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한 울타리 속에서 역사를 같이 해온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역사 속에 나타나 있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 왔는가의 시각차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상대적 관점에서 어떤 사건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존재론으로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똑같이 승인하는 사실이자 보편적 법칙이 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은 고구려 신라 때부터 국가이념이 불교였으나 조선조에 들어와 정치이념이 유학으로 바뀌면서 ‘억불숭유’가 필요 이상으로 혹독하게 가해져 그것이 존재론으로서 자리를 잡아온 것이 조선왕조의 역사 현실이었다.

그러나 우리 역사 속에는 삼국시대부터 승군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고, 고구려말 당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침범했을 때 3만의 승군이 그들을 격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에서는 승군을 항마군으로 삼았고, 국가가 군사를 일으킬 때 각 사찰에서 승군을 모아 정규군에 편입시켰다.

조선왕조로 들어오면 승군은 없어지고 사찰은 퇴락했으며 다만 승가의 집단적 대중을 통솔하기 위한 질서 유지 차원의 계율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존속해 왔다. 조선조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조정은 국가방위에 손을 놓은 채 태평성대를 구가해오던 것이 우리 중세사의 현실이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관군은 모두 흩어지고 불과 보름 만에 일본군이 한양을 점령하자, 국왕인 선조가 의주에까지 밀렸을 때, 선조의 부름을 받은 서산대사가 ‘팔도십육종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군을 일으켰다.

서산대사는 명나라군사와 연합해 평양성을 탈환했고, 승군만으로 개성을 탈환 뒤, 800 의승군으로 경호부대를 선발해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여 한양으로 돌아왔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자 진실로서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사항임에도 사서에서는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고 있다.

승군은 임진전쟁 이전부터 지방 곳곳의 요새에 성을 쌓고 허물어진 수많은 산성을 개축했으며, 영규스님은 왜군이 차지한 청주성을 되찾고 금산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유정스님과 의엄스님은 노원평 전투에서, 처영스님은 행주산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분충구국으로 전국의 산사에서 의승군들이 앞 다투어 일어나 왜군과의 전투에서 수많은 목숨을 바쳤다.

의승군(義僧軍) 임진왜란 때 왜군 전투서 앞장

여수 흥국사의 스님인 삼혜와 의능, 성휘, 신해, 지원은 흥국사를 주진사로 하여 이순신 휘하의 승군장으로 활약하면서 영남에서 호남으로 들어오는 4대 요해처를 지키면서, 군량을 자체 조달해 육지에서는 육군으로, 바다에서는 해군으로 조국을 지켜내며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지휘를 받아 승리를 이끌어냈다.

유정스님은 영남 여러 고을을 우리의 영토로 회복하고 유생들이 해내지 못한 가토 가요마사의 군막을 드나들며 아무도 해낼 수 없는 구국의 공헌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일본으로 들어가 포로로 잡혀간 3,000여 우리 백성들을 현해탄을 건너 모두 고국으로 돌아오게 했던 것은 역사적 상대론에서 볼 때 이것은 사실이자 존재론이다.

이 사실들이 당시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일치된 본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선조 유가들의 입장에서의 인식은 다른 형태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그 후 사실과 인식과 맞아 떨어진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임란이 끝난 지 200여년이 지나서 정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서산대사의 유의처인 두륜산 대흥사와 묘향산 보현사에 사당을 짓게 하고 표충과 수충의 사액을 내려 서산대사에 대한 자신의 감회를 적은 화상당명을 보내, 12변 12두인 종묘제향에 가깝게 12변 10두로 격을 올려 봄가을로 서산대사 제향을 국가에서 주도해 모셔왔다.

이것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존재론과 인식론의 부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존재론과 인식론이 올바로 되어 있을 때 국민들은 국가가 무엇인가를 실감하고 나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역사적 상대주의 입장에서는 인식이 존재론에 미치지 못하면 존재했던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더 나아가 상상력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면 없는 것도 있는 것이 된다. 조선조 유가들 인식이 존재론적 사실들이 없었던 것으로 사라지고 없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어왔다. 이것이 이른바 역사의 왜곡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역사의 상대적 관점에서 꼼꼼히 들여다보면 조선조 유가들이 기록해 놓은 사료를 보면 왜곡된 문맥이 수도 없이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흔히 승려가 팔천에 드는 하천한 신분이기 때문인 것으로 쉽게 간과해 버린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적 사료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임진년 전쟁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은 바다에 이순신이 있었다면 육지에는 서산대사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산대사의 업적을 기리는 표충사의 현실은 국가적 제향이 폐지된 채 오랜 세월 그대로 있고, 사당은 사찰 한 구석에 방치되듯 허술하게 남아있다. 여기에 비하면 의병장과 의병들의 사당과 위령비, 생가 등은 훌륭하게 복원이 이루어져 공원화 되었고, 곽재우 장군만 보더라도 의병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추모되고 있는데 비해 임진전쟁 이후 5천여 의승군과 의승수군은 국가적으로 추모사업이나 위령제가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었다. 바로 그 점이 역사의 인식론에 문제가 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역사적 인식론 변화와 가치론에 역점 둬야

지금 우리의 현실은 남과 북으로 휴전선이 그어져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주장자 대신 칼을 들고 나선 서산대사의 본뜻이 휴전선을 그어 남과 북의 대치된 모습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이순신 장군 역시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역사적 인식론의 변화와 가치론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소납(小衲)은 그런 명분을 살리겠다는 뜻에서 지난 8월 27일 대한불교조계종과 국회 정각회가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호국의승의 날을 국가 기념일로 제정하기 위한 서명운동본부를 발족하였고, 그리고 지난해에는 남측의 민족공동체본부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중국 선양에서 만나 서산대사국가제향의 국가적 복원 차원에서 봄에는 대흥사에서 가을에는 보현사에서 남북이 합동으로 제향을 봉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9월 19일에는 남측의 민족공동체본부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이 개성에서 만나 이에 관한 실무회담을 가졌으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필자는 비공개 석상에서 조불련 대표들을 상대로 서산대사의 추계제향 복원의 당위성과 역사성, 국난을 극복한 민족불교의 정체성을 강력하게 역설한 바 있다.

그리고 10월 13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신계사 복원 7주년 남북공동 기념법회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얼어붙은 남북교류가 재개되고 예전과 같이 금강산 관광 사업이 다시 이루어져 남북교류가 활발해 진다면 그것이 바로 역사적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바 통일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이루어내는 길이 트이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통일이 바로 남북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이기 때문에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본다. 이것만이 서산대사와 이순신 장군의 뜻에 부합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부여된 구국의 길이라고 소납(小衲)은 확신하고 있다.

대동문화 85호 [2014 11,12월호]

범각 스님  webmaster@chkorea.news

<저작권자 © 채널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