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삶이든 같겠지만 전업 작가의 아내로 살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서양화가 우제길(1942년생)의 아내 김차순(우제길 미술관 대표) 씨는 작가의 삶과 작업에 대한 뒷바라지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 고단한 길을 말없이 걸어왔다. 그는 늘 자기 삶을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에 비유한다.

“전업 작가의 작품이 팔리면 이것이 바로 생활비가 되어 다음 작업을 위한 준비가 됩니다. 그런데 젊은 작가 시절에는 작품이 팔리지 않아 생활비에 늘 쪼들려 왔습니다. 가게에서 외상으로 쌀을 사오기도 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작은 오빠에게 돈을 빌려 생활을 꾸렸기도 했었어요. 전업 작가의 안사람으로서 서러움과 어려움을 매섭게 겪어야 했지요.” 김차순 씨의 눈매가 서늘하다. 이런저런 고단했던 옛날 생각이 날 때마다 16년 간 극진히 모셨던 시어머니가 그리워진다.

가족들의 아픔까지 미리 가져가고 싶었다

“16년간 치매에 시달리셨던 시어머니는 2004년 8월에 92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떠나시면서 저 세상에서 또 보자고 숨을 거두시는 시간까지 헤어짐을 아쉬워하셨어요. 저는 날마다 목욕을 직접 해드렸는데, 이제는 해드릴 수 없으니, 그것이 더 마음이 아파요.”

시어머니의 눈빛을 보면 뒷바라지에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평소 시어머니의 머리를 예쁘게 단장해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어머니와의 추억의 담긴 앨범을 가끔 들여다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머니는 늘 그의 곁에서 미소 짓고 있다.

하지만 시어머니와 함께한 시간들은 마냥 순탄하지 못했다. 시어머니를 봉양하던 때 그는 자궁암, 유방암 그리고 위암까지 큰 수술을 여러 번 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 했다. 삶에 대한 희망의 몸부림을 계속하면서도, 남편 몰래 자신의 영정 사진까지 마련했던 적도 있었다. 가족들의 아픔까지 미리 가져가고 싶었던 거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못하는 일이기도 한다.

눈물겨운 사연들이 쌓여 세워진 우제길 미술관

김차순 대표는 늘 새로운 생각을 품고 남보다 앞서가며 행동으로 실천한다. 매일 신문보기를 즐겨하고 유명 인사들의 자서전을 읽는다. 일을 시작하면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일에 몰입한다. 독서를 할 때에도 책에 집중하면 날을 새기가 일쑤다.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살아가고 있는 아내에게 우제길 작가는 “늘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아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제길 미술관을 건립할 때 승효상(2011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의 건축에 매료되어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미술관 설계를 맡기기 위해 수없이 대학로의 ‘이로재’를 찾아가 간청을 했습니다.” 우 작가는 그런 아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김차순 대표는 광주에 건축다운 건물을 짓기 위해 몸부림쳤다. 감히 남들이 생각을 가져볼 수 없는, 그래서 우제길의 작품을 건축으로 승화시킨 박물관을 건립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설계가 끝나고 공사는 직영 체제로 운영됐다. 시공자와 인부들을 직접 상대해서 뼈대를 올렸다. 건축의 현장은 실로 전쟁터 같은 아수라장의 무대였다. 김차순 대표는 우제길 미술관의 총체적 기획과 공사를 직접 지휘했다. 피와 눈물겨운 사연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광주의 대표적인 미술관이 건립될 수 있었다.

우제길 미술관을 ‘시민들이 마음껏 찾아와 미술을 즐기는 미술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비엔날레’와 함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열망이 담긴 미술관이 세워졌다. 아름다운 의재로를 만들기 위한 꿈과 계획의 산실이 태어났다.

우제길의 아내, 그리고 김차순의 남편

서양화가 우제길 씨는 그런 아내 김차순을 자랑한다. “여기 미술관의 재건축 및 신축은 처음부터 아내의 기획으로 이루어졌어요. 이로재 대표 승효상 씨가 설계하고 공사는 아내가 거의 직접 맡아서 한 셈이죠. 창문 하나를 잘 만들어내기 위하여 50여 번이 넘는 전화를 했다. 그 결과 제가 그리는 그림의 주제인 ‘빛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린 조각 작품 같은 건축물이 세워졌습니다.”

헌신적으로 자기 몸을 던지듯 우제길 작가의 작업 일생을 도와 미술관을 건립했다. 미술관 주변 두 곳 공원과 현재까지 네 번의 개보수 공사는 모두 피와 눈물의 결정체였다. 그의 열정과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지금의 우제길미술관이었다.

24시간 남편이 작품 제작 활동에 충분히 전념할 수 있도록 섬세한 배려와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남편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쳤고,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으로 남편과 함께 했다. 우제길의 분신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는 우제길 작가에 영원한 비평가라는 점이다. 스스럼없이 작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남편의 자존심을 가끔 건드릴 때도 있다. 그러나 확신에서 비롯된 평가를 그는 절대 되돌리지 않는다. 아트 상품 제작에도 아이디어가 안 좋으면 다시 작업을 부탁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넥타이 이미지 자료만도 300여 가지가 훨씬 넘는다. ‘빛의 화가’ 우제길의 작업 세계와 그 명성에는 김차순의 몫이 ‘빛’처럼 담겨 있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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