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빠진다는 것은 특정한 것에 대한 짝사랑이다. 흔히 애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무언가에 대한 짝사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요즘 들어선 '마니아'(Mania)라고 부르는데, 그런 측면에서 나는 라틴음악의 마니아이다.

생각해보니 내게 있어서 라틴음악이란 좋아함을 넘어서 직업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라틴음악에 빠져보니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다. 라틴음악이 그저 한 시절 스쳐 지나가는 유행음악(流行音樂)이 아니라는 점이다.

라틴음악을 요즘 들어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려워졌지만(아프로-쿠반, 아프로-브라질리언, Tango, Musica Andina(인디오음악) 등 지역적으로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분명한건 라틴음악을 현재의 글로벌 음악으로 인정받게 해준 것은 ‘아프로- 쿠반 음악’(Afro-Cuban Music) 이었다. 명칭 그대로 'Afro-Cuban'이라는 말에는 아프리카와 쿠바의 것이 합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본디 재즈(Jazz)음악도 '아프로-아메리칸 음악‘(Afro-American Music)이라는 함의가 있는, 말 그대로 퓨전(Fusion)의 음악을 뜻한다. 퓨전의 노력은 혁신적이어야만 가능하다. 해서 아프로-쿠반(혹은 라틴 재즈, 라틴음악)재즈는 혁신적 결과물이다.

반세기동안 독특한 영역 구축한 아프로-쿠반 재즈

1940~1950년대 혁명 이전의 쿠바, 특히 아바나(Habana)는 '카리브해(Caribe 海)의 파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유흥의 도시였다. 그 중심에는 ‘쿠바의 음악’이 있었다. 아프로-쿠반재즈(Afro-Cuban Jazz)의 아버지라고 칭송 받는 마리오 바우사(Mario Bauza), 마치토(Machito), 차노 포조(Chano Pozo) 이후 아프로-쿠반 재즈(혹은 음악)는 지금까지 약 50여 년 동안 재즈의 역사에서 수 많은 교류와 교감을 통해 독특한 영역을 구축해 왔다.

그것은 라틴 재즈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닌, 치열한 시대정신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재즈의 초창기 즉, 뉴올리안즈 시대에서부터 이미 라틴비트는 존재하였고 부단한 교류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며 재즈와 라틴비트는 때론 다른 이름으로 때론 이종 교배의 노작들로 우리의 귀와 눈을 채워 왔던 것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치코와 리타(Chico & Rita)는 찬란했던 아프로-쿠반 재즈의 황금기였던 1940~1950년대를 배경으로, 천재 피아니스트 ‘치코’(Chico)와 매력적인 가수 리타(Rita)와의 사랑과 이별,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스토리는 통속적이고 캐릭터들은 관능적이고 로맨틱하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의 진짜 주인공은 ‘쿠바의 음악’이다.

그리고 그 음악을 스페인이 낳은 당대의 최고의 아트 플레이어(Art Player) 하비에르 마리스칼(Javier Mariscal)의 아름다운 그림이 더욱 드라마틱하게 이끌고 있다. 나는 치코와 리타의 첫 장면을 잊지 못한다.

하비에르 마리스칼이 그리는 1940년대의 쿠바와 말레콘 거리(아바나의 해변), 마치 실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로 디테일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 1993)의 페르난도 트루에바(Fernando Trueba) 감독은 라틴 재즈를 다룬 다큐멘터리 ‘Calle 54'(54번가, 2000) 를 만들며 맺은 인연으로, 하비에르 마리스칼과 의기투합해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냈다.

재즈 대가 찰리파커, 몽크, 냇 킹 콜 등장

영화의 음악은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Bebo Baldes)가 맡고 있다. 혁명 이후 1960년 스웨덴으로 망명을 떠난 그가 세상에 다시 등장한건 1994년 쿠바 출신 색소포니스트 파키토 디리베라(Paquito D'Rivera)와의 협연을 담은 앨범 ‘Bebo rides again'에서 였다.

주인공 치코 캐릭터는 베보 발데스와 닮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코는 베보뿐만 아니라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의 콤파이 세군도(Compay Segundo)나 루벤 곤잘레스(Ruben Gonzalez), 혹은 혁명 이후 쿠바에 남아 그들의 음악을 지켰던 뮤지션들의 총체적인 캐릭터이자 그들에 대한 오마주(hommage)이기도 하다.

영화는 픽션 속에서 역사적 사실을 결합시키는 팩션(Fact + Fiction)을 그리는데 절정은 ’차노 포조‘(Chano Pozo, 퍼커션니스트)에 대한 얘기이다. 그가 나온 부분은 실제 일어났던 일들이기도 하다. 또한 1940년대의 뉴욕의 클럽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 찰리파커, 디지 길레스피, 몽크, 냇 킹 콜 - 재즈의 역사가 기억하는 대가들인데, 그들이 살짝 등장하고 사라지는 장면을 보는 것도 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다.

진부한 스토리에도 몰입도 높이는 음악

베보 발데스가 만들어 내는 사운드트랙은 원초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진부한 스토리의 애니메이션 영화이면서도 몰입도가 높은 것은 바로 베보 발데스의 음악 덕분이다. 특히 40, 50년대 당시의 최고의 음악가들의 작품이 화면과 적절하게 배치된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Ebony Concerto’,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의 ‘On The Town’, 조지 거쉰(George Gershwin)의 ‘Fascinating Rhythm’ 등이 20세기 초반의 향수를 전달한다.

멕시코의 알바로 카리요 (Alvaro Carrillo)의 볼레로 명곡 ‘Sabor A Mi’(나의 향기), 조지아 아귀레(Georgia Aguirre)가 노래한 ‘Paran Pan Pan’ 등은 영화의 서정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필름 스코어(Film Score)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곡은 ‘Besame Mucho’와 ‘Lily'이다. 멕시코의 여류 작곡가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asquez, 1940)가 작곡한 ‘Besame Mucho’는, 치코와 리타를 사랑에 빠지게 해주는 모티브를 제공하고, 플라멩코 가수(Cantante) 에스트레야 모렌테(Estrella Morente)가 부른 ‘Lily’는 헤어졌던 치코와 리타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곡이다.

‘치코와 리타’ 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문득 깨닫는 진리 하나는, 때로는 시간을 초월하는 것들이 우리들 곁에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음악이다는 것이다. 라틴 음악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항상 우리들 곁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대동문화 85호 [2014 11,12월호]

장용석 문화 기획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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