모를 잃은 사람은 고아라 했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에 대한 단어는 만들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신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헤아리기가 괴로운 탓에 적절한 말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처럼 단어를 못 만들 정도로 괴롭고 비통한 일이라면 부모가 살아계실 적에 자식을 잃게 하는 참담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지 마땅하지 않나 싶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모의 사랑보다 더 큰 것은 없는 법. 때문에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지 않는가.

금년 초에 불어 닥친 조류 인플루엔자 공포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루면서 수 만 마리의 닭을 살처분했다. 몇 해 전에는 구제역으로 소를 생매장시키는 소름끼치는 만행을 TV로 지켜본 사람들은 인간들의 생명 경시 풍조 앞에 경악을 했고 언젠가는 큰 죗값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다. 하마처럼 큰 몸집의 소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살처분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온몸이 떨린다.

당시 살처분을 담당했던 한 직원이 그 끔직한 모습을 회고했다. “어미소가 살 처분장으로 끌려갈 때 갓 태어난 새끼소는 애절하게 울부짖으면서 어미를 따라왔다. 죽음을 앞에 둔 어미가 갓 태어난 새끼를 품속에 껴안고 젖꼭지를 물려주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새끼소는 잠시 후 죽어야 할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의 젖을 정신없이 빨아댔다. 결국 어미소와 새끼소 둘은 인간들에게 끌려가 구덩이에 산채로 묻혀 죽임을 당했다.”

사선(死線)에 선 어미와 새끼 모자간의 애처로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짐승을 생매장해야했던 직원들은 그날부터 괴로움에 시달려 밤잠을 설치면서 정신적 치료를 받아야 했다. 어미 소가 뚱 묻은 새끼소를 핥아 주듯 어미와 자식 간의 정을 지독지애(舐犢之愛)라 했던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 주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재 가치는 없다. 어떤 생명이건 하늘이 낸 생명은 귀천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생명이겠는가?

신라 때 고승 혜통은 출가 전 유명한 사냥꾼으로 짐승을 수없이 살생했다. 어느 날 냇가에서 수달을 한 마리 잡아먹고 뼈를 뒤뜰에다 버렸는데, 이튿날 아침 일어나보니 어제 버린 수달의 뼈는 보이지 않고 주위에는 핏자국만 있었다. 혜통이 그 흔적을 따라 풀숲에 이르렀는데 풀숲 둥지 안에는 뼈만 남은 수달이 다섯 마리의 새끼를 꼭 감싸 안고 있었다. 너무도 놀라 넋을 놓고 바라보던 혜통은 집으로 달려와 그 동안 아끼던 활과 화살을 모조리 불태웠으나 찢어지는 듯한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하잖게 여겼던 짐승도 죽어서까지 자기 자식을 잊지 못하는 귀한 생명임을 알고 난 그는 생명을 빼앗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깊이 깨닫고 출가를 하여 참회하고 살았다.

6월이면 생각나는 노래 ‘비목’의 작사자인 한명희 씨가 육군 소위로 비무장지대서 근무할 때다. 한 소위는 어느 날 순찰길에서 궁노루(사향노루) 한 마리를 잡아왔는데, 그날부터 홀로 남은 암놈이 매일 밤 애처롭게 울어대는 통에 며칠 밤을 그 잔인했던 살상의 회한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밤이면 궁노루도 울고, 한소위도 울고, 온 산천이 오열했다.

어미와 자식,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이별은 이처럼 단장(斷腸)의 비감이 서려 있다. 이번 참사는 수많은 국민을 분통터지게 했고 많이도 울렸다.

한국 사회에 대형 사고는 곳곳에 예고되어 있고 반복되는 데도 이유가 있다. 60년대 이후 한국은 오직 경제 산업 건설에 올인했고 그 결과 눈부신 급성장을 한 성장통이 생겼다. 국가의 천년 대계를 생각하지 않는 교육, 기본과 원칙을 무시한 껍데기 나라, 정치인과 리더는 없고 정치꾼만 판치는 보스의 나라, 1%의 돈족들의 만능주의 마피아의 나라, 이러한 꼼수가 통하는 불행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권혁소 시인(강원 고성중학교 교사)가 쓴 ‘껍데기의 나라를 떠나는 너희들에게’라는 애도 글을 읽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못다 핀 영령들이여! 억울한 원혼들이여! 부디 모든 아픔 바람꽃이 되어 훨훨 그대들을 지켜주는 좋은 세상으로 가소서. 이렇게 가슴을 치며 그대들을 위해 명복을 빕니다.

대동문화 82호 [2014 5,6월호]

조상열 발행인  ddmh21@hanmail.net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