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라는 시집이 있다. 1949년 서울 도시문화사에서 김경린(金璟麟)의 이름으로 간행된 <신시론(新詩論)> 동인의 합동 시집으로 김경린, 임호권, 박인환, 김수영, 양병식 등 5인의 시 20편이 수록되어 있는 시집의 제목이다.

도시의 욕망, 그리고 새로운 시민의 합창

이 시집의 작품들의 전반적 성격은 현대적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시의 감상성에 대한 강한 반발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집의 제목이 주는 감성을 나는 지금 광주의 도시 감성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들리는 광주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욕망이여 입을 열어라 그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겠다 도시의 끝에
사그러져가는 라디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사랑처럼 들리고 그 소리가 지워지는
강이 흐르고 그 강건너에 사랑하는
암흑이 있고 삼월을 바라보는 마른 나무들이
사랑의 봉오리를 준비하고 그 봉오리의
속삭임이 안개처럼 이는 저쪽에 쪽빛
산이
사랑의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리들의
슬픔처럼 자라나고 도야지우리의 밥찌기
같은 서울의 등불을 무시한다
이제 가시밭, 덩쿨장미의 기나긴 가시가지까지도 사랑이다

왜 이렇게 벅차게 사랑의 숲은 밀려닥치느냐
사랑의 음식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
난로 위에 끓어오르는 주전자의 물이 아슬
아슬하게 넘지 않는 것처럼 사랑의 절도는
열렬하다

<사랑의 변주곡>2 중에서-김수영

요즘 도시 재생 사업이나 문화 마을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문화’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는 가치의 수많은 행태를 말하는 것일진대 마을 문화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매일매일의 삶이 행복하였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을의 문화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자생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행복을 위하여 꾸려나갈 때 진정 행복으로 다가오고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삶의 문화 어우러진 마을 꿈꾸다

농경 사회에서는 들과 논에 나가 더불어 일하고 저녁 무렵에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 막걸리 한 잔에 춤추고 노래하며, 마을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의식을 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의 역사 속에서 문화가 형성되었다.

특별한 문화 기획자가 필요 없이도 마을 사람들 스스로 마을의 문화를 만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독특한 마을마다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축제를 보면 행정적으로 위에서 내려오는 축제가 아닌 수평적으로 스스로들 흥취에 겨워 만들어낸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흥겨운 골목길을 걸어 내러온다

도시마다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순수한 인간 생명의 정신은 사라지고 마을 공동체는 붕괴되어 갔으며 퇴락한 골목길은 을씨년스런 상태로 방치되어 사람이 걷기 힘든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도시는 온통 아파트의 벽으로 채워지고 아름다웠던 나무와 숲은 사라진 후 도시는 숨 막히는 회색빛으로 변모되어 종국에는 개인만이 존재하고 시민공동체의 행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 광주의 모습은 어떠한가. 몇 십 년 동안 개발에 집중하여 수많은 숲이 사라지고 역사적인 건물과 공간이 시민의 협의도 없이 사라져 이제는 추억과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다.

신도시를 개발할 때는 그곳의 역사적 자취와 풍광을 남겨두어 새로 들어설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야 안식을 얻을 수 있는데, 오로지 자본의 원칙에 따라 도시를 개발해버려 결국 후손들에게 행복을 물려주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에 가면 중세와 근대의 건물과 시내 곳곳에 숲들이 조성되어 현대적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부러울 뿐이다. 광주는 예로부터 예향으로 불리는 고장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왔지만 그동안의 의식이 없는 개발로 도시의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워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이름을 얻기 힘들게 되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황폐화되고 방치된 마을을 예산을 투입하여 문화마을로 조성하여 새로운 문화가 있는 마을로 탈바꿈시키려 하고 있으나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지금까지 보면 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문화 사업은 시민이 빠져 있어 살아있는 생명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막대한 예산만 낭비하는 것을 여러 번 봐왔다.

마을마다 나부끼는 마을 문화가 나부끼다

문화마을을 쉽게 조성하기 위하여 도로를 정비하고 새로운 건물 위주로 하다보면 마을의 고유한 정신은 사라져 천편일률적인 마을로 변모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 나두는 것보다 좋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몇 백 년 자란 나무를 자르는 것은 순식간이나 그 나무를 그 정도로 자라게 하는 것은 수십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마을 가꾸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마을이나 도시의 개발은 깨어있는 시민과의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양림동은 양림답게 발산부락은 발산부락답게 대인동 골목길은 그 마을답게 마을 가꾸기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민의 도시, 광주

그동안 광주는 위대한 선각자와 예술가의 자취를 보존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허물었고 깨달은 다음에도 복원하지 않았다. 오방 최흥종 목사, 오지호 화백, 시인 김현승, 음악가 정율성 등 광주를 대표하는 분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생가나 미술관 문학관을 아직도 만날 수 없으니 예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 되었다. 아시아문화전당이나 비엔날레 같은 대표적인 문화와 함께 곳곳에 시민들이 중심이 되는 문화가 함께 이루어질 때 진정 살아있는 문화를 느끼는 것이다.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처럼 시민들이 스스로 문화 창조의 중심에 서는 도시가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료나 문화기획자들이 낮은 자세로 시민과 호흡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한희원 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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