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휴식과 평안을 준다.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때 듣는 음악은 치료와 안식을 준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오래된 낡은 의자에 앉아 듣는 음악은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준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를 거닐다 아무 집이라도 불쑥 들어가면 이런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사직공원 나무들이 가을맞이로 한창이어서 푸른 잎이 물들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창가에 앉아 듣는 주인장이 들려주는 나지막한 통기타의 음률은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것도 개성이 다른 통기타의 음악을 골라서 들을 수 있으니 광주만이 지니고 있는 즐거움이다. 술과 통기타의 절묘한 무리들의 만남은 치명적이고 낭만적 유혹이다.

오래전 가을이었나. 처음 술을 마시던 날을 기억한다. 집안 분위기 탓에 술이라는 존재도 모르는 채 살아왔는데 친구의 힘겨운 우울에 전염돼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했던 술을 벌컥 마셨던 것 같다. 절망에 빠져있던 친구와 광주천변을 걷다 친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한 가게에 들어가 싸구려 양주 두 병을 사가지고와 병째로 술을 가슴에 부어넣었다. 아득한 젊은 날의 자화상이었다.

외지서 온 손님 ‘아, 이래서 광주’

술에 취해 사직공원을 오르다 낮은 기타음률이 들어왔다. 거리는 어둠으로 가득했고 술과 음악은 치명적 유혹으로 다가와 이제는 지금까지 동행하고 있다.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에서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고 낭만을 마시는 것이다. 70~80년대 기타집으로 시작된 공원 통기타 집은 광주의 젊은이와 논객들이 울분을 토해내는 자리였고 낭만을 삼키는 자리였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과 이곳에 들르면 ‘아, 이래서 광주’라는 감탄사를 듣곤 했다. 40~50대들이 가득 앉아 젊은이처럼 통기타의 낭만에 취해 인생을 즐기는 모습은 타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술은 치명적 유혹이다. 술은 인생이 들어 있다. 시인 천상병은 막걸이로 식사를 대신했다. 친구들에게 몇 백원을 달라하여 막걸리를 마셨다. 시인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인생을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쓰고 달콤한 인생을…. 박인환은 술에 취해 낡은 술집에 앉아 전날 십 년만에 다시 찾아간 첫사랑 여인의 묘지를 떠올리며 시 '세월이 가면'을 단숨에 써내려 갔다.

그는 다음날, 봄인데도 두툼한 외투를 입고 낮 술에 취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갔다. 시인 이상의 죽음을 추모하는 여운이 그에게 남아 있었다. 대학시절 동명동에 있던 배동신 화백 댁에 인사차 들렀다가 양푼에 술을 가득 채워 화백께서 주신 술을 마신 후 취해 나온 기억이 있다. 술은 인생을 정점과 나락으로 인도한다.

어린시절 사직공원은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즐기는 곳이 많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공원을 찾았고 사랑을 나눴다. 공원에 동물원이 들어선 이후에는 주변 동네 사람들은 새벽 잠에서 깨어 나기 전 사자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원시림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런 시민들의 휴식처였던 사직공원이 지금은 시민이 찾지 않는 적막의 공원이 되어 있다. 시민이 없는 시민공원이 된 것이다. 시민이 다시 이곳을 찾게 하려면 예술의 덧이 씌워져야 할 것이다. 밝은 조명 아래 뛰어난 공연이 수시로 이루어지면 시민들은 다시 이곳을 찾게 될 것이다.

다양한 예술장르 결합으로 활성화돼야

얼마 전 사직 공원의 옛 수영장에서 2014 사직국제포크 페스티벌이 열려 1,000여 명의 시민이 찾아와 포크음악을 즐겼다. 10월에는 '굿모닝 양림' 축제가 열려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았다.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에도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낭만을 즐겼다.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로 사람들이 찾게 했던 가수는 가객 정용주였다. 그때까지 아픈 시국을 달래주었던 사직골에 통기타 가수 정용주가 입성한 후 수많은 논객이 이곳에서 밤을 지새웠다. 정용주가 떠난 후 직녀에게 작곡가 박문옥, 그리고 김인식 등이 거쳐갔고 지금은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곳으로 '사직골'은 변해 갔다. 이곳에서 가장 잊지 못할 가수는 고 이장순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국소남과 출연 했던 이장순은 광주 포크계의 맏형으로 1세대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구수하며 정겨웠던 이장순은 지금은 세상을 떠나 그를 추모하는 사진

시비가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를 지키고 있다. 가수 주권기에서 돌담을 거쳐 지금은 다른 곳으로 옮긴 트윈폴리어를 지나 추억찾기, 유미랑, 카사블랑카, 햇빛촌까지 사직공원 통기타 거리는 각기 다른 개성으로 낭만을 들려주고 있다.

이곳이 다양한 장르의 예술과의 만남을 통하여 더 깊은 세상으로 인도 하였으면 한다. 몇 해전 서울에서 시인 조병준이 내려와 '돌담'에 들러 함께 술에 취했는데 그 때 벽에 즉석에서 지어 썼던 시가 기억난다.

'인생이 싫어 외출중이다/누군가 자꾸 문을 두드리는데/나는 인생이 싫어 외출중이다/절망도 힘이라는데 절망도 희망이라는데/나는 인생이 싫어 외출중이다./(한희원의 졸편 시 ‘인생이 싫어 외출중이다’ 전문)

사직공원 오르는 길이 가을에 젖어들고 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눈내리는 창 밖의 모습을 통기타의 낭만에 취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영원히 광주 시민의 추억과 함꼐 하길, 그리고 이 밤 낭만에 취해 보길 기대해 본다.

대동문화 85호 [2014 11,12월호]

한희원 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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