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우주다.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려 하늘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는 천지를 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천지를 모르면서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땅을 밝을 시간도, 하늘을 볼 기회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에 포장길을 밟고 집을 나섰다가 자동차와 버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직장에 도착해서 다시 같은 방법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이처럼 현대인들이 천지를 모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낮은 것도 국민 대다수가 하루 종일 천지를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는 우주다

한국인들이 천지를 모르고 사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왜 사는지에 대한 철학이 없다. 철학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돈을 많이 벌거나 큰 집을 갖는 것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목적 없이 수단만 쫓는다. 한국의 교육도 마찬가지로 목적 없이 수단만 강조한다. 한국의 부모와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를 공부의 목적으로 삼을 뿐,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이른바 일류 대학에 입학하면 인생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무는 공부의 대상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행복은 하늘과 땅을 아는 순간부터 체득할 수 있다. 인간이 천지를 안다는 것은 스스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안다는 뜻이다. 자신의 위치를 모르면 어떻게 살아갈지 모르고 방황한다.

매일 천지를 만날 수 없다면, 나무를 만나면 천지를 알 수 있다. 나무가 인간에게 존경받는 이유도 천지를 알기 때문이다. 만약 나무가 한 순간이라도 땅과 하늘의 기운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극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무는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이 세상에 살았던 나무는 풀과 더불어 생산자이다. 그래서 식물은 인간 없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식물을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는 원천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지식인조차도 식물을 죽은 존재로 파악한다.

식물을 죽은 존재로 인식하는 가장 상징적인 단어가 ‘식물인간’이다. 식물을 죽은 존재로 파악하는 이러한 행태는 아직도 신문과 방송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인간이 식물을 생명체로 인식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어둡다.

생명체는 어떤 경우에도 누굴 위해서 존재할 수 없다. 생명체는 그 자체로 존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식물 전공자나 숲해설가조차도 여전히 식물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인근 산에 오르면 아무 이유도 없이 나무와 풀을 훼손하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인간의 이러한 행동은 생명을 얼마나 경시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기까지는 수 천 년 혹은 수 억 년의 세월이 걸린다. 은행나무, 소철, 메타세쿼이아 등 이른바 ‘살아 있는 화석’은 공룡이 살았던 시대부터 존재했다. 인간이 지금 이러한 위대한 나무와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감히 그런 나무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은 오만의 극치이다.

나는 나무를 처음 공부할 때부터 생명체로 인식했다. 그래서 주변에 살고 있는 나무가 몇 그루인지를 세면서 깨달은 내용을 책으로 출판했다. 지금도 나는 학생들에게 나무와 관련한 강좌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무 세기’ 과제를 낸다. 내가 매년 수강생들에게 똑같은 과제를 내는 것은 나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나무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무를 생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식물을 인문학으로 연구하는 출발점이다. 식물을 인문학으로 인식하는 과정은 곧 본초학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본초학으로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식물원이나 수목원조차도 봉건 시대의 본초학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식물을 약용으로 인식하고 있다. 수목원이나 식물원을 찾는 사람들도 식물이 자신의 몸에 얼마나 유익한지에 관심을 갖는 데 급급하고, 숲해설가들조차도 약효를 설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앞으로 인간이 식물을 이시진의 <본초강목>이나 허준의 <동의보감>처럼 본초학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인간과 식물의 건강한 생태 관계는 불가능하다. 인간이 식물을 생명체로 바라볼 때만이 건강한 생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식물과 건강한 생태관계를 유지할 때만이 인류의 미래는 밝다.

나무는 평등이다

인간은 유사 이래 지금까지 평등을 꿈꾸고 있지만, 단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다. 인간이 평등을 꿈꾸는 것은 평등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이 추구한 평등은 대부분 물질의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빈부의 격차가 심하면 상대방의 재산을 빼앗아서 나눠주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방법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상대방의 재산을 빼앗아서 나눠주는 방법은 또 다른 불평등을 낳았기 때문이다.

재산을 중심으로 한 평등사회는 영원히 달성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가치의 평등을 추구한다. 내가 나무를 통해 가치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은 우선 나무의 삶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나무는 암수한그루 혹은 암수딴그루일지라도 서로를 지배하지 않는다. 식물은 서로 보완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특히 내가 나무를 통해 평등을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빈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만날 수 있고, 만나서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10년 이상 나무에 환장하는 이유도 가장 정직하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빈부나 지위와 관계없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아무리 부자라도 특정한 장소에 살고 있는 나무를 만나기 위해서는 직접 찾아가야 하고,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일 년에 두 번 쥐똥나무의 꽃을 볼 수 없다. 이처럼 나무는 인간에게 가치의 평등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나무는 균형이다

나무가 오랫동안 살아가는 원천은 균형이다. 나무는 균형을 위해 목숨 건다. 균형을 잃으면 죽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나무가 가지를 양 쪽으로 뻗는 것도 균형을 위한 것이다. 나무가 조건상 양 쪽으로 균형을 잡지 못하면 뿌리로 균형을 잡는다. 그래서 나는 나무의 전체를 보면서도 뿌리를 본다.

특히 나무의 뿌리는 ‘평형수’ 같은 역할을 한다. 언덕에 살고 있는 나무는 균형을 잡기 위해 낭떠러지와 반대 방향으로 뿌리를 뻗어 균형을 잡고, 뿌리가 땅 밖으로 나왔을 경우 서로 뿌리를 십자 모양으로 만들어 뽑히지 않도록 한다. 나무의 이러한 장치가 이른바 자기 수용성 감각이다. 자기 수용성 감각은 인간의 균형 감각에 해당한다.

모든 생명체는 균형 감각을 잃으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중국의 공자가 최고 경지의 인간형을 중용에 비유한 것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남은 존재 중 가장 오랫동안 살고 있는 존재가 나무인 것도 균형을 잘 잡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높이 120미터까지 올라가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나무도 균형 덕택이다.

나무는 나의 ‘멘토’이다

내가 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는 나의 ‘멘토’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존재’라는 극찬을 받는다. 자신의 삶에 성실한 자만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결코 누군가에게 준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무는 한 순간도 누군가에게 준다는 생각으로 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살아갈 뿐이다. 나무의 삶은 자신을 위한 ‘이기’가 곧 남을 위한 ‘이타’라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10년 이상 나무를 멘토로 삼아 살고 있지만 나무를 멘토로 삼지 않는 그 날을 꿈꾼다. 인간은 자연을 본받고 살아야만 행복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을 본받고 살아가야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멘토로 살아가기 위해서 물푸레나뭇과의 쥐똥나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쥐똥나무는 내가 나무와 일심동체 혹은 물아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 그루의 나무로 살아가길 바란다. 그 날이 곧 평등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강판권/쥐똥나무(생태사학자/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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