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입니다. 7월이 되면 우리는 민족시인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떠올립니다.

내 고장 칠월(七月)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빛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먹으면

두 손을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잘 아시다시피 이 시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에 쓴 시입니다. 오늘에 와서 새삼스럽게 이 시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정성이 돋보인 희망가이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겐 지금 희망가가 다시 필요하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세월호 사건으로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을 한꺼번에 잃고 망연자실하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속죄하며 지내오던 중에 그 아픔을 안고 6.4 지방선거를 또 치렀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전남도지사 선거는 경선을 통해 이루어진 반면, 광주광역시장 선거는 전략 공천이라는 카드로 치르다 보니 시민 사이에 생긴 골을 메워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민주화의 성지에 살고 있는 시민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생겨서는 안 되겠다고 새롭게 다짐하고, 함께 희망의 등불을 밝혀 들고 출발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광주 전남은 정치적으로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매우 큰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도민이 당신의 손님입니다

저는 정치는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광주 전남은 새로운 정치적 모색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입니다. 이육사의 시 「청포도」에서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 ‘손님’은 당선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손님’은 당선자가 아니라 시민과 도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광주 전남의 새로운 정치적 모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7. 30 재보궐 선거 역시 이 패러다임과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광주의 지인과 통화하는 가운데 그 지인은 새정치연합의 핵심인 광주의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정치적으로 당내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당선자와 당선자를 둘러싼 인물들이 어떠한 의식과 비전으로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인지가 제일 기대된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기대는 그 지인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한편, 전남의 경우, 여수의 중진 문인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어 전남의 새로운 정치적 모색의 방안을 물었지요. 그랬더니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선거 때 경선에서 이긴 분은 도지사로 당선되었고, 패배한 분은 당의 사무총장이 되었으니, 서로 한 마음으로 가슴을 열고 모색하면 우리 같은 민초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어떤 새로운 행정의 방안과, 지방자치의 대안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웃었지요.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임금이 최고의 임금

우리는 노자의 정치사상 핵심 내용이 ‘무위이치(無爲而治)’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무슨 노자 이야기인가 싶으실 겁니다. 그러나 노자는 ‘최상의 정치는 백성의 믿음’임을 강조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 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 我自然(임금의 최고 정치는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그 다음 두 번째 수준의 정치가는 서로 가깝고 사랑하며 그를 자랑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세 번째 정치가는 백성들이 임금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네 번째 최하위의 정치가는 백성들이 그 임금을 업신여긴다는 것이다. 백성의 믿음이 족하지 않으면 불신만 있을 뿐이다. 백성으로부터 멀리 있어서, 미치는 말이 귀할 수밖에 없다.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끝나도 백성 모두 일컫기를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했노라고 한다.)

선거라는 민주적인 제도를 통해 당선된 사람은 유권자의 불신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줄 압니다. 옛 요임금 때의 「격양가(擊壤歌)」와 같은 세상까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유권자의 말없는 소망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선거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자기와 ‘틀린’ 생각을 가진 자로 치부하여 멀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은 바뀌지 않고 일할 머슴만 바뀌었다는 사실, 주인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할 머슴이 딴 생각을 하거나 정도(正道)에서 일탈한다면, 노자의 당부대로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가차 없이 주인인 유권자는 머슴인 시장이나 도지사에 대해 분노할 것이라는 엄연한 사실.

시장, 도지사는 온몸으로 헌신하는 어려운 자리

그러니 시민들은 그 자리가 권좌가 아니라 온몸으로 헌신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하시를 막론하고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지방정부는 시민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칠월입니다. 새로 일을 시작하시는 광주광역시장님과 전남도지사님께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꼭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그 시에서처럼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두고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노자가 말한 세 번째와 네 번째 정치가는 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한 배의 선장이 배를 포기한 탓에 일어난 국가적인 슬픔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광주광역시라는 배, 전남이라는 배가 새로이 출항했으니 선장으로서의 책무가 전과는 확연히 다를 줄 압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수많은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왜 그토록 광주에 쏠렸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새로운 정치적 모색의 길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광주 전남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주화의 불꽃처럼 온 국민의 희망으로 타올라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라틴어 격언을 하나 전해드립니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Spero, Spera).”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허형만 시인․국제펜한국본부 심의위원장  -08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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