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은 늦게 나오지 않는가

기정진 선생은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서 출생했으나 18세에 부모를 여의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장성으로 와서 경학(經學)을 공부하고 전국에서 모여 드는 선비를 가르쳤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 한주(寒洲) 이진상(李震相, 1818～1886) 선생을 조선 성리학의 6대가로 일컬어 말한다.

노사 선생은 8～9세에 이미 경서와 사기에 통달했고, 유학에 전심하여 진사에 합격한 후 참봉에서 호조참판까지 여러 번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노사 선생은 다음 일화로 유명하다. 중국에서 조선에 인물이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서 조선 조정에 시 한 편을 보내 뜻을 물었다. 인물이 없으면 자신들이 조선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전부터 해오던 조선 조정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용장호단 오경루하 석양홍(龍長虎短 五更樓下 夕陽紅).’ 직역을 하자면 ‘용은 짧고 호랑이는 길다. 오경루 아래 석양은 붉네.’ 조선 조정에서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애를 태웠다. 그렇다고 아무런 답변을 해주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무시당할 일이었다. 할 수 없어 장성에 있는 노사에게 뜻을 물었다. 노사는 글을 읽고 다음과 같은 답을 써보냈다.

‘동해유어 무두무미무척(東海有魚 無頭無尾無脊) 화원서방 구월산중 춘초록(畵圓書方 九月山中 春草綠).‘ 직역을 하면 ’동해에 고기가 있는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원으로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 구월산중에 봄풀이 푸르다.‘ 두 글 모두 직역만 가지고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글은 모두 해〔日〕를 주제로 표현한 것이다.

겨울철에는 해가 용을 상징하는 진시(辰時, 오전 7시 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짧고, 여름철에는 해가 호랑이를 상징하는 인시(寅時, 오전 5시 정도)에 떠오르므로 해의 길이(낮의 길이)가 길어 용장호단(龍長虎短)이라고 표현한 것이며, 오경루는 중국에 있는 누각으로 석양의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이에 대한 노사의 시도 마찬가지다. ‘동해에 떠오르는 해는 고기와 같은데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고 등지느러미도 없다. 그림으로 그리면 둥글고 글씨로 쓰자면 각이 졌다. (日자를 암시) 중국은 오경루에 지는 석양이지만 조선은 구월산에 새로 돋아나는 봄풀이다.’라고 비교 표현하였다.

서울이 장성만 못하군

시를 보고 중국 사신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조선 임금은 서울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성 고을의 눈 하나 없는 사람보다 못하다 하여 ‘장안만목 불여장성일목(長安萬目 不如長城一目)’이라고 하였다. 일목이라는 말은 노사 선생이 눈병으로 눈이 하나 멀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주산(主山)이란 천 리를 끌고 내려오든 백 리를 끌고 내려오든 힘차게 끌고 내려오면서 치솟고 멈추고 다시 내려오고 또 멈추고 죄우로 꿈틀거리며 현(玄)자 모양으로 내려와야 한다. 주산의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옛날 정승이나 판서들이 머리에 썼던 감투처럼 생겨야 일품이고 또 우뚝 곧게 서있는 귀인봉처럼 빼어난 듯 잘생기면 자손들이 반드시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다.

이와 반대로 뒷산에 봉우리가 없으면 자손이 끊어지며 혹시 있다 하더라도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 또 주산이 높이 낮고 아래로 처졌으면 자손이 미천하고 주산이 높으면 자손이 많고 부귀하고, 높은 주산 아래로 산이 차례로 겹쳐 있으면 자손이 벼슬길에 오른다. 주산에 바위나 돌이 있으면 자손에게 질병이 많은데 크고 잘생긴 바위는 해당이 안 되고 못생긴 돌무더기산이 이에 해당된다.

주산이 아무리 잘생겨도 혈(穴)과 격식이 맞지 않으면 안 된다. 주산의 어깨 부분이 깨어지거나 결함이 있으면 안 되고, 병풍을 둘러친 것이나 봉황이 날개를 벌린 모습을 제일 잘생긴 것으로 본다. 주신이 묘 자리의 절반 이상으로 차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봉황이 날개를 펼친 주산主山

황룡면 관동의 수연사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동화면 남산리까지 와서 한 줄기는 황산마을에서 끝을 맺고 또 다른 줄기는 동으로 흘러 뻗어내려가는데 이것이 노사 선생 묘의 좌청룡 역할을 한다. 황산마을 300미터 못미처 낮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여기에 노사 선생 묘가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묘가 산의 내려오는 쪽을 뒤로 하고 내려가는 쪽이 앞이 되게 묘의 향(向)을 정하는데 이 묘는 이와는 반대로 내려온 쪽으로 향을 잡았다. 아마도 황룡면과 동화면의 넓은 들을 외명당으로 하고 주산을 되돌아보는 회룡고조(回龍顧祖)로 하며 동호리의 산을 우백호로 삼으려고 그리했는지도 모른다.

현무정(玄武頂) 뒤로 여러 겹으로 산이 겹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함평

에서 고창으로 가는 도로를 내면서 묘 80미터 앞에서 산맥이 끊긴 것이 흠이다. 외명당이 넓어서 인물이나 큰 부자가 늦게 난다. 좌향은 물이 빠져나가는 곳인 수구(水口)를 중심으로 해서 정하는데 도로를 만드느라 흙을 쌓아올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는 다리 밑으로 물이 빠져나가는데 건해(乾亥) 방향이다.

현장에 가서 확인해 보았는데 전에도 물이 그 방향으로 빠져나간 것 같았다. 묘가 둥글어서 묘의 향을 알기에는 어려워서 상석에서 향을 보니 묘좌유향(卯坐酉向)이었다. 88향법으로 보면 합당하지 않았으나 향상포태법(向上胞胎法)으로는 녹마귀인파(祿馬貴人破)에 해당되어 아주 좋다.

좌향을 정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어서 풍수가 어느 방법을 사용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수연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가 안산(案山)이 되는데 병풍처럼 둘러 있고 토체(土體)로서 아주 좋다.

[대동문화 31호, 2004년 가을호]

이동호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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