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의 소설과 인연을 맺은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도 나이 들었고 나도 어느새 그 못지않게 나이를 먹었는데, 아직도 소설을 쓰고 산문집을 발간하는 걸 보면 이래저래 존경심이 간다. 깊은 시골에 은둔해 살면서도 그의 에너지와 창의력은 어디서 그렇게 샘솟듯 나오는 걸까.

근대의 시작점에서 비롯된 나의 일본 작가 편력은 몇 명 되지는 않지만, 21세기 현대의 작가 중 유일하게 관심을 끄는 작가라면 아마 마루야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 아, 한 명 더 있겠는데 그는 히라노 게이치로다.

당신이 꿈꾸는 시골 생활? 망상에 가깝습니다

현존하는 일본 작가 중 마루야마는 그 누구와도 구별되고 비교되지 않을 독특한 작가이다. 처음 읽었던 그의 소설은 ‘물의 가족’이었는데, 세상에는 이런 소설, 이런 문체도 있구나 하고 가슴 설레며 놀랬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국에서 그의 소설이 꾸준히 번역되어 나온 걸 보면 상당수의 독자를 거느리고 있을 법한데도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은 걸 보면 마루야마답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내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나가노 현 아즈미노에서 살고 있는 세월이 내가 생각해도 아득한데, 나가노라면 나도 왠지 친근감이 드는 것은 북 알프스가 나가노 현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광주 YWCA 소속 두레 산악회가 1993년 7월 21일에 북 알프스 등정에 나섰던 것이다. 그때 나는 원정 기록으로서 3,190미터의 오쿠호다카 다케를 종주하느라 꽤 힘들었었다. 만년설을 끼고 도는 편마암의 산행은 나이프리찌 등반이어서 아슬아슬하기는 말레이시아의 마운틴 키나발루에 댈 것이 아니었다. 기억도 새로운 나가노 현이니 더욱 친근할 수밖에….

“시골 생활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열병처럼 당신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혹 당신은 도시에서 누리지 못한 모든 것을 시골에서 얻을 수 있다는, 그야말로 망상에 가까운 환상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요.”

귀농, 귀촌이 특히 은퇴자의 로망이 된 지도 오래되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시골에서 성장하고 도시로 나와 살기 시작한 삶이었다. 너도나도 도시로 이주했다. 이유야 붙이기로 하면 말 부족해서 못할 것이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직장을 따라서, 문화생활을 누리기 위해서….

당신의 귀농은 실패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경쟁과 질주하듯 달려온 삶이 브레이크 걸리듯 어느 날 딱 멈추어 선다. 새로운 생활을 설계하고픈 꿈은 계속 달린다. 자연에서 자연인처럼 여생을 보내리라. 낭만에 젖어들고픈 마음도 로맨틱한 삶을 향해 출발을 서두르는 사람도 주변에 흔해졌다.

딸 가야도 내년에 귀촌한다고 실상사 부근 지리산 자락에 땅을 사두었다. 함께 가서 살자고 부추기지만 노년의 삶은 따질 것도 많다. 오가며 방문하는 걸로 족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서운한 마음은 비길 데가 없다.

마루야마의 이 산문은 그런 환상을 일거에 깨부수는 책이다. 망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가 기분 나쁠 정도로 냉정하기 짝이 없다. 도피이며 유치한 결단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막말을 서슴지 않는다. 로망이니 환상이니 꿈꾸는 이상주의자들을 위한 애정 어린 충고로 받아들인다면 당신의 귀농은 어느 정도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몇 군데 제목만 보더라도 겁이 날 법도 하다. ‘경치만 보다간 절벽으로 떨어진다.’ ‘고독은 시골에도 따라 온다.’ ‘깡촌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친해지지 말고 그냥 욕먹어라.’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다 ‘구급차 기다리다 숨 끊어진다.’는 말을 들으면 더 섬뜩해진다.

고요한 듯해도 더 시끄럽다는 시골 삶의 아이러니는 살아봐야만 제대로 알 것이다. 시골이 좋다고는 하지만 살아본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텃세를 이겨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고 말들 한다. 순박하다든가, 인정이 많다든가 하는 것은 텃세를 이겨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도시민 티를 내지 않고, 잘난 척 하지 않으며, 마을 대소사에 참여하는 것. 시골 생활의 성공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도시나 시골이나 나하기 나름이며 공동체 속에 나 홀로 독야청청하겠다고 하면, 어디서나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 정직하고 위생적이며 청결하다는 것은 호가 난 사실이다. 일본 농촌 사람들 부지런하기는 한국 중국을 합해도 일본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들어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시기심 많은 것이 일본인들의 특징이라고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지적한 일본 시골의 삶이란 게 그렇게 수월한 것이 아니다. 일본 여행 중에 지나친 농촌 풍경은 그 풍경만큼이나 삶도 아름다울 것 같았는데, 역시 국민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교육을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배운다는데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는 정직성은 언제 상실된 것이며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부정직성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극우 우익 정권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런다지만 국민 대다수가 침묵하는 것은 또 무얼 말하는 것일까.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아무렴 한국의 시골이 이럴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이 책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도 안 되고 한국 농촌에 그대로 잣대를 들이대듯이 해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참고할 뿐. 이 책을 딸에게 줄까 했는데 차마 그 꿈에 고춧가루를 뿌릴 수 없어 망설이다 포기했다.

대동문화 83호 [2014 7,8월호]

문향선 수필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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