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1536년(중종 31년) 강릉 북평촌(지금의 죽헌동) 외가인 ‘오죽헌(烏竹軒) 몽룡실(夢龍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덕수 이씨 원수와 어머니 평산 신씨 사임당 사이의 7남매 가운데 셋째 아들이었다. 신사임당은 동해 바다로부터 날아온 검은 용이 ‘몽룡실’ 처마 밑 문머리에 서리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말과 글을 배웠고, 5살 때 어머니가 병이 들자 외조부 사당에 들어가 쾌유를 간구했다. 어머니에게서 사서를 배워 학문의 근거가 든든했다. 11살 때는 아버지가 병환으로 유독하자 자신의 팔을 찔러 피를 내서 아버지에게 약을 드리기도 했다.

어머니는 슬피 우시면서 시를 읊으셨네

이이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담긴 글은 ‘선비행장(先妣行狀)’이다. 1551년(명종 6년) 어머니가 별세하시자 지은 글이다. 이때 율곡은 16살이었다. 효도는 효도하는 부모로부터 유전된다.

나의 어머님은 진사 신공(申公)의 둘째 따님이시다. 어렸을 때에 경전을 통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쓰셨다. 또 바느질도 잘하고 수놓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게다가 천성도 온화하고 얌전하였으며 지조가 정결하고 거동이 조용하였으며 일을 처리하는데 안존하고 자상스러웠다. (…)

뒷날 어머님은 강릉 친정에 가셨다가 돌아올 때 외할머니와 눈물을 흘리며 이별하셨다. 일행이 대관령 중턱에 올라왔을 때, 어머님은 친정 마을인 북평을 바라보며 외할머니를 그리는 정을 못 이겨 수레를 멈추고 한참 있다가 슬피 눈물을 흘리며 시를 한 수 지으셨다.

늙으신 어머님은 강릉에 계시는데/이 몸은 홀로 서울로 가네/때때로 머리 돌려 북촌을 바라보니 /흰 구름 아래로 푸른 산이 저문다

서울로 돌아온 뒤 수진방(지금의 청진동)에 살았는데 그때 할머니께서 나이가 많아 집안일을 돌볼 수 없어 어머님이 맏며느리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성품이 활달하여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아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으셔서 살림이 넉넉지 못하였다. 그래도 어머님은 살림을 규모 있게 하여 웃어른을 봉양하고 아랫사람을 보살필 수 있었다.

(…) 말씀은 온화하시고 얼굴빛은 화순했으며 아버님께서 어쩌다 실수를 하시면 옳은 도리로 말씀드려 고치게 하셨고 자식에게 잘못이 있으면 엄하게 경계하여 타이르셨다. 또 거느리는 아랫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엄하게 꾸짖으시니 종들도 모두 어머님을 공경하고 받들어 모셨다. (…)

어머니의 3년 상을 치르고 불교에 잠시 귀의한다. 1554년 금강산 마가연(摩訶衍)으로 입산한다. 율곡의 학문이 제가의 학설을 절충하거나 다양한 견해들을 포괄 통섭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불교의 경험이 있었다. 퇴계 이황과의 ‘이기 문답’에서 이이는 이(理)와 기(氣)를 분리할 수 없다고 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본체론을 주장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주효했을 것이다.

시와 선과 차를 이야기하네
또 율곡은 이때 차에 대한 공부가 익었을 것이다.

採藥忽迷路 약초 캐다 홀연히 길을 잃었네
千峯秋葉裏 온산에 단풍 곱게 물들었는데
山僧汲水歸 산에 사는 스님이 물 길어 돌아간 뒤
林末茶烟起 숲 끝에 피어오르는 차 달이는 연기

-‘산중(山中)’-

雲雨暗幽林 구름 끼어 비 내리니 숲 속이 아득한데
山堂轉淸絶 산속 집 맑기 이를 데 없네
茶罷一事無 차 다 마시니 할 일이 없어
詩談雜禪說 시와 선에 대해 이야기하네

-‘중유풍악(重遊楓嶽)’-

20세가 되던 1555년 강릉으로 내려가 ‘자경문’을 짓고 학문에 전념했다. 자경문의 항목은 11가지이다. 입지(뜻을 크게 가짐), 과언(말을 적게 함), 정심(마음을 바르게 함), 근독(삼가고 두려워함), 독서(글을 읽음), 소제욕심(욕심을 청소함), 진성(정성을 다함), 정의지심(정의로운 마음), 감화(감동을 주어 변화시킴), 수면(잠을 줄임), 용공지효(공부를 늦추지도 급하게도 하지 않고 꾸준하게 함)였다. 9번째 ‘감화’는 ‘어떤 사람이 이치에 맞지 않게 악행을 가해오면, 나를 깊이 반성하여 그를 감화시키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율곡은 퇴계 이황의 감화를 받았다. 어려서 어머니에게 가정교육을 받은 것 외에 뚜렷한 사승 관계가 보이지 않지만 율곡은 퇴계 이황,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송강 정철, 사암 박순, 청강 이제신, 고봉 기대승 등과 교유했다. 35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퇴계 이황은 율곡의 학문을 칭찬했다.

선생에게 무이산의 빼어난 학문을 배우네

23세 때인 1558년 봄, 예안 도산으로 찾아가 퇴계를 알현하고 성리학을 묻는다. 이후 편지로 율곡과 퇴계는 ‘성학십도’ 중에서 ‘심학(心學)’에 대한 의문과 대답을 서로 주고받는데, 퇴계는 율곡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나중에 율곡은 퇴계의 문묘 종사를 건의한다.

“(선생의) 학문의 갈래는 공자로부터 비롯되고, 빼어난 학문은 무이산의 주자와도 같네. 생활의 계책은 경서 천 권이라네. 들고나는 두어 간의 집 한 채, 그러나 가슴에 품은 뜻은 밝은 달 같네. 담소는 큰 파도 그치게 하는 듯하고, 나도 선생에게 그 도리를 청하고자 하네.”

퇴계는 율곡에게 “정감이 지나치게 배인 시는 모름지기 거두고, 학문에 힘써서 나날이 새로워지게.”라고 당부하는 답시를 준다. 문학(文學)보다는 성리학에 몰두해 학자로서 대성할 것을 당부하고, 율곡은 이를 지킨다. 생원시와 진사시를 포함해 응시한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여 사람들에게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니, 학문의 천부를 알 수 있다.

율곡이 살았던 16세기는 정치적으로는 사람과 훈구의 대립 구도 속에 사회와 정치가 혼란했으나 성리학은 크게 발전했다. 특히 ‘예학’의 정리와, ‘성리학’의 근본이념에 대한 논쟁이 학문을 정치하게 했다. 명종 때에 이르러 <주자가례>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가 계속됐다. 송기수, 이현보, 이언적, 서경덕, 김인후, 이황, 조식 등의 학자들이 대표적이다. 이 <주자가례>를 연구한 율곡의 ‘제의초’ 예서(禮書)에는 성리학적 이론에 따르는 예법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정묘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차 이야기가 있다.

참례의(설, 동지, 초하루와 보름에 올리는 차례)에는 “가례를 보면 보름날에는 신주를 모셔내지도 않고 술을 놓지도 않으며, 단지 차만을 차린다고 하였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풍속에는 차를 사용하는 예가 없으므로 보름날에는 신주를 내오지 않고 단지 독만을 열며, 강신주를 사용하지 않고 단지 분향을 하는 것만으로 차등이 있게 하여야 한다.” 했다.

시제의에는 “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혹은 더운 물로 대신한다) 나누어서 고위와 비위의 앞에 올리고 국을 거두어서 물러나온다.(부위가 있으면 여러 자제들과 여러 며느리와 딸들을 시켜서 나누어 올리게 한다.)”고 했다. ‘묘제’나 ‘토지신에게 올리는 제례’에는 ‘음식과 차를 올리지 않는다.’고 했다. 차례가 우리 민족의 전통 제례에 반드시 등장했지만, 예법으로 정리되던 16세기 이후 차가 아닌 술로 변형되어가는 때의 기록을 알 수 있다. 차례(茶禮)의 연원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확실한 전거가 되어, 차인들에게는 반가운 대목이다.

오랑캐를 막은 지혜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선조에게 율곡은 ‘만언봉사’의 소를 올렸다. 나라 안팎에서 재앙들이 일어나고, 민심이 흉흉했다. 율곡은 ‘제도를 개혁하고, 실사에 힘쓰자. 백성들이 편안히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세금 제도를 뜯어고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48세 되던 해에 ‘육조계(六條啓)’를 올렸다.

“우리나라는 태평한 지 이미 오래되어 매사에 태만함이 날로 심하여지고 서울과 지방이 공허하고, 군사와 식량이 모두 궁핍하여 (…) 만일 큰 오랑캐가 침입해온다면 비록 지혜 있는 사람일지라도 이를 막을 계책이 없을 것이옵니다.

옛말에,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먼저 준비하여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라.’라 하였사온데, 오늘날 나라의 정사는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사오니, 적이 닥쳐오면 반드시 패하고 말 것이옵니다.”

선조가 이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역사의 많은 부면이 달라졌을 것이다. 율곡이 병조판서 시절 내금위의 종8품 하급 관리였던 이순신을 도승지 유성룡에게 천거하여 “장차 삼한을 구할 인물이니, 후일 기회가 있으면 천거하여 등용하라.”고 일렀다. 그래서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위한 칼을 준비했다. 율곡은 선조를 잃었지만, 이순신은 얻었다. 그래서 나라를 회복하게 예비했다.

차인으로서 율곡은 다시를 짓고, 시제사에 차를 올리는 것이 예법이라는 말을 했다.

해동공자 율곡 이이는 16세기 정치 상황 속에서 성리학에 힘쓰고, 제도를 점진적으로 혁파하여 백성을 삶이 편안해야 한다는 가치를 실천한 학자였다.

오죽헌은 율곡 이이와 어머니 신사임당이 태어난 집으로 한국 주택 건축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에 속한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백승현 기자  porum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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