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작가 중 가장 독특한 문학 세계를 이룩한 인물로 손꼽히는 쥘 바르베 도르비이는 <악마 같은 여인들> <늙은 정부> 같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당대 문학의 거장들에게 날선 비판을 해대는 평론가였으며, 발자크나 스탕달, 보들레르가 평가받지 못할 때 그들의 진가를 알아본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가난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았지만 어떤 불편도 마다하지 않는 댄디 특유의 기질을 발휘하여 화려한 옷차림과 당당한 태도로 하나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그리하여 댄디즘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작가이기도 했으며 <댄디즘과 조지 브러먼>이라는 책을 써서 귀중한 자료로 남겼다. 윤리적이며 종교적인 ‘깊은 댄디즘’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이 책에는 또 두 명의 저자가 더 등장하는데, 번역과 해설을 맡은 충북대 고봉만 교수와 그림 해설을 맡은 이주은 미술사학자의 글이 곁들여 있어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단순하게 사치스럽고 멋만 내는 댄디를 생각했다가 이처럼 심오하고 교양과 예술을 추구하는 댄디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 같은 사람은 소박하고 단순한 걸 좋아하니 댄디의 대열에 낀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물론 남자들만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거기다 교양과 예술적 소양이 턱도 없이 부족하니 꿈꾸는 것마저도 언감생심이다. 아무나 댄디가 되는 게 아니라는 점, 그게 댄디의 매력이다.

남자들이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먼저 댄디즘의 기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댄디즘은 19세기 서구 자본주의의 산물로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에서 처음 그 싹을 틔웠다. 당시 영국의 상류 귀족 계급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복식이나 생활 방식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댄디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한심해 보이는 청년들의 지나친 치장이나 희극을 방불케 하는 태도들에는 부르주아 계급의 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저급한 현실주의에 대한 나름의 반항적 자기표현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댄디가 되자면 경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스스로 돈을 버는 댄디는 생각할 수 없으며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영주이거나 지주이면서 일정한 수입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가난한 댄디란 상상하기도 어렵다. 다만 조지 브러먼은 평민 출신에 조지 4세가 된 영국 황태자 휘하의 경기병 연대의 기수로 활약했다. 세련된 옷차림과 뛰어난 매너로 그 우아함이 사교계의 총아로 만들어 전설적인 인물이 된 댄디였다.

그런데 병과 가난에 시달리면 이미 댄디로서의 생명은 끝나는 것. 조지 브러먼의 생애가 이국의 삶에서 유랑하다 사망하는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엄격, 관능, 자연스러움, 반항, 신비주의

이주은 미술사학자 쓴 <10가지 키워드로 보는 댄디의 초상>은 댄디를 사생하듯이 정밀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흥미와 재미를 배가시켰다. 댄디는 첫째로 ‘엄격’해야 하는데 순백색 셔츠와 한정된 장식품으로 절제미를 추구해야 한다. 새하얀 셔츠는 높은 칼라에 풀을 먹이며 청결은 그 생명이다. 과도한 장식은 군더더기, 외알 안경과 지팡이, 장갑 등 허름하거나 낡은 것이면 댄디가 아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조지 브러먼, 로베르 르페브르이다.

둘째로 ‘관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몸에 딱 붙는 옷이어야 호리호리한 몸매를 통해 에로틱한 분위기를 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양복 재단사보다 더 마른 남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까다로운 댄디의 옷을 만드느라 절로 그렇게 되었다는 점도 코믹하다.

셋째로 연출하되 연출함을 드러내지 않는 ‘자연스러움’이다. 가늘고 긴 손과 창백한 안색이 아니면 낙제다.

넷째는 귀족 혹은 부르주아 관계에서 반항아일 것이며 ‘경계인이어야 한다. 품위와 고상함을 지닌 엘리트이어야 함은 기본이다.

다섯째는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신비주의‘에 싸여 있어야 한다. 세련된 어휘력과 수려한 외모, 신비로운 분위기는 문필가 로베르 몽테스키우의 전매특허였다.

여섯 번째는 무관심이다. 교양 없는 세상을 견뎌야 하는 댄디에게는 맹목적으로 변하는 세상을 찬미할 수 없다. 보들레르는 댄디로서 유명한 명구를 날렸는데 “빵 없이 3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 없이는 결코 버틸 수 없습니다.” 이런 교양이 앞서야 댄디다.

시 없이는 결코 하루도 견딜 수 없다

일곱 번째는 패거리 문화를 거부하는 ‘고립’이다.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며 휩쓸리지 않는 고독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여덟 번째는 낭만주의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낭만의 다른 이름은 ‘자유’가 아닐까. 낭만적 도피의 주인은 시인 바이런이다. 이상주의자이며 현실 도피를 추구하는 사람, 자유로운 예술혼의 소유자여야 한다.

아홉 번째는 ‘인공미’이다. 실재적인 면모는 매력 없는 것, 인공미를 가미함으로써 댄디로서의 완성을 뜻한다. 대표적 인물은 작가 오스카 와일드이다. “넥타이를 잘 매는 것이 인생의 첫걸음”이라는 경구를 남겼는데, 꾸미는 것에 방점을 둔 인물이다.

열 번째는 ‘옴 파탈’이다. 여성적인 악취미와 이중의 성을 연출하는 유미주의자이어야 한다. 인생을 즐기되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열정을 경계하는 인물, 댄디의 마지막 조건이다.

그러니 이래도 댄디가 되고 싶은 남성 제씨가 계신다면 그대는 분명 위대한 댄디가 될 소양이 충분한 사람일 것이다. 이중에서 ‘교양 없는 세상 견디기’가 가장 힘들 것 같은데, 제발 대한민국도 교양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고 열망해본다.

대동문화 84호 [2014 9,10월호]

문향선 수필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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