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삼별초 왕국의 10개월 존치와 명량대첩은 진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역사이면서 국운이 바뀐 계기가 된 큰 사건이었다. 삼별초 진도 왕국의 괴멸은 해양 민족의 기상을 꺾어버린 역사이면서, 진도 사람들 모두가 역적에 협력했다는 죄목으로 고통을 겪게 된 사건이었다.

3백여 년 뒤에 진도 명량 해역에서 거둔 이순신 장군의 대첩은 해양 민족의 기상을 되살린 역사적인 계기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이 계기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진도 사람들의 희생은 너무나 컸다.

한국 성장의 신화가 침몰하다

이번 맹골 수역의 세월호 참사는 한국 성장의 신화가 거품이었다는 비아냥을 당한 세계적 오명의 땅으로 인상지어진 점에서 앞서 든 두 역사적 사건보다 그 비중이 낮지 않다. 희생자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것에 못지않게 모든 국민에게 책임의식과 안전을 일깨워준 계기를 마련한 점에서 기억해야할 역사이다.

이와 더불어 많은 국민들에게 바다와 섬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은 점은 불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 참사가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고 있는 것도 역사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지만, 많은 국민은 그동안 성장에 가려온 갖가지 적폐와 의식 구조에 근본 원인이 있었다고 인식하면서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노래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그동안 쌓아온 갖가지 부조리와 부패,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고치는 계기를 마련할 것임은 틀림없다.

오욕의 바다에서 교훈의 바다로

문제는 오욕의 현장으로 각인된 진도 앞바다를 어떻게 살려내느냐는 현지 주민의 몫으로 남게 되었다는 데 있다. 아직 희생자 수습이 마무리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성급하다는 핀잔이 있을 수 있을 것이지만 희생자 유족 못지않게 나쁜 이미지를 떠안은 현지 주민 입장에서 가슴 아픈 사건을 극복할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첫 번째는 위험한 맹골 수역을 안전한 해역으로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맹골 수역의 중심 섬인 서거차도에는 해군 기지가 자리 잡고 있었으나 92년 철수한 뒤 죽도 유인 등대마저 무인 등대화 시켰다. 위험 수역을 관리할 제도적 장치를 포기한 셈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되겠지만 이 수역의 안전을 돌볼 국가 기관의 현지 주재가 필수적인 보완책이다.

두 번째로 이곳이 안전 불감증을 일으킨 국민을 향한 안전 교육 현장이 되어야 한다. 13년 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났던 테러 현장에는 ‘9.11 박물관’이 4월 21일 문을 열었다. 국립으로 운영할 이 박물관은 3억 9천만 달러의 연방정부 지원금과 민간 기부금 3억 1천만 달러를 합해 한국돈으로 7천 1백70억원 가량을 들여 시설해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1998년 독일 에쉬데의 열차 사고나 1986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 현장, 1995년 일본 고베 지진 현장 등에도 당시의 기억을 잊지 않을 시설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현장도 기억할 시설은 한국 정부가 기획하기 전에 현지 주민들이 앞장서 준비해야 한다. 만일 정부가 외면한다면 민간 운동을 벌여서라도 실현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민들의 기억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 마련 시급

세월호 인양이 끝나기 전에 진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품이나 부둣가에 걸린 리본 하나하나를 쓰레기로 버려지기 전에 소중하게 수집해야 한다. 이런 일들은 책임 추궁과 사태 수습에 여념이 없는 정부가 신경을 쓸 틈이 없다. 그래서 민간에서 먼저 추진해야 한다. 사고 해역의 흔적들이 팽목항 근처에 오롯이 전시된다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세 번째는 인접 서망항을 이용하는 어민들에게 포근하고 건강한 어항이라는 안도감을 주도록 서망산을 어민 휴양림으로 가꾸자는 것이다. 이 산의 식생은 연안 산림 중에서도 가장 다양하고 우수한 곳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다도해 해상공원의 들목 숲답게 잘 손질해 이곳에서 조도 해역의 섬을 답사하지 않더라도 다도해 식물 분포를 관찰할 수 있는 식물원을 겸할 수 있게 한다면, ‘비탄의 항구’ 팽목항의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진도 앞바다 항해의 안전을 비는 상징으로 해역 항해 선박들이 바라볼 수 있는 거대한 관음불상을 세운다면 비극의 해역이란 인상을 씻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상징물은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중국이 절강성 보타도에 20여 년 전에 세운 관음입상이 근해 항해의 안전을 비는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같은 궤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

세월호,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다

네 번째는 기왕의 상조도 전망대는 위험한 맹골 수역을 항해하지 않고도 사고 해역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위치이다. 이곳에 망원경을 장치하고 겸하여 병풍도 앞바다에서 사고를 당했던 세월호의 당시 상항을 시뮬레이션으로 실감시킬 수 있다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수 있다.

이 섬 어딘가에 해양 안전 청소년 수련관을 지방 출신 기업의 투자로 유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고 해역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천종사에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일천 개의 종을 달아 매년 4월 16일 사고 시간에 맞춰 안전 의식을 일깨우는 타종식을 갖는다면 진도 사람들이 희생자 유족들을 위해 봉사한 공동체 의식의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할 것이다.

희생자 유족에 못지않게 이미지의 피해를 입은 진도 주민들이 피해를 극복하는 데 앞장선다면 가슴에 못을 박은 유족들도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김정호 광주향토문화연구소장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